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소 이야기 / 300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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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이야기 2012-06-29 박형종
첫화면 2012-02-25 박형종
새해를 맞이하며 2011-12-31 박형종
레고로 만든 집   [3] 2011-12-30 박형종
겨울방학 2011-12-21 박형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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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화면

매거진은 올해 들어 처음이다. 요즘은 포스트잇에 짧은 일지를 주로 쓴다. 그래도 매거진은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다. 긴 글이기 때문에 생각을 많이 하며 쓰게 된다. 
 
개학을 하며 학교 일이 바빴지만 출퇴근하는 길에 영원한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에 빠져들곤 했다. 아이들일까, 책일까, 바다소일까,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일까?
 
3일전 그러니까 22일 밤, 피곤해서 평소보다 일찍 자려고 10시반쯤 안방에 들어갔다. 시훈이게는 고무나무 침대와 책상 세트, 시원이에게는 자작나무 침대와 책상 세트를 사주어서 아이들이 각자의 방에서 자는 덕분에 이 집에 이사온지 4년만에 안방에서 자게 된 것이다. 
 
빨간 코쿤이 눈에 들어 왔다. 거실에 있다가 퍼즐소파와 함께 안방 침대 발바닥 쪽으로 옮겨져서는 쓸모 없이 퍼즐소파 위에 놓여 있었다. 이번 겨울에 충전재를 넣어서 도톰한 것이 침대 높이와 같았다.
 
코쿤에 누워 보았다. 바닥이 아닌 퍼즐소파 위에 놓여 있어서인지 조금 불편 했지만 그래도 안방에서 처음 맛보는 달콤한 시간이었다. 아내는 자기방에서 자는 것을 무서워하는 시원이를 재우며 시원이방에서 자고 있었다.
 
그냥 잠시 안방의 코쿤에서 쉬는 느낌을 즐겨보려 했던 것인데 생각이 자연스레 바다소로 흘렀다. 휴대폰의 문자메시지처럼 바다소에 메시지를 주고 받는 기능을 만들면 어떨까? 바다소 메시지 보드.. 다시 서재로 가서 떠오르는 생각을 한 시간 정도 스케치해보았다.

핵심은 사람의 이름을 첫화면에 나타내는 것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고 하지 않던가. 회사가 제공하는 서비스나, 판매하는 물건, 뉴스 같은 정보 위주가 아닌 사람 그 자체가 중심인 페이지를 구현하고 싶었다. 그리고 다른 요소들을 최소화하여 파격적인 레이아웃을 실험하기로 하였다.
 
바다소의 첫화면은 우주를 나타낸다. 사람의 이름은 우주에 떠 있는 별이다. 큰 이름은 가까이 있는 별이고, 작은 이름은 멀리 있는 별이다. 초록 소나무색 이름은 최근 이틀 이내에 포스트잇에 글을 쓴 사람이고, 파란 바다색은 그 사람에게 쓰여진 포스트잇이 있는 경우이다. 빨간색 이름은 답글을 단 사람이다. 랜덤하게 이름의 위치와 크기가 변하고, 회전한다. 
 
이번 학기 들어 금요일은 가장 바쁜 날이다. 몸은 녹초가 되었지만, 밤에 할 작업을 생각하니 즐거웠다. 저녁먹고 8시부터 시작해서 세 시간 정도면 될 것으로 기대했는데, 그래픽을 만드는 과정에서 한글 이름이 깨졌다. 밤 2시가 되어도 성공하지 못하자 결국 내 실력으론 안되는 것인가 회의가 들었다.
 
새벽 3시반, 한글 폰트를 다운받아 서버에 깔고, 이름을 UTF-8로 형변환하고, 적절한 그래픽 함수를 사용하고, 형식에 맞게 폰트를 로딩한 끝에 드디어 성공할 수 있었다. 그 순간 너무 기뻐서 천번의 실패 끝에 전구를 발명한 에디슨이 떠올랐다. 이로써 7시간반 동안의 작업을 끝내고 4시에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아마도 대부분의 시간 동안에 바다소의 첫화면에 이름이 떠 있을 사람은 나 혼자 뿐일 것이다. 그것은 상관없는 일이다. 나는 내 이름을 보며 즐거워하면 그만이다. 어차피 바다소에 이런저런 이유로 하루에 수 십번도 넘게 들락날락 하는 사람은 나 뿐이다.
 
인천의 초등학교 시절 한겨울에 슬라브 건물 옥상에 올라가서 60밀리 굴절망원경으로 별을 바라보곤 했다. 내가 무슨 열정이 있다고 꽁꽁 언 손으로 이리저리 별을 찾아 헤맸는지 모르겠다. 그러면서 내가 죽으면 저 별들 중의 하나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
 
35년이 지나서 나는 내가 만든 페이지에서 별이 되었다. 그 별을 더욱 아름답게 가꾸고 싶다.
박형종   2012-02-25 (토) 23:37   인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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