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 정리
오늘은 아침에 잠깐 산책을 한 것을 빼고는 집에 있었다. 시리얼과 아메리카노로 아침을 먹으면서 예능훈련소라는 방송을 보았다. 다른 때 같으면 한참 침대에서 뭉그적거렸을 시원이가 자기가 좋아하는 예능이라며 벌떡 일어나서 거실로 나왔다. 나는 아침 먹고 안드로이드 책을 주문하고 거실로 다시 나왔다. 오늘은 텔레비전 주변에 놓인 멀티탭, 셋톱박스, 인터넷공유기 등을 모두 텔레비전 뒤로 감추는 작업을 할 작정이었다. 어제 우연히 인터넷을 하다 셋톱박스를 텔레비전 뒤의 벽에 붙여 놓은 사진을 보았다. 조금 충격이었다. 벽걸이 텔레비전을 볼 때마다 가벽에 구멍을 뚫고 벽 반대편에 셋톱박스 등을 집어넣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텔레비전 뒤에 숨겨놓는 방법은 생각지도 못했다. 벽에 어떻게 붙였을까 생각해보다가 밸크로테이프를 떠올렸다. 마침 집에 밸크로테이프가 있었다.
전원케이블, 안테나선, 랜선, 동축케이블, 광케이블들이 어지럽게 텔레비전, 인터넷공유기, 인터넷전화기, 셋톱박스, 프로젝터들을 연결하고 있었다. 심하게 너저분한 것은 아니지만 조금 신경이 쓰이기는 했었다. 집이 어지럽혀지는 이유는 어느 순간 물건들이 그 자리에 놓여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계기로 막상 치우고 나면 깔끔해서 속이 다 시원해진다. 정리라는 것이 조그마한 구역을 손대는 것도 한 나절은 충분히 잡아먹는다. 그리고 한 구역을 정리하면 다른 구역이 또 신경을 거슬리게 한다. 집 전체를 그렇게 정리하려면 몇 달은 걸릴 것이다. 그러므로 애초에 웬만하면 집에 들여놓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정말 필요한 것, 예뻐서 꼭 들여놓고 싶은 것, 오래 쓸 것을 신중하게 골라야 한다. 나는 지금까지 쪼들리는 형편에 가격 대비 성능을 따져서 가능하면 싼 것을 사다보니 집 곳곳에 버려야 할 것 천지다. 그래도 아까워서 그냥 처박아 두고 있다. 언젠가는 저것들을 치워버려야지 하면서.
요즘 미니멀리즘이라고 집에 가구나 물건을 거의 들여놓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게 살려면 과감하게 미련을 두지 않고 필요하지 않은 물건은 버리는 용기가 필요하다. 미니멀리즘은 내 취향이 아니지만 세미 미니멀리즘 정도면 내가 흉내내볼 수 있을 것 같다. 몇 번 테이블과 물백묵보드 등을 돈을 주고 내다버리면서 작년부터는 물건을 살 때 조금은 더 이것저것 따지게 된 것 같다. 단적으로 리클라이너를 살 때 수동을 사는 대신에 돈을 조금 더 주고(그래봤자 십여 만원 차이) 전동 리클라이너를 샀는데 전동을 사기를 잘했다는 것을 매번 그 리클라이너에 앉을 때마다 한다. 그것은 망가지지 않는 한 버릴 일은 없을 것이다.
어느 정도 각오하기는 했지만 전자기기 몇 개를 텔레비전 뒤에 붙이는데 꼬박 세 시간 걸렸다. 텔레비전을 상하좌우로 움직일 때 간섭이 생기지 않도록 배치하는 것이 까다로웠다. 그래도 즐거운 마음으로 차근차근하다보니 흡족하게 잘 끝났다. 정상적으로 작동되는지 이것저것 테스트해보고 작업 기념으로 가족과 함께 티타임을 하면서 셋톱박스로 텔레비전을 보았다. 아직 텔레비전 주변에 정리하고 싶은 것이 더 있는데 다음 주말을 이용해서 꾸준히 해나갈 생각이다. 한 번 정리하면 그 혜택은 그 시점부터 지속적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되도록 빨리 정리하는 것이 좋다. 정리하는데 걸림돌은 언젠가 써먹을 때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미련이다. 미련을 버리는 게 어렵다. 그렇지만 미련을 버리면 더 근사한 세상이 찾아온다. 멋진 환경을 그려보고 그것을 위해 지금 당장 자기 주변부터 정리해보자. 큰 변화는 항상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