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소 이야기 / 308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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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

늦은 저녁 산책을 나갔다. 날씨가 더 춥기 전에 산책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사이로 자전거 한 대가 음악을 크게 틀며 다가왔다가 멀어졌고, 도로 위의 자동차 한 대도 오디오를 크게 틀고 멈춰 서 있다가 자기의 길을 떠났다. 왜 이리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걸까? 잠시 기분이 상하려고 하는 찰라에 그들은 사라졌다.
 
결국 남은 것은 풀벌레 소리와 개울 소리였다. 그들만이 계속해서 상쾌하게 내 곁을 졸졸 따라 다녔다. 세상 이치가 다 그런 것인데, 왜 그런 번잡함에 번민하는지 모를 일이다. 내가 사소한 일들에 놀라고, 화내고, 괴로워할 때, 결국 나에게 남는 것이 무엇일지 통찰력을 갖게 될 수 있다면 좋겠다.  
 
어제 야간자습 감독한 덕에 오늘 2시간 일찍 퇴근하여 시훈이랑 맥도날드에서 햄버거 하나를 먹고, 북새통에 갔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7권을 사주었고, 나는 "메디치 이야기"를 샀다. 원래는 피곤해서 그냥 낮잠이나 자려고 했는데, 동생 시원이가 친구네 놀러가서 집에서 혼자 카드나 만지작거리고 있는 시훈이를 위해 집을 나선 것이다.
 
집에 돌아와서 시훈이는 방과후 영어 독후감 숙제를 해야 한다고 했는데, 그 숙제는 지난 월요일 내준 것이었다. 며칠 전에 내준 숙제를 계속 놀다가 전날 저녁에서야 하겠다니. 하기 싫은 것을 미루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라서 이해가 되기는 했지만, 계획을 세워 미리미리 하는 습관은 중요하다.
 
나는 시훈이를 나무라면서 한편으로 내가 어떻게 하면 도와줄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그리고는 즉시 바다소에 스케줄을 프린트하는 프로그램을 수정해서 두 달치를 인쇄하는 기능을 만들었다. 그것을 시훈이 방 앞에 있는 큰 보드에 붙여 놓고 앞으로는 숙제와 중요 일정을 적도록 하였다. 그러면 시훈이도 보고, 나와 아내도 왔다갔다하면서 자주 확인하고 미리 준비하게 될 것이다.
 
 
시훈이는 그 많은 숙제를 어떻게 했는지 내가 산책을 하고 오니 한 시간 반만에 영어 책을 다 읽고 독후감도 썼다고 한다. 믿기지 않는 일이다. 내가 그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쓴다고 해도 족히 3시간은 더 걸릴 것이다. 날림으로 한 것 같은데 그냥 잘 한 것으로 믿기로 했다. 시훈이는 10시쯤에 조선왕조실록을 30분 정도 읽다가 내가 자러 들어가라고 하니까 더 읽고 싶은 책을 덮고 마지못해 안방으로 갔다.
 
어제 야간 자습 때 담임학생 상담을 하면서 인내에 대해 강조하였다. 그것은 그 학생에게도 부족하지만, 초등학교 5학년 시훈이에게도 부족하고, 나에게도 부족하다. 하고 싶은 것을 참을 수 있어야 하고, 하기 싫지만 할 수 있어야 한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습관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 하나만 고르라면 인내가 아닐까 싶다. 묵묵히 노력하다보면 세상의 번잡함은 스스로 저 멀리 사라질 것이고, 크고 작든 언제가 성공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서재에도 풀벌레 소리와 개울 소리가 스며들었다. 그 소리를 따라 가을이 깊어간다.
박형종   2011-09-08 (목) 23:53   인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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