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학하고 일주일 야간 자습감독이라 기숙사 11층이다. 방금전까지 비를 뿌리던 검은 구름과 어두은 먼 산들 사이로 파란 하늘이 띠를 두르며 어둠을 준비하고 있다.
방학 직전의 며칠은 새벽 3시까지 거실과 부엌, 베란다에 파벽돌을 붙였다. 전에 살던 집에서 곰팡이 때문에 고생한 적이 있기 때문에 습도 조절도 할겸, 인테리어 효과도 볼겸 아내와 함께 25상자 약 1,500개의 벽돌과 씨름을 했다. 입주할 때 한 겨울에 고생하며 붙여본 경험이 있기 때문인지, 이번에는 멀쩡한 벽지를 뜯어가며 공사를 했지만 결과는 만족스럽다.
한편으로는 바다소에 두 개의 프로그램을 새로 짰다. 예전 같으면 몇 주가 걸렸을텐데 단 하루, 이틀만에 원하는 기능을 구현할 수 있었다. 하나는 일일점검표이고 다른 하나는 블로그 프로그램이다. 매거진이 글 위주라면, 블로그는 사진을 큼지막하게 다양한 위치에 배치하기 위한 것이다. 기존에 있던 갤러리와 연동이 된다. 앞으로 시간이 날 때 과거에 찍었던 사진들을 올리며 동시에 블로그를 쓸 생각이다.
개학하고 새학기 수강 학생들 얼굴을 익히고, 수업을 준비하고, 담임학생 상담을 하고, 텃밭에 배추를 심고, 3학년 학생들의 자기소개서를 봐주며 일주일이 지났다. 새로운 각오로 의욕적으로 새학기를 시작하려는 1학년 학생들과 지나온 학창 시절을 돌아보며 자기소개서를 쓰는 3학년 학생들의 모습이 대비되었다. 이런 절박함을 1학년 때 조금 일찍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여러 통의 자기소개서를 보았지만 가야할 길은 아직 멀어 보였다.
시훈이 손가락은 다행히 봉합한 부분이 살아났고, 새살이 돋아나고 있다. 모양이 어떻게 될지는 한참을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8월 26일 병원에서 실밥을 뽑았다. 그때 피딱지에 가려 보이지 않던 실밥 한 개를 어제 내가 핀셋으로 뽑았고, 시훈이가 송곳으로 살살 긁어서 살에 묻혀있던 다른 하나도 뽑았다. 도구들은 끓는 물에 소독했고, 손가락은 미리 식염수에 담가 불렸기 때문에 피도 나지 않고 상쾌하게 금새 끝났다.
어느덧 자습실 창 밖은 온통 어둠이다. 멀리 영동고속도로의 노란 가로등과 그 사이를 지나는 자동차 불빛만이 그 어둠 속에서 짧은 존재를 밝히고 있다. 지난 10년간 느끼는 것이지만 자습실 분위기는 언제나 좋다. 오늘 다른 점은 글을 쓰는 동안 두 명의 학생들이 자기소개서 봐달라고 부탁을 했다는 것이다. 다산관과 충무관 복도에서, 교실에서, 자습실에서 나는 부탁하는 것은 사양않고 다 읽어 봐주고 꼼꼼하게 지적해준다. 그것은 학생을 위해서도 학교의 이미지를 위해서도 마지막 중요한 서비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내가 너무 깐깐한 것인지 지난 10년간 학생들이 내미는 자기소개서에 만족한 적이 한번도 없다. 그래도 몇번 수정되면 훨씬 좋아지는 자기소개서를 볼 때 보람을 느낀다.
오늘 밤에는 수업 준비하려고 자습실에 가져온 일반물리학 책을 잠시 미뤄두고 학생들이 프린트해온 자기소개서를 읽어보고 학생들과 즐거운 이야기를 나눠봐야 할 것 같다. 글을 마무리 하는 동안 학생 한 명이 내 앞에 앉아 빨리 읽어보라고 재촉한다. 이제 정말 노트북을 닫고 펜을 꺼내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