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소 이야기 / 310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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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19
박형종
퀵 메모와 퀵 스케줄
2011-08-15
박형종
연대기
2011-08-15
박형종
문씨네 망고농원,등경돌식당,경진공업사, 집
2011-08-11
박형종
텐트 철수, 이중섭미술관, 나포리호텔
2011-08-10
박형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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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트 철수, 이중섭미술관, 나포리호텔
믿기지 않는다. 오늘이 마지막 밤이다! 17박 18일은 너무 길어보였지만 막상 태풍이 올 즈음해서 찜질방과 민박, 호텔 등에서 잠을 자고 관광을 줄이니 시간이 더욱 빨리 가는 것 같다. 오늘은 서귀포의 나포리호텔 509호에서 잔다. 두 방향의 큰 유리창으로 새섬을 내려다보는 풍경이 흡사 나폴리를 닮은 것 같긴 하다. 성수기임에도 추가 요금 없이 6만원에 큰 방을 내주셨다. 더블 침대 두 개와 원형 부부 테이블이 놓인 것이 어제 잤던 일출봉호텔과 비슷하다. 아내는 마지막 밤을 이런 곳에서 보낼 수 있어서 매우 만족해했다. 아이들도 큰 침대를 뛰어다니며 서로 씨름을 하고 뒹굴다가 방금 전에 잠이 들었다. 모구리야영장에서 노트북을 하면 불빛을 보고 온갖 날벌레들이 불청객으로 꼬였는데 이곳에서는 에어컨 바람을 쬐며 테이블에서 편하게 글을 쓰고 있다. 오늘 밤에는 빨리 집으로 가고 싶은 마음과 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 마치 새섬방조제를 드나드는 파도처럼 교차하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니 성산일출봉이 안개에 덮혀 믿둥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곳으로 쉴새없이 올라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아내 말대로 사람들이 에스칼레이터를 타고 있는 것 같았다. 전망이 좋은 방이다. 안개가 걷혔었다면 더욱 좋았을텐데. 그나마 비가 오지 않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삼을 일이었다. 호텔에서 삼각김밥, 삶은 달걀 등으로 간단한 아침을 먹고 11시 반쯤 호텔을 나서 성산포항의 수협직판장을 가봤다. 올라가는 길에 선물로 살만한 옥돔을 살펴 보니, 4마리 1kg짜리가 4만 5천을 하였다. 일단은 시세만 확인하고 제주 호박엿이나 사서 먹으면서 모구리야영장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아바이순대라는 곳에서 현장정식과 순대정식으로 점심을 먹었다. 현장정식이라는 메뉴를 처음 들었는데, 건설 등의 일을 하시는 분들이 단체로 주문해서 먹는 메뉴를 가르키는 것이었다. 한 테이블의 4명이 모두 같은 것을 시켜야 하는 제약이 있기는 하지만 6천원이라는 가격대비 닭볶음과 꽁치조림도 나오는 훌륭한 품질의 식사였다.
원래는 마지막 날만큼은 텐트에서 자며 유종의 미를 거두려고 하였으나 전날도 비가 많이 와서 땅이 계속 젖어 있었고 짙은 안개가 끼어 있어 해가 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올해 보니 성읍이 비가 많은 지역 같다. 야영장에는 비가 와도 서귀포 쪽으로 가다보면 해가 쨍쨍한 적이 여러번 있었다. 해가 날때 바짝 마른 상태로 텐트를 철수해야 곰팡이 같은 것도 생기지 않는데, 다음날도 비 소식이 있으니 어쩔 수 없이 철수를 할 수 밖에 없다. 아내가 짐을 꾸리고, 나는 그 짐을 차에 잘 넣은 일을 했다. 승용차에 네 사람이 타고, 캠핑짐을 실으려면 체계적으로 짐을 넣어야 한다.
아내가 짐을 꾸리는 동안 자전거, 전등, 아이스박스, 이단 행거, 전기담요와 가스히터까지 빌려주셨고, 태풍 때는 강한 비바람을 맞아가며 말뚝을 박아 텐트를 동여매주신 두 분 아저씨게 빌린 물건도 반납할겸 인사를 갔다. 마침 이웃 텐트 분과 술 한잔을 겸해서 점심 식사를 하고 있었다. 나도 자리에 앉아 소주 한잔을 받고, 닭백숙과 닭죽을 대접받았다. 특히 닭백숙 중에서 한점을 집어 주시길레 뭔가 했던이.. 닭머리였다!! 눈알과 혀까지 그대로 였다. 그것을 주시면서 닭은 다른 것은 다 필요없고 닭벼슬을 먹어야 한다며 몇 번이나 사양하는 나에게 강하게 권하셨다. 정말 눈 딱감고 닭벼슬을 먹었는데 쫄깃한게 마치 돼지 껍데기 같은 맛이 났다. 그렇지만 닭머리의 피부는 조금 밖에 먹지 못했다.
그 두 분은 몇 번씩 헤어지게 되어 서운하다고 말씀하셨고, 나도 그랬다. 두서없이 잠깐 만난 사람의 인연은 별것 없는 것 같은 데도, 이번에 보듯이 태풍도 이겨낼 수 있는 도움을 주기도 한다. 나도 그 아저씨께서 지나가는 말로 두바이 청년을 약천사로 바래다주면 어떻겠냐고 했을 때 그러겠다고 하고 일부러 약천사로 가서 방을 잡고, 수련실로 들어가는 것까지 동행한 적도 있었다. 오늘 이웃에게서 들은 이야기인데 야영장의 대피소에서 사람들이 내 텐트가 강풍에 이리저리 흔들리며 언제 날아갈 것인가를 지켜보고 있을 때, 그 두 분이 홀연히 나타나서 톱으로 나무를 잘라 해머로 박고 끈을 동여매주셨다고 한다. 다들 그 두 분이 텐트의 주인인줄 알았다고 한다. 텐트를 말뚝에 끈으로 묶고, 큰 돌로 눌러놓지 않으셨다면 내 텐트와 그 안에 넣어 놓았던 가재도구들이 8시간 동안 지속되었던 강풍에 어떻게 되었을 지는, 그것을 보는 우리 가족의 심정이 얼마나 참담했을 지는 뻔한 일이다. 오늘 텐트를 철수하는 내내 내가 도저히 뽑을 수도 없는 말뚝들을 보며, 그 보다 더 깊숙히 감동이 남았다. 이번 캠핑에서 가장 기억하고 싶은 부분이다.
이웃들에게 인사를 하고 차에 타니 4시 반이었다. 짙은 안개만 끼었지 비가 오지는 않았던 고마운 날씨였다. 차는 매우 좁아졌다. 이런 비좁은 상태로 내일 낮 12시 반까지는 제주에서 지내고, 7시간을 운전해서 원주로 돌아와야 한다. 오늘 어디에서 잘까? 중문에서 자고 싶지만 제주에서 가장 비싼 동네이고 거리도 성산포항에서 멀어서 제외. 서귀포 이중섭미술관으로 가면서 그 근처에서 묵을 곳을 찾기로 했다.
작년에 이중섭미술관을 보려고 했으마 마침 월요일이어서 휴관을 했었다. 그때 아내가 그곳 주위에 호텔이 많았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언덕 위에 있는 나포리호텔을 보는 순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열쇠를 들고 방을 확인해보니 전망이 최고였다. 가격도 맘에 들고, 전날에 방을 구하느라 두 시간 넘게 소득없이 헤맨적도 있어서 이번에는 단번에 결정했다.
일부 짐을 호텔방에 놓고 이중섭미술관으로 갔다. 8월에는 저녁 8시까지 관람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이중섭의 그림이 많지 않은 이유가 서귀포에서의 체류기간이 1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체류했던 초가집을 보니, 부엌과 방이 각각 2평도 안 되는 옹색한 곳이었다. 정말 1년을 체류하기에도 버거운 장소로 보였다.화가가 41살의 나이에 영양결핍과 간염으로 일찍 죽었다는 사실이 안타까왔다.
저녁은 덕성원으로 가려다가 마침 휴업일이어서 평양면옥이라는 곳에서 밀면과 메밀비빔막국수, 만두, 수육을 먹었다. 밀면은 작년에 중문쪽에서 처음으로 먹었는데, 밀가루로 만든 면이란 뜻으로 제법 쫄깃하게 씹히는 맛이 있다. 배가 고프다며 이중섭미술관에서부터 징징대던 시원이는 만두를 시키고 만두 한개씩 주면서 다른 사람이 시킨 음식을 모두 달라고 해서 맛있게 먹었다.
편의점에서 숙소에서 먹을 삼각깁밥과 삶은 달걀, 치즈스틱, 우유, 초코릿 등을 샀다. 그리고는 바로 앞의 예그리나라는 까페에서 테이크아웃으로 카푸치노와 까페모카를 사서 숙소에서 커피를 마시며 이번 여행을 음미해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눈썰미 좋은 아내가 우리가 까페에 들어서기 전에 주인 아주머니가 노래를 부르려던 참이었다는 것을 알아챘다. 까페에 보니 50대로 보이는 남자 손님 두 명이 있었는데, 주인 아주머니의 초등학교 동창이었다. 그 세 분이 모두 음악을 좋아해서 함께 노래를 부르려던 참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테이크아웃하려던 것을 노래를 들으며 커피를 마시겠다고 부탁을 드렸다. 그래서 두 남자분께서 번갈아가며 네 곡의 노래를 부르셨는데 정말 감미로운 음성이었다. 까페는 아담한 편이었고, 사다리꼴 모양이었다. 그 좁은 끝쪽에 단을 높혀 피아노와 색소폰이 놓여 있었고, 천장에는 바이올린이 걸려 있었다. 주인 아주머니가 피아노도 칠 줄 아시고, 색소폰도 배우신다고 했다. 이번 여행을 마감하는 순간에 뜻하지 않던 훌륭한 음악회였다.
그렇지 않아도 캠핑장에서 우클레레 아저씨를 만나고 나서 1년 정도의 시간을 갖고 우리 집의 서재를 av룸으로 꾸미려는 계획을 갖게 되었는데, 이 까페가 좋은 모델이 될 것 같다.
마지막 날이라 그런지 글을 쓰다보니 이번 것은 분량이 많다. 이렇게 해서 여행의 마지막 밤에 나홀로 깨어 있게 되었다. 일지를 쓰듯이 매거진을 쓰는 것은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는 일이다. 모든 여행에 이렇게 매거진을 쓸 수는 없다. 작년 제주여행에 처음으로 쓰게 되었고, 이번 제주여행에 두 번째로 쓰는 것이다. 재작년 제주여행 때는 매거진이라는 도구가 없어서 글을 남기지 못한 것이 아쉽다. 하지만 어차피 모든 것을 기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기록은 나보다는 아이들을 위한 것이다. 그래서 자랑할만한 것도 아니고 부끄럽지만 공개를 선택한 것이다.
내년에 또 제주를 오게 될까? 일년이 지나면 아마도 오고 싶은 이유가 또 쌓일 것이다. 그렇더라도 일주일 내외의 짧은 기간이 될 것 같다. 캠핑 장비는 최소한으로 줄이고, 박물관 보다는 해수욕장에서 파도나 즐기고 싶다.
17박 18일. 시간이 충분하면 미련이 남지 않을 것 같았는데, 그렇지만도 않다. 어쩌면 인생도 그럴 것이다. 그렇지만 이번에 못한 것을 다음번에 하려고 하지 말자. 그럴 기회는 오지 않을 것이다. 과거에 연연하지 않아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내가 이번 여행에서 얻은 깨달음이 있다면 그것이다.
새섬으로 가는 가로등 불빛들이 아직도 환하게 길을 비추고 있다.
박형종
2011-08-10 (수)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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