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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구경

일어나자마자 어제 봐두었던 인도네시아 만델링, 에티오피아 예가체프라는 커피 생두를 각각 1킬로그램씩 주문했다. 그 생두를 다 볶을 때쯤에는 맛있게 로스팅 하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우유거품을 만들 때 온도를 체크하기 위한 온도계도 샀다. 갖고 싶은 커피용품들은 더 많았지만 꼭 필요한 것부터 차차 살 생각이다.

오늘도 여전히 미세먼지가 자욱했다. 강원도 시골이 이 모양이면 서쪽 도시들은 어떤 형편일지 걱정스럽다. 날씨가 따뜻하고 개나리 진달래 벚꽃이 활짝 피었는데 단 하나 흠이 미세먼지다. 중국이나 우리나라에 전기차가 보급되면 조금 나아지려는지.

가볍게 산책을 하고 아침으로 빵을 먹고 드립 커피를 마시며 복면가왕을 보았다. 여느 일요일과 다를 바 없는 아침이다. 머리를 깎고, 아내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벚꽃 구경을 나섰다. 여의도나 강릉 경포대의 벚꽃이 유명한데 엄청난 인파에 가볼 엄두는 나지 않는다. 대신에 이렇게 집에서 몇 분 거리에 활짝 핀 벚꽃을 볼 수 있어서 불만은 없다. 어차피 이 벚꽃이 그 벚꽃이다. 다만 먼지 때문에 빛이 뚜렷하지 않은 것이 아쉬웠다. 동네 근처에 개업을 준비하는 공사가 막바지인 카페 겸 빵집이 있는데 아내는 몹시 궁금했는지 차를 거침없이 몰고 공사장으로 들어갔다. 마침 사장님이 공사현장을 진두지휘하다가 우리차를 보고는 안쪽으로 들어오라고 하고 개업 일정에 대해서도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춘천에서 유명한 “라뜰리에 김가네 빵공장”을 하신다. 작년 가을에 춘천 여행할 때 가보았는데 사람들로 미어터지는 곳이다.

점심은 혁신도시의 “교동짬뽕”에서 먹었는데 자리가 넓어서 쾌적했다. 그리고는 혁신도시의 단독주택들과 반곡역을 구경하고 잠을 잘못 자서 허리가 아프다는 시훈이를 위해 홈플러스에 가서 안마의자를 탔다. 나는 그렇게 시원하다는 느낌을 받지는 못했다. 아내는 나와 시훈이를 원주시립도서관에 내려주고 시원이랑 집으로 갔다. 도서관에서 “메이크 스페이스”라는 책을 빌렸다. 창의와 협력을 위해 어떻게 공간을 디자인할 것인가에 대한 책이다. 좋은 공간이 어떤 효과를 낼 것인지는 다른 예를 볼 것도 없이 북카페처럼 지어진 원주시립도서관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환영받고 있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

집으로 걸어가다가 아내에게 전화를 했는데 마켓을 구경하고 싶어 했다. 아내는 다시 차를 운전하고 나왔고 도로에서 만나 함께 중앙시장으로 갔다. 나는 거의 십년 만에 원주의 재래시장을 가보는 것이었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시장 건물 2층에는 허름한 가게들이 줄지어 있었는데 그것을 예술가들에게 싸게 임대해주는 모양이었다. 대신 사람들을 끌어 모아서 시장을 활성화시키자는 취지인 것 같다. 마켓은 주말에만 열리지만 마켓 말고도 2층에는 예쁜 카페와 공예품 가게들로 젊은 기운이 가득했다. 아내는 수제초콜릿, 다꾸와즈와 같은 자잘한 먹거리를 샀고, 닭꼬치를 사서 먹으며 다녔다. 예술가들이 모인 거리가 유명해지면 임대료가 올라가서 그 사람들이 다른 지역으로 쫓겨나는 경우가 생기는데 여기서는 그런 일이 없으면 좋겠다. 시원이가 부탁한 메밀전병을 사고, 부산어묵을 사고, 카푸치노를 한 잔 사서 테이크아웃으로 들고 다니며 마셨다. 시장 구경이 재미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혁신도시나 대형마트만큼 깔끔하지는 않지만 구경거리는 그 이상으로 많다. 집에 와서 메밀전병을 먹으며 1박2일을 보았다.

어렸을 때 누나의 손을 잡고 시장 구경하는 것을 좋아했다. 어머니가 일하는 어시장에 가면 장사하시는 아줌마들이 귀엽다며 돈을 주시곤 했다. 서로들 어려웠지만 정이 많던 시절이었다. 세월은 추억을 넘어 달린다. 오늘 엄마의 손에 이끌려 이곳 시장에서 공예체험을 하던 어린이는 훗날 자신의 꼬마 손을 이끌고 어딘가의 시장에 나타날 것이다. 세상은 달라져 있겠지만 아이의 호기심과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은 변함이 없을 테니까.

시훈이는 친구랑 열람실에서 공부하다가 6시에 도서관을 나와 다른 친구랑 빽다방으로 가서 음료수를 마시며 공부를 했다고 한다. 카페의 화이트노이즈가 공부에 도움이 된다는 말도 있기는 한데 꼭 그런 효과를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심각하게 공부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내가 좋아 하는 말 중에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다”는 말이 있다. 사람들은 하나라도 더 얻기 위해 전력을 다하지만 그 과정에서 잃어버리는 것이 무엇인지는 잘 신경 쓰지 않는다. 나도 그게 항상 어렵다. 내 결론은 비슷하다. 심각하게 생각할 이유는 없다. 중용과 조화로움. 다른 말로 적절히. 잃는 것을 두려워 할 필요도 없다. “하나를 잃으면 하나를 얻는다.”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자는 뜻이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시간을 잃었지만, 시간을 잃었기에 글이 남았다. 그렇게 나쁘지 않은 거래인 셈이다.
박형종   2016-04-10 (일) 23:31   인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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