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훈이의 공부 아내와 함께 원주천을 산책했다. 나는 3일 연속 산책하는 것이지만 아내와는 꽤 오랜만이다. 시훈이는 초등학교수학경시문제를 풀고 있었고, 시원이는 자석 퍼즐을 갖고 놀았다.
빠른 걸음으로 산책을 하고 돌아오니 시훈이는 끈질기게 문제들과 씨름을 하고 있다. 담임선생님이 한번 풀어보라고 문제를 주셨는데, 워낙 담임선생님을 좋아해서 열심히 풀고 있다. 웬만하면 벌써 포기하고 레고나 미니카, 유리왕카드를 만지작 거렸을텐데.
평소 저녁을 먹으면서 시훈이가 하는 이야기의 대부분이 학교에서 남자 담임선생님과 있었던 일 또는 담임선생님이 해주신 말씀에 관한 것이다. 담임선생님과 축구를 했다거나, 청소를 시키셨다거나, 떡볶이를 사주셨다거나, 제주에서 자전거로 여행할 때의 에피소드에서부터 군대에서 봉지에 라면을 끓여먹었던 일, 신혼 집을 얼마에 계약했다는 것까지.
담임선생님이 들으라고 했다고 요즘 강원에듀원 사이트에서 강좌를 열심히 듣고 있다. 마일리지가 하루에 최대 다섯 편의 강좌까지에만 제공된다고 다섯 편은 꼭 채우려고 한다. 오늘은 초등학생수학경시 문제를 풀고 있는 것이다.
나는 샤워를 마치고 서재로 가는 길에 부엌의 책상 위에서 문제를 푸는 시훈이에게 풀리는 문제만 풀고 얼른 가서 자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시훈이는 아직 못푼 문제를 마저 풀고 싶은 것 같았다. 벌써 10시가 가까웠다. 나는 잠시 인터넷을 하다가 조금 도와주야겠다는 생각으로 서재를 나섰다. 그때 마침 시훈이가 아빠를 찾았다. 자연스럽게 시훈이 옆에 자리를 잡고 문제를 살펴보았다.
막혀있던 문제 한 두개를 도와주니 남은 문제들은 자신감을 갖고 금새 다 풀었다. 그러면서 허탈하네 하며 잠옷으로 갈아입었다. 두 장의 문제들을 다 푼 모양이다.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가위를 닦다가 손을 베었다며, 서재로 가위를 들고 와서 어떻게 닦아야 하냐고 물어보았다. 나는 시범을 보여주었고, 시훈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바로 자러 갔다.
시훈이는 4학년 2학기다. 이번 학기부터는 부엌의 책상에서 같이 책을 읽거나 공부할 생각이다. 그렇다고 부담을 주거나 강제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오늘처럼 내 도움이 필요할 때 쉽게 요청할 수 있는 거리에서 내 공부나 할 생각이다.
바둑의 격언 중에 여행은 동행하라는 말이 있다. 간혹 힘든 공부도 누군가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수월하게 해나갈 수 있는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