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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 좋은 오피스

물 흐르듯이 3일 연휴가 끝났다. 무엇을 할까 고민할 필요도 없이 하나를 하면 그 다음 것이 기다리고 있었다. 동네에서만 놀았는데도 별로 갑갑한 느낌은 없었다. 아내와 함께 동전빨래방에서 커튼을 빨고, 점심과 디저트와 저녁을 먹으러 혁신도시에 매일 출근했다. 스시노백쉐프, 롤링킹, 이화수 등 못 보던 가게들이 눈과 입을 즐겁게 한다. 화사한 5월 냇가를 천천히 걷다가 파스쿠찌에서 관공서 직원들 틈에서 커피를 마시고, 관공서 내의 근사한 카페도 구경했는데 아메리카노가 1400원에 불과했다. 빨간 벽돌을 쌓고 있는 브레노 카페에서 과자를 사고, 자전거를 타고 포장마차로 저녁에 먹을 어묵과 순대와 떡볶이를 사러 다녔다. 세면대에 접착제를 붙이고, 시원이방의 형광등을 갈고, 좌식의자를 버리며 집안일을 했다. 커피콩을 볶고, 도서관과 서점에 가고, 주말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마음껏 즐기기도 했다. 아침에 혼자서 자전거로 혁신도시에 가서 상가주택들을 구경하고, 산책을 하고, 책과 잡지를 읽고, 자동차점검을 받고, 바다소프로그램도 만지고, 학교과제도 했다. 카페 같은 거실에서 마시는 아이스커피도 훌륭하지만 화창한 날이 몸을 자꾸 밖으로 이끌었다. 마무리는 오늘 밤에 걷는 것이었다. 걷기에 좋은 날씨였다. 그리고 방금 전에는 리클라이너에 고양이처럼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글을 쓸 생각은 아니었다. 이번에는 글을 쓰는 시간까지도 아껴서 마지막 한 방울의 시간마저도 쉬는데 쓰려고 했다. 그런데 리클라이너에 쭈그리고 있다가 불현듯 좋은 생각이 났다. 글을 쓰고 싶어졌다.

어제 일요일에는 도서관에서 핫도그를 먹고 나 혼자 북새통으로 걸어가서 책을 훑어보았다. 그리고 부자가 되는 방법에 대한 얇은 책을 사서 집에 와서 읽었다. 뻔한 내용이었다. 그래도 한 가지 그 책의 효용은 내가 부자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주었다는 점이다. 흔히 부자란 돈이 많은 사람을 말하는데 내 기준으로 부자는 딱히 갖고 싶은 것이 없는 사람이다. 깊은 산골의 절에서 무소유를 실천하는 스님들도 부자인 셈이다.

연휴에 마트나 백화점에도 갈까 싶었는데 막상 거기에 갈 이유를 찾지 못했다. 더 이상 별로 사고 싶은 것이 없었다. 아마 지금 상태로는 마트나 백화점이나 아울렛에 간다고 해도 그냥 눈요기만 하다가 나올 것 같다. 새 자동차에도 관심이 없고, 해외여행도 시큰둥하다. 그렇지만 전망 좋은 오피스는 하나 갖고 싶다. 거기에 앉아 글을 쓴다면 황홀할 것이다. 그래서 아쉽게도 나는 딱 한 가지 때문에 아직 부자가 아니다. 그 욕심을 포기하면 지금 당장 부자가 될 수 있을 텐데 아직 그러고 싶지는 않다.

그런데 리클라이너가 놓인 서재에서 이 글을 쓰면서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비슷하게나마 이미 갖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어떻든 좋다. 부자가 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는 아니다. 리클라이너에서 떠오른 좋은 생각은 부자가 되는 방법이 아니라 창조적인 작업에 대한 것이었다. 그것은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방식에 대한 것이다. 그것만 유기적으로 진행된다면 내가 앉아 있는 곳이 어디건, 그곳이 서재든 교실이든 카페든 도서관이든 생각하고 글을 쓰기에 알맞은 전망 좋은 오피스가 될 것이다.
박형종   2016-05-16 (월) 23:55   인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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