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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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지 않은 시간들-김혜진이 쓴 글   [1] 2010-02-25 박형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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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진

개학하고 거의 한 달만에 교실 곳곳에 널부러진 서류, 책들을 일부 정리하였다.  그리고 이번 졸업생들의 추천서를 쓸 때 만들었던 자료와 수능 성적 등을 분석한 프린트물을 파쇄기에 넣어 버렸다. 또 한 기수가 졸업한 것이 실감났고, 약간 우울했다.
 
자료를 정리하다가 우연히 조기졸업한 11기 김혜진이 2년 전 쯤에 준 편지와 서류 뭉치를 발견하였다. 앗! 그렇지 않아도 이 뭉치들이 어디 있을까 궁금해하던 차였다. 막상 두 팔 걷고 찾으려면 어디에 두었는지 찾을 수 없고, 포기하고 지내다보면 어느 순간 눈 앞에 나타나곤 했던 것이다.
 
편지를 다시 읽어보았다. 지금쯤 일본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을 녀석의 얼굴이 편지지 위에 비춰졌다.
 
서류 뭉치는 혜진이가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주최한 공모전에 응모하여 책으로 발간된 글의 복사본이었다. '선생님들의 작은 이야기'라는 주제로 나에 대해 쓴 것이다. 그 글을 다시 읽었다. 여기저기 낯간지러운 데가 많다. 고1의 풋풋함이랄까?
 
녀석하고의 추억이 떠올랐다. 까불대고, 활달하고, 목소리가 밝았다. 항상 웃었고, 웃을 때는 치아 교정을 하느라고 이빨 위에 옆으로 길게 박아놓은 철사들이 마치 기차 레일처럼 보였다. 흥분할 때는 얼굴이 금새 빨개졌다. 그 애는 핑크색 교복과 잘 어울렸다. 핑크색을 유난히 좋아해서 핸드폰 색깔도 핑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1학년 때 담임을 하고, 2학년 때는 담임이 아니었지만, 그 애는 수시로 내 교실에 찾아왔다. 쉬는 시간에 홀연히 나타나서 혼자 깔깔거리고 떠들다가 내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교실을 나섰다. 조기졸업을 하겠다고 결정하고 나서는 마음 고생이 많았을 것이다.
 
결국 그 애는 뜻한대로 진학하지는 못했다. 공부는 1,2등을 다툴 정도로 매우 잘했지만 운이 없었다고 해야할까?
 
오늘 그 애가 남긴 글을 에필로그에 옮겼다. 몇 번 옮길 마음이 생기기도 했었지만 그 때마다 시간이 좀더 흐르기를 기다리곤 했다. 오늘 그 뭉치를 발견했을 때 더 이상 미룬다면 결국 잊어버리게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옮기며 혜진이를 많이 생각했다. 아마도 나에게 그런 글을 써줄 수 있는 학생은 그 애가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다. 
 
비기 많이 온다. 일본에도 비가 오는지 궁금하다. 
박형종   2010-02-25 (목) 00:00   [1]   인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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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종   오늘 혜진이 아버님에게서 메일이 왔다. 혜진이가 4월1일부터 동경대학교 법학부에 다니게 되었다는 것이다. 약간의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좋은 소식을 듣게 되어 기뻤다. 오늘 저녁 회식 자리에서 혜진이의 소식을 전해주었고, 나를 포함해서 3명의 전현직 진학실장선생님들이 하나같이 축하해주었다.  
2010-04-12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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