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시훈이는 그제 일요일 토론캠프에 가서 토요일에 나오고, 오늘은 저녁 먹고 아내가 시원이랑 금산 처가에 갔다.
즉 집에 나 혼자 있다!
옛날에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에 일주일씩 갔던 적 이후로 대략 10년만인 것 같다. 이것이 어떤 기분인지는 아는 사람만 안다. 휴가란 이런 것이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머물만한 제주도 호텔들을 알아보다가 밤 9시 반쯤 느릿하게 산책을 나갔다. 걷기에 딱 알맞게 덥지도 춥지도 않은 기온이다. 그래서 그런지 월요일인데도 원주천에는 운동을 즐기러 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나 혼자서이라면 어디 여행 갈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렇게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집에 들어와서 복숭아 두 개를 깎고, 더치아이스커피를 타서 베란다로 나갔다. 베란다에 캠핑의자를 펴놓고 테이블에는 노트북을 올려놓았다. 디저트로 복숭아를 먹고, 더치커피를 마시면서 한가하게 글이나 한 편 써볼까.. 그런 생각이었지만 글을 쓰는 대신에 캠핑의자에 앉아서 한여름 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베란다 창문을 통해 빛은 거의 들어오지 않는다. 밤은 빛보다는 소리가 지배하는 곳이다. 온갖 소리가 베란다로 들려온다. 정체불명의 풀벌레 소리, 냇물 소리, 줄넘기 하는 소리, 사람들이 걷고 말하는 소리, 자동차가 달리는 소리, 배달 오토바이가 쌩쌩 다니는 소리.. 그 소리들 틈에 풀과 나뭇잎 냄새가 섞여 들어와 귀 뿐만이 아니라 코도 킁킁거리게 한다.
구태여 이런 곳을 놔두고 캠핑을 한답시고 좁고 더운 텐트에서 자거나 하루에 수 십 만원이나 하는 호텔에서 묶어야할까?
눈과 귀와 코와 입과 촉감. 진정한 휴가란 평소에는 있는지도 몰랐던 감각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그 감각들이 머리를 신선하게 자극할 것이다. 생각하지 말고 그냥 느끼자.
어.. 쟈스민 같은 향기가 대체 어디서 와서 가끔씩 내 코를 간지럽히는 것이지? 그 향기가 접시 위에 남아 있는 복숭아 냄새와 유리잔에 남겨진 더치커피의 향과 어우러져 교향곡을 연주하는 것 같다.
밤이 깊어지면서 인간이 만든 빛과 소음은 줄어들고, 덕분에 자연이 빚어내는 소리와 향기는 더욱 도드라진다. 이제 노트북을 덮고 본격적으로 그들을 만나고 느껴볼 시간이다. 나는 양말을 벗어 베란다 타일에 발바닥을 대어 보았다. 예상했던 것보다 차갑지 않다. 우리를 탈출한 동물이 새로운 땅의 냄새를 맡듯 발가락이 저절로 꼬물거린다.
휴가란 이런 것이다. 진정한 휴가는 먼 여행에 있지 않다. 진정한 휴가는 내 몸 아주 가까이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