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소 이야기 / 302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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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산책

아침에 일어나니 9시 40분이었다. 매거진을 쓰다가 3시쯤에 자기는 했지만 일요일이라고는 해도 예상보다 한참 늦게 일어났다. 그런데 그나마 우리집에서 내가 가장 빨리 일어난 것이었다. 게으른 가족..
 
아침 햇살을 만끽하며 산책을 하려던 계획은 산산조각났다. 거기다 시원이가 지난번 받아쓰기에서 틀린 부분을 쓰는 숙제를 해야 하는데 손이 아프다고 징징거리는 바람에 한 시간 늦어지고, 시훈이가 방과후 영어에서 내준 스타워즈 책을 두 줄 해석하는데 또 한 시간이 지체되었다. 점심을 먹고 2시 반이 넘어서야 산책을 나섰다. 그나마 나의 강한 의지가 없었다면 포기했을 것이다.
 
전날 걷기 대회에서와 똑같은 코스를 돌았다. 햇살이 따사로왔고, 시훈이와 시원이는 단풍잎, 강아지풀, 밤, 쌀알, 콩 등 온갖 가을의 보물들을 줍고, 만지작거리며 즐겁게 뛰어다녔다.
 
산책을 하고나서는 영재문구를 들러 시훈이 방과후 영어에서 하는 할로윈 축제를 위해 할로윈 모자와 스크림가면을 샀다. 저녁은 5킬로미터를 잘 걸어준 시원이가 원하는대로 피자를 먹으러 갔으나 막판에 변심을 해서 일식집에서 알밥과 회덮밥, 초밥을 먹었다. 밥알이 따뜻한게 맛있는 초밥이었다. 저녁을 먹고는 북새통에서 시훈이 영어책을 하나 사주었다. 스피치리딩훈련이란 책인데, 시훈이 레벨에 딱 적당한 것 같다.
 
집에 와서 시훈이랑 또 영어 숙제를 도와주는 씨름을 했다. 서재로 와서 좌식 테이블의 내 옆자리에서 공부하고 모르는 것은 즉시 물어보도록 했다. 시훈이가 사전을 찾아가며 다시 두 줄을 해석하는데 30분 이상을 끈기를 갖고 기다렸다. 그렇지만 knew를 "새로운(new)"이라고 우길 때 혈압이 올라 목소리가 커졌다. 오늘 사준 책은 40개의 토픽에 대하여 독해를 도와주는 단어, 중요 구문, 잘게 쪼갠 문장에 대한 해설이 있고, mp3파일로 친절하게 읽어주기 때문에 내 역할은 많이 줄어들 것 같다. 앞으로도 내 역할은 좋은 책을 구해주는 것으로 대신하는 편이 좋겠다. 지난주에 시훈이에게 한 달에 10만원어치의 영어책을 사주겠다고 했다. 내일부터는 시훈이가 공부한 부분만 확인해보는 정도로 가볍게 관여하려고 한다.
 
시훈이는 왜 아나킨이 제다이에서 악당으로 변하게 됐는지를 물었다. 예전에 영화를 봤던 부분이 어렴풋이 떠올랐던 것 같다. 나도 기억이 가물거렸다. 원래 아나킨의 마음 속에 그런 부분이 있었다고 말해주었다. 그러면서 저녁 먹은 후에 디저트로 아이리스포테이토에서 감자튀김과 콜라 세트를 동생과 나눠먹으라고 사주었을 때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 때 시훈이는 동생이 먼저 콜라를 마시자 큰 소리를 질렀었다. "너는 아까 내가 왜 콜라를 거의 마시지 않았는지 아니?" "몸에 안 좋아서" "아니 그런게 아니라 너희들에게 양보한거야. 너는 왜 동생에게 조금이라도 양보하지 않으려고 하니?" 
 
시훈이가 잠자러 서재를 나서니 밤 11시가 훌쩍 넘었다. 무언가를 시작하기에는 부족한 시간이다. 오늘은 바다소를 살짝 정비했다. 조금은 더 아늑한 공간이 될 것 같다.
박형종   2011-10-30 (일) 23:57   인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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