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를 들러 금산으로 여수의 캠핑빌리지는 돌산에 있었는데, 왜 돌산이라 불리는지 짐작이 갈 정도로 자잘한 돌이 많았다. 텐트를 칠 곳에는 잔디를 깔았는데, 주변에 나무가 없다보니 휑한 느낌이었다. 컨테이너 박스로 만든 간이 화장실과 샤워실, 취사실은 조악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덕분에 여수엑스포가 열리고 있는 극성수기에 하루 4만원이란 가격으로 잠 잘 곳을 마련할 수 있었다. 나름 오토캠핑장이라 주차를 하고 바로 옆에 텐트를 칠 수 있어서 편리했다. 거기다 엑스포행사장으로 가는 셔틀버스를 30분 간격으로 운행해주어서 고마웠다.
아침을 간단히 먹고, 텐트를 걷고 남해로 향했다. 원래는 남해 다랭이 마을을 구경하고, 독일 마을도 구경하려고 했다. 그런데 독일 마을에 도착하고 검색을 해보니 다랭이 마을은 방향을 거슬러서 40여 분을 가야해서 다음 기회로 미뤘다.
날씨가 무더워서 걷는 것이 불편했다. 차에서 낮잠을 잤던 시원이는 걷지 않겠다고 징징거렸다. 독일 마을은 남해의 파란 바다를 배경으로 빨간 지붕을 한 독일풍의 건물들로 현재 35번째 집이 지어지고 있었다. 6,70년대 우리나라에서 독일에 파견나간 간호원과 광부들에 대한 보답으로 은퇴할 나이가 된 사람들을 초빙하는 형식으로 땅이 분양되었단다.
우리는 운 좋게도 정원과 집이 이쁜 34번째 집인 뮌헨하우스에서 사진을 찍다가 주인아저씨로부터 10여 분간 남해 독일 마을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김두관 지사가 남해군수로 있을 시점인 10여 년 전에 사업이 시작되었고, 돈을 벌려고 독일에 간 한국교포들에 대한 보은, 안정적으로 연금을 받는 독일 은퇴자를 한국에 유치하여 부족한 외화를 끌어오려는 목적, 절반 정도의 집이 펜션을 겸하여 운영된다는 것, 당시 땅 매입비와 건축비 등에 대한 이야기까지 묻지도 않은 것들까지 친절하게 알려주셨다. 다음 기회에 이곳에 묶으면서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졌다.
발 디딜 틈도 없이 사람들이 몰려드는 까페 브레멘에서 아이스아메리카노와 아이스크림을 시켜서 햇볕이 쨍하게 드는 테라스에서 먹었다. 바람이 세게 불어준 덕분에 약간의 그늘만으로도 그렇게 덥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원예마을도 구경하고 싶었으나 땡볕이라 걷기도 불편하고, 입장료도 부담스러워 다음번을 기약하고 금산으로 행했다. 우리가 올라오는 길 반대편에서 남해로 내려오는 차가 정체를 빚을 정도로 많은 것이 신기했다. 이곳까지 피서를 오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니!
올라오는 길에 이곳에 많이 보이는 멸치쌈밥을 먹었다. 나는 멸치를 고추장에 찍어 먹는 것을 제일 좋아하는데, 그런 멸치가 아니라 작은 물고기 정도 되는 멸치를 냄비에 끓여서 내오고 멸치 젓갈이 나온다. 조금 짠 맛이지만 남해 바다를 내려다보는 경치가 그 모든 것을 즐겁게 해주었다. 다음에 볼 때까지 남해 바다여 안녕~
식후에 오는 졸음도 쫓을 겸 휴게소에 들러 아이스카페라떼를 마시고 그 더위에 직접 오븐에서 굽는 황룡빵도 사서 금산 장인어른 집에 왔다. 저녁만 먹고 얼른 원주에 가서 편하게 자고 싶었지만 아내와 아이들 희망대로 하루 자고 가기로 했다. 텐트에서만 자다가 에어컨이 틀어진 시원한 거실에 앉아 있으려니 쾌적해서 눈이 저절로 감겼다. 시원이가 조카를 보고 싶다고 해서 하루 더 자고 가기로 했다. 이렇게 긴 여행의 여독을 풀고 집에 가는 것도 좋은 것 같다.
하루를 자고 시훈이와 시원이는 텔레비전을 실컷 보다가 막내 이모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조카를 데리러 논산에 갔다. 모처럼 한가한 토요일 오후다. 이 글을 대충 마무리 하고는 낮잠을 자야겠다.
요즘은 왠지 이상하게도 뭔가 여유로운 그림이 그려졌다가 흩어지곤 한다. 그 그림의 정체를 모르겠다. 어떤 건축물인 것 같기도 하고, 어떤 생활인 것 같기도 하다. 긴 여행의 끝은 항상 내가 묶었던 집을 재발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늘 있었던 생활을 고마워하는 것이다. 그런 것인지, 어쩌면 그것보다 더 미래의 내가 희망하는 이야기인지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