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2012] 제주에서 여수로 8월 1일, 드디어 11박 12일의 제주 캠핑여행 마지막 날이다. 그런데 새벽 6시 반에 블루나래호가 기관 고장으로 오늘 결항된다고 문자가 왔다. 전화를 해보니 저녁 8시쯤에야 다른 배가 대체 투입될 예정이란다. 태풍이 밤에 제주에 올 예정이라는데.. 걱정되기보다는 하루를 번 느낌이었다. 일찍 아침을 먹고, 텐트를 걷으니 9시쯤 되었다.
우리 텐트는 코베아 휴하우스2로 작지만 탄탄하다. 설치하고 해체하는데 시간이 별로 걸리지 않는다. 3년 전에 텐트를 샀을 때는 캠핑이 뭔지, 텐트와 타프가 뭔지도 몰랐다. 돔텐트를 샀다가 거실형 텐트가 추세라고 해서 취소하고 부랴부랴 고른 것이었다. 처음에는 매우 커 보였는데 지금은 훨씬 큰 텐트들 틈에서 왜소해 보인다.
이 작은 텐트 덕분에 4년 연속 총 70여 일 동안 제주 이곳저곳을 돌아다닐 수 있었다. 첫해부터 3년 연속 태풍을 만났지만 폴대에 연결된 천이 조금 찢어지는 정도에 불과할 정도 피해가 없었다. 그동안 제주에서 초보 캠퍼를 도와주었던 사람들을 잊지 못할 것이다. 첫 해에 큰 팩을 빌려주어 우리 타프를 바람으로부터 지켜주었던 서연이네, 둘째 해에 비가 억수같이 오는 태풍 속에서 우리 텐트를 동여매주던 녹차청년과 그의 친구들, 작년에 태풍을 피해 돌아다닐 때 홀연히 나타나서 팔뚝보다 굵은 말뚝과 노끈으로 우리 텐트를 지켜주신 두 분의 어르신. 그 얼굴들이 모구리 야영장의 뭉게구름 위에 포근하게 어른거렸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캠핑은 자연의 힘과 그것을 이겨내는 따뜻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제주시로 가는 길에 사려니숲을 들렀다. 좋다는 말은 많이 들었었는데, 시원이가 잘 걸으려고 하지 않아서 이번에야 오게 되었다. 이렇게 훌륭한 숲을 공짜로 마음껏 즐길 수 있다니 제주는 참 고마운 곳이다. 다만, 시원이가 징징거려 많이 걷지는 못했다. 붉은 흙길이 인상적이었다. 짧은 산책을 마치니 블루나래호가 수리를 끝내고 오후 2시 40분에 출항한다는 문자가 왔다. 이제 겨우 제주에서 점심 먹을 시간만을 남겨놓았다.
제주 롯데마트 애슐리에서 요리 한 개를 주문하고 샐러드바 뷔페를 먹었다. 배가 저녁으로 연기되었으면 제주 롯데시네마에서 아이스에이지4와 다크나이트 라이즈를 둘씩 쪼개져서 보러가려고 했었다. 1+1 행사를 해서 저렴하게 볼 좋은 기회였는데 아쉬웠다. 시원이는 영화를 보지 못해 툴툴거렸지만 간단히 쇼핑을 하고 제주항으로 향했다.
배는 원래 일정보다 3시간 20분 늦게 제주항 4부두를 출발했다. 원래 출발하던 부두가 아니라서 차를 배에 싣고, 셔틀을 타고 여객터미널로 갔다가 개찰하고 가족과 함께 다시 셔틀버스를 타고 4부두로 왔다. 정신이 없었지만 아무튼 배에 탔다는 것에 안도했다. 제주 코 앞에 다다른 태풍의 영향으로 파도는 높게 일었다.
바로 원주로 올라오면 좋겠는데, 여수엑스포를 구경하려고 표와 캠핑장을 예약해놓았기 때문에 여수에서 캠핑하며 그 곳에서 태풍을 맞이하게 생겼다. 한 해도 태풍을 건너뛰는 법이 없다.
완도항에서 여수로 가기로 가는 길은 한가로웠다. 해남에서는 밤고구마를 한 상자 샀다. 중간쯤의 보성녹차휴게소는 통행량에 알맞게 아담한 크기였다. 편의점에서 녹차미숫가루와 간단히 과자와 음료수를 샀는데 마침 시훈이가 여수엑스포 입장권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바바커피를 반값에 준다는 이벤트 입간판을 보고는 그것도 두 개 샀다. 그런데 그 커피를 먹고는 배가 아프면서 잠시 뒤에는 온 몸에 두드러기가 생겼다. 다행히 두드러기는 간지럽지 않았지만 배는 누가 쥐어뜯는 것처럼 아팠다.
밤 9시쯤 여수 캠핑빌리지에 도착해서 아내와 시훈이가 간단히 텐트만 쳤다. 다음날 새벽에 도착한다는 태풍 때문에 바람이 심상치 않았다. 캠핑빌리지는 하루에 4만원을 받았는데, 가격에 비해 시설 관리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여수엑스포 때문에 관광객이 밀려드는 와중이라 호텔이나 펜션을 구하는 것조차 엄두가 나지 않는 상황이었다. 거기다 내 컨디션도 엉망이어서 바로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이틀을 더 텐트에서 자야 한다는 것이 영 떨떠름했다. 그래도 이런 상황에서 여수엑스포를 들르기로 한 결정을 무르고 싶지는 않았다. 두드러기와 배는 곧 나아질 테고, 아이들과의 엑스포 구경은 다시는 영영 오지 않을 경험일 것이다.
저녁은 밤 10시쯤에 간단히 해남에서 산 고구마를 쪄서 먹었다. 그것도 대충 먹고 바로 쓰러져서 잤다. 원래는 여수 밤바다를 배경으로 회를 먹는 것이었는데, 배가 예정보다 3시간 반이나 늦게 출발하면서 너무 늦게 여수에 도착하고, 내 상태도 최악이라서 다음 기회를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내륙은 연일 폭염이라는데 바닷가라 그런지, 태풍 때문인지 텐트가 크게 비틀거릴 정도로 바람이 불어서 덥지는 않았다. 밤새 바람만 세게 불고 비는 오지 않았다. 비가 오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태풍과 몸 컨디션이 엉망인 와중에도 내일 엑스포에 대한 기대감이 파도만큼이나 크게 일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