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즈 패밀리 금토일 연휴에 무엇을 하며 보낼까? 일단 목요일 퇴근해서 생각해보기로 했다. 많은 아이디어들이 떠올랐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목요일에는 밤 12시 이후까지도 영동고속도로가 정체였다. 금요일 부처님오신 날 아침 7시 반에 티맵의 교통상황을 보니 그 시간에 벌써 고속도로 곳곳이 빨간색투성이였다. 기차로 서울 갈까 생각해보았지만 왠지 주저되었다. 서울 가서 뭘 하지? 연휴 첫날은 그냥 원주에서 지내기로 했다.
어렵사리 일단 조조로 영화 "크루즈 패밀리"를 보기로 결정하고 부랴부랴 cgv로 갔다. 탁월한 선택이었다. 영화는 매우 아름답고 상상력이 풍부하고 감동적이었다. 나중에 dvd가 나오면 구매해서 소장할 것이다. 지진으로 집이 무너져서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가는 가족 이야기지만 결국 우리 모두는 크루즈하면서 살게 된다. 나는 무엇을 찾아 떠돌아다니는가?
점심으로 냉면을 먹고 마트에 가서 쇼핑을 하고, 북스타로 가서 책을 읽었다. 나는 "하와이에 반하다"란 책을 샀다. 하와이는 내가 신혼여행을 갔던 곳이다. 언젠가 다시 한 번 가고 싶은 곳이다. 서재테이블 바로 앞의 책장에 꽂아 놓고 그 날을 상상할 것이다. 집의 곳곳에 이렇게 책을 전시하면 좋을 것 같다.
저녁을 LA북창동순두부에서 먹고 텃밭으로 가서 물을 주었다. 해가 거의 진 무렵이었는데, 희미한 햇빛을 받아 구름이 온통 파랗게 물들었다. 이를테면 파란 노을이었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멋진 광경을 보게 될 줄이야. 나는 물을 하나도 안 주고 사진만 찍었다. 아내와 아이들이 물을 주며 게으른 아빠를 계속 불평했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런 장면은 10분도 안 되어서 사라질 운명임을 안다.
어제도 아침에 일어나서 무엇을 할지 결정하기 힘들었다. 아이들 의견을 물어보니 시훈이는 서울을 가자고 했고, 시원이는 키자니아를 가자고 했다. 아내는 원주에서 허브팜을 구경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나는 11시가 다 되어서 차를 타고 서울에 가기로 결정 했다. 가서 무엇을 할지는 현지에 가서 부딪히면서 찾으면 될 것이다. 멀리 떠나기에는 늦은 시간이었지만 어디든 움직이면 배울 것이 생기리라는 점은 분명하다.
서울에 도착하니 낮 1시 반이었다. 서울파이낸스센터에 주차하고 그곳 생어거스틴에서 태국 볶음밥과 미고랭을 먹었다. 태국 주방장이 직접 요리하였는데 밥알이 찰지지 않고, 소스가 매콤하면서도 달달한 게 맛있었다.
첫 목표지점은 서울시청이었다. 나는 진작부터 디자인 서울을 외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작품을 보고 싶었다. 역시 멋있다. 이런 훌륭한 건축물은 두고두고 사람들에게 영감을 준다. 로비에 몇 층 높이로 쌓아 심어진 아이비 같은 식물들과 폐기물로 만들어진 작품들을 구경하였다. 그리고 7층으로 가서 전망을 구경하고, 8층 카페에서 레모네이드를 마셨다.
그리고는 도서관을 구경하였다. 사람이 꺼내지도 못할 높이까지도 책장을 만들어 책을 꽂아놓은 것이 흥미로웠다. 인간이 만든 지식의 바벨탑 같은 느낌이랄까? 책은 위대하다.
아이들이 계단식 의자에 앉아 책을 읽을 때 나는 "몰입"이라는 책을 읽었다. 지금이야말로 몰입에 빠지고 싶은 때였다. 토요일이라 6시에 문을 닫는다는 것이 아쉬웠지만 어차피 우리도 모처럼의 서울 나들이를 도서관에서만 지낼 작정은 아니었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맞으며 걸어도 몸을 적실 정도는 아니었다.
교보문고로 갔다. 나는 이번 연휴에 의도적으로 서점과 도서관 탐방을 끼워 넣었다. 놀면서도 남는 게 있어야 한다. 그게 내 철학이다.
나는 디자인, 그림, 여행 관련 책을 가볍게 훑어보다가 오디오 코너로 가서 블루투스 스피커, 헤드셋을 작동하며 성능을 테스트해보았다. 역시 그 코너에는 시훈이가 먼저 와서 닥터들에게 혼을 빼앗기고 있었다. 우리는 30분 정도 함께 스피커에 전원코드와 이어폰 단자를 끼우고, 블루투스를 연결하고, 머리에 써보며 테스트하고 의견을 나눴다. 부자간에 취미가 같은 것은 축복이다. 헤드셋은 너무 성능이 좋아 탈이다. 자꾸 이용하다보면 귀가 망가질 것이다. 역시 음질은 우퍼가 큰 스피커일수록 좋다. 60만 원 정도는 줘야 한다. 다행히 7년 전 우퍼가 뭔지도 모를 때 중고로 20만원에 구입한 재즈홈씨어터가 있어 어느 정도 스피커에 대한 갈증은 해소하고 있다.
교부문고 구내 멜로디스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아이스크림과 아메리카노 커피를 후식으로 먹으며 브레이크 타임을 가졌다. 9시에 만나기로 하고 다시 헤어져서 각자 돌아다녔다. 나는 이번에는 웹프로그램, 수학과 과학 교양서적 코너에서 책을 보았다. 교양수학책을 하나 사려고 했는데 이미 집에 있는 것인지 확신이 없어서 집에서 확인해보고 사기로 했다.
파이낸스빌딩으로 가는 길에 비가 많이 왔다. 일기예보에서 저녁에 비가 온다는 것을 알았지만 깜빡 챙기지 못했다. 아내와 시원이는 지하도에서 우산 두 개를 샀다. 제법 튼튼하고 예쁜 우산이 하나에 3천밖에 하지 않는다니. 이 정도 가격이라면 우산을 들고 다니느라 힘을 뺄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실용적인 서울 나들이 기념품이 되었다.
우산을 쓰고 알록달록 연등이 밝혀진 청계천 입구로 가서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세상에 자비를 베풀려고 오셨다는 부처님. 우리도 누군가에는 자비를 베풀며 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세상이 그럭저럭이나마 돌아가는 것은 아닐까?
약한 헤드라이트로 깜깜한 도로를 비추며 길도 잘 모르는 서울에서 스마트폰의 작은 내비게이션에 의지하여 빗길을 헤치며 원주로 내려오는 길. 크루즈 패밀리가 다시 떠올랐다. 그 영화에서 제일 감동적인 부분은 원시인 아버지가 아이디어를 쥐어짜서 탈출하는 장면이다. 가장 위협적이고 위험한 부분에 기회가 있고, 그들에게서도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교훈을 전해준다.
과거의 안락함에 머물 것인가, 위험을 무릅쓰고 미래를 찾아 떠날 것인가?
인간이 문명을 이룬 이래로 가장 오래된 질문이 아닐까 싶다. 영화는 그 질문의 원형을 풍부한 상상력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영화가 주는 또 하나의 교훈. 모든 것이 준비된 채로 크루즈를 떠날 수는 없다. 바로 지금 당장 떠나라. 문제를 만나면서 현명한 아이디어로 해결하라. 지금 당장 크루즈를 떠나되 가족을 놓치지 마라. 우리가 잊지 말아야 가치는 바로 그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