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보드 오늘 바다소에 스토리보드를 공개했다. 스토리보드란 영화에서 장면을 미리 떠올려볼 수 있도록 스케치를 나열한 보드를 말한다. 나는 스토리보드가 책을 쓰거나 강좌를 기획할 때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여 4년 전에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유용하게 잘 쓰고 있다. 메모와 스토리보드의 차이는 메모는 단순히 하나의 조각난 기록이지만 스토리보드는 구조화되고, 시각화된 이야기들의 집합이라는 것이다. 기록의 양이 많아질수록 스토리보드는 위력을 발휘한다.
지난 수요일부터 어제 토요일까지 피곤이 누적되었었나보다. 그래도 신기하게 아침 6시면 눈이 떠졌다. 어제는 밤에 스마트폰 게임하는 시훈이를 보고 시훈이방 침대에 누워 밤에는 게임을 하지 말라고 조용히 타일렀다. 밤에 하는 게임은 자는 동안 잔상을 남기고 중독에 빠지게 된다고. 게임을 하고 싶으면 차라리 아침이나 낮에 하라고.
오늘 아내와 아이들이 8시 반까지 늦잠을 자는 동안 나는 스토리보드 프로그램을 공개하는 작업을 했다. 개인적으로 사용하던 것을 여러 사람이 사용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었다. 몇 달 전부터 그럴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그 작업을 위해 한 두 시간을 내는 것조차도 힘들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처럼 몸도 마음도 홀가분할 때는 원래 그 작업을 할 생각이 아니었는데도 전혀 저항 없이 편안하게 일을 시작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오늘은 무엇을 할까?" 하며 노트북을 열고는 "그래 그것을 하자" 는 식이다. 다만, 250GB 밖에 안 되는 하드디스크 용량 때문에 파일이나 그림을 첨부하는 기능을 넣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그렇지만 데이터가 무한정 커지고, 서버가 한계에 도달하고, 비용 때문에 광고나 게임 같은 것을 넣는 서비스 모델은 바다소가 지향하는 바가 아니다.
아침을 먹고 아내와 베란다에서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나는 뜨거운 아메리카노(뜨아), 아내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아아). 하지만 커피를 한 모금 제대로 마실 겨를도 없이 나는 시훈이 방으로 가서 시훈이에게 공개된 스토리보드 프로그램을 처음으로 이용하게 해보았다. 시훈이가 읽고 있는 책의 내용 중에서 좋은 구절을 옮겨 적도록 하는 것이었다. 책을 한 번 읽고 끝내면 얼마 뒤에는 기억에서 사라지게 된다. 그렇지만 스토리보드에 기록해 놓으면 기억을 되살리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원래는 자전거를 타고 산책을 가서 점심을 먹으려고 했지만 프로그램을 보완하느라고 점심은 집에서 라면과 어묵 꼬치로 간단히 먹었다. 점심을 먹고는 졸음이 쏟아졌다. 시원이는 종이에 방송시간표까지 써가며 텔레비전을 챙겨보다가, 바다소에 글도 쓰고, 식객을 몇 권 보고, 내가 자는 동안에 또다시 텔레비전을 보았다. 아내는 베란다에 캠핑의자를 펴놓고 실개천에 물 흘러가는 소리를 들으며 식객을 읽었다. 그 동안에 시훈이가 무엇을 했는지는 미스터리다.
저녁 6시에 느지막하게 자전거를 타고 롯데시네마 동네로 향했다. 해가 아직도 많이 남아 있었다. 저녁으로 어디가 좋을까 잠시 걷다가 마포갈매기가 눈에 들어왔다. 거기서 먹자고 바로 의견 일치를 보았다. 길가 쪽에 문을 활짝 열어 놓은 자리에 앉았는데 고기 굽는 냄새도 별로 맡지 않고 상쾌했다. 무뼈닭발도 주문했는데, 아내만 못 먹고 우리들은 맵지만 맛있게 먹었다. 매운 입도 가실 겸 바로 옆의 맥도날드로 가서 새로 출시된 블루베리주스와 아이스크림이 얹혀있는 레몬주스를 마셨다. 저녁을 먹기에는 조금 늦은 시간이었지만 사람들로 북적였다.
맥도날드를 나오니 날이 어두워졌지만 춥기보다는 쾌적한 날씨다. 북새통에 들러 책을 30분 정도 보고 가기로 했다. 나는 여행코너에서 책을 살펴보다가 "봉주르 쁘띠프랑스"라는 책을 집어 들었다. 쁘띠프랑스를 만든 한홍섭씨가 쁘띠프랑스를 소개하고, 자기가 그것을 만든 계기와 과정을 이야기한 책이었다. 마침 그곳에 다녀온 지가 이주일 밖에 안 되었기 때문에 흥미롭게 책을 읽었고, 나올 때 그 책을 샀다. 나도 쁘띠프랑스나 참소리박물관 같은 곳을 만들고 싶다.
자전거를 타고 돌아오는 길은 내리막이라 훨씬 몸이 가벼웠다. 집에 들어오니 밤 9시 반이다. 이것저것 한참 한 것 같은데, 시간은 3시간 반 정도 흐른 것이었다. 평일에도 마음의 여유만 있다면 자전거 산책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해도 길어지고 날씨도 따뜻해서 조건은 최적이다. 몇 달 뒤에 혁신도시의 상가들이 하나 둘씩 영업을 시작하고 내년 봄에 새로 짓는 도서관이 오픈하면 자전거 코스가 더욱 다양해질 것이다.
밤 10시에는 운동화를 신고 아파트 근처로 산책을 나갔다. 시훈이가 왜 밤에 산책을 나가냐고 물었다. 자전거도 좋지만 걷는 것도 기분이 좋다. 혼자 천천히 걸으며 생각을 정리하는 즐거움은 아는 사람만 안다. 일찍 일어나서 새벽에 산책하는 것도 재미가 있을 것이다. 지난 주말에는 새벽에 산책하고 돌아오는 길에 모자를 푹 눌러 쓴 사람이 지나가는데 어디서 모습이 눈에 익은데 하며 살펴보니 아내였다. 내가 자기를 알아보는가를 시험하기 위해 일부러 고개도 푹 숙이고 재빨리 지나치려 했지만 나는 그렇게 허술하지는 않았다. 그날 나는 손가락으로 아내의 옷을 집고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글을 마치고, 내일을 기대하며 잠자리에 들 시간이다. 그냥 자기가 아쉬워서 책을 조금만 읽다가 잘 것이다.
스토리보드까지 해서 1999년 처음 웹페이지를 만들고 나서 지난 15년 동안 내가 만들고 싶었던 대부분의 프로그램을 다 만들었다. 그 이상은 내가 도전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제는 새로 만들기 보다는 그 프로그램들을 활용하고, 이야기를 채우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여가 시간이 조금 더 여유롭고, 하루하루가 더욱 알차고 즐거울 것이다.
마치 가느다란 냇물이 모여 강을 이루듯 자잘한 이야기들이 모여 인생을 이룬다. 즐거웠던 이야기, 감동적인 이야기, 담아두고 싶은 이야기,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이런 기회가 있어 소중한 이야기의 일부라도 남길 수 있는 것은 행운이다. 그런 행운을 누릴 수 있어서 감사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어서 기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