체력장
체력장을 했다. 약간 쌀쌀했지만 더운 날보다는 이런 날이 체력장에 딱 알맞다.
나는 계측요원으로 차출되지 않았는데, 아마도 사진을 즐겨 찍기 때문에 빼준 것이라며 사진기를 들고 운동장으로 가는 길에 스스로 그 이유에 대한 답을 찾고 있었다.
처음 눈에 띈 것은 단체 줄넘기를 연습하는 학생들이었다. 우리 1학년 1반도 있었다. 나도 연습에 참가했지만 10번을 넘기지 못했다. 우리반이 결승까지 가려면 실력 이외에 커다란 행운이 따라야 할 것 같다.
체력장 전에 몸을 푸는데 안팎으로 제기차기 등 별의별 동작을 다 했다. 언제나 그렇듯이 열심히 따라하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성헌제 선생님의 호통에도 아랑곳 않고 대충 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의무적으로 하는 행사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3개 학년이 함께 어울려 하는 활동도 흔하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10월을 코 앞에 둔 3학년으로서는 가을의 따사로운 햇빛을 받으며 운동장을 힘껏 달려보는 마지막 시간이 될 것이다.
먼저 50미터 달리기에서 사진 몇 장을 찍었다. 여학생들은 "제발 찍지 마세요"를 합창했다. 달리기를 할때 찍히는 모습이 별로 아름답지 않을 것이라 지레 짐작하는 듯 했다. 그래도 이 사진들이 빠지면 체력장 사진으로서는 뭔가 아쉽다. 달리기는 육상의 꽃이라 하지 않던가.
460여명의 학생들이 운동장 몇 곳에 옹기종기 모여 각자의 종목에 열중하고 있었다. 되도록 많은 학생들의 모습을 담고 싶지만 그것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특히 운동할 때의 모습은 순간 포착이 중요하기 때문에 언제 멋진 장면이 나올지에 대해 항상 긴장하고 주시해야 한다. 간혹은 정근이가 달리는 장면처럼 연출하여 사진을 찍기도 했다. 오래 달리기에서 1등을 한 정근이의 달리는 모습은 연출을 해서라도 담아둘 의미가 있을 것이다. 훌라후프를 돌리는 학생들을 배경으로 여학생들의 사진을 찍은 것도 그렇게 훌라후프를 돌리고 있으라고 시킨 것이다. 이렇게 찍는 것이 그냥 사진을 찍는 것보다 학생들의 표정이 살아 있어 좋다.
특히 재미있는 사진은 제자리 넓이 뛰기와 앉아서 허리굽혀 손뻗는 종목에서 나왔다. 이 종목에 대한 사진들은 처음 찍어 보았는데, 생각지 않게 만족스러웠다. 사진기 성능이 별로인데도 괜찮은 장면을 포착할 수 있어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제자리 넓이 뛰기한 거리가 배우자의 키라는 속설이 있는가 보다. 나의철은 2미터 40으로 기록을 세운 반면 1미터 20은 어쩌라고. 앉아서 허리굽혀 손을 뻗는 종목에서 설지원은 30센치미터나 손으로 자를 밀었다. 나의철도 29센치미터를 밀어 다방면의 만만치 않은 운동 능력을 자랑했다. 보기에는 쉬어보여 나도 해보았는데 처음에는 -5였고, 힘껏 허리를 굽혔는 데도 1센치미터밖에 안됐다. 이런! 벌써 허리가 굳은 모양이다.
11시 20분쯤 되자 1학년 남학생들의 오래달리기를 마지막으로 체력장이 끝났다. 메모리 용량이 작아서 사진을 지우다가 찍기를 반복했던 시간들도 끝이 났다. 운동장에 한가히 앉아 있는 세 명의 1학년 남학생들이 눈에 들어왔다. 마무리 사진으로 훌륭한 그림이다.
펜을 내려놓기 전에 11기가 3학년 때 찍었던 체력장 사진들을 갤러리에서 넘겨 보았다. 그때 우연히 찍혔던 1학년 학생들이 올해는 3학년이 되어 있다. 2년이 지났을 뿐인데도 이런 장면도 있었나 싶을 정도로 생소하다. 내가 이 고물 카메라에 담지 않았다면 세상에 있는 지도 몰랐을 순간들이었을 것이다.
오늘 아침 영철이가 갤러리에 올려진 사진을 보고는 재미난 표정의 사진들이 많다고 말했다. 체력장의 기록도 기록이지만 순간의 사진 한장에서 좋은 추억을 떠올릴 수 있다면 행운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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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훈 
박형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