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 & 스타
이번 해에 들어서 새로이 실시하게 된 창의적 체험활동 집중기간에 캠핑을 갈 수 있는 40명 안에 들게 되었다. 그리고 역시 신청 당일 노트북 앞에서 15분 전부터 눈에 불을 켜고 클릭을 해댄 보람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
캠핑을 위해 강릉 망상 오토캠핑장으로 출발한 건 27일 오전이었다. 선배와 동기들 40명이 학교 버스를 타고 가는 길은 길기도 길었지만 내내 자느라 버스에서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캠핑장으로 가기 전에 가장 먼저 들른 곳은 바로 Coffee Cupper 커피 박물관이었다. 우리나라에 커피 박물관이 있다는 소리는 들어본 바가 없는데 전국에서 하나뿐인 박물관인 것 같았다. 아담하고 카페처럼 꾸며져 있어 건물은 박물관의 딱딱한 느낌을 모두 지워내고 있었다. 안내자분을 따라 두 그룹으로 나누어 관람을 시작했다. 내가 속한 그룹은 먼저 커피나무와 커피콩, 그리고 커피의 역사에 관한 기본적인 설명을 들었다. 커피나무는 열대성 기후에서 자라는 식물이고 일교차가 클수록 열매의 맛이 좋다고 한다. 커피 열매는 체리처럼 생긴데다 빨간색이 대부분이었는데, 그래서 커피체리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기후가 알맞지 않아 하우스에서만 기를 수 있지만 개량품종이 활발히 개발되고 있다니 곧 우리나라에서도 커피를 키울 수 있을 날이 올 것이라 하셨다. 그 품종이 개발되면 기숙사에서 커피나 키워봐야겠다. 다음으로는 커피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커피의 역사에 관한 전시물들을 봤다. 커피열매를 도정해내면 그 안에 있는 씨가 추출되는데, 이것을 건조시키고 껍질을 벗겨내고 나면 그린빈이라는 로스팅하기 직전 상태의 커피가 된다. 이제 이 그린빈을 오랫동안 천천히 불에 가열시키는 로스팅의 과정을 거치면 흔히 알려진 짙은 갈색의 커피원두가 만들어진다. 마지막으로 원두에서 커피를 추출해내는 과정이 남았는데, 역사적으로 수많은 나라에서 수많은 방법으로 커피를 추출해왔다고 한다. 요즘에야 대부분 에스프레소 머신이나 사용하기 편리하게 되어있는 기계를 통해 커피를 추출하지만, 옛 유물들을 보니 손으로 핸들을 돌려 원두를 갈고, 실린더에 넣어 가열해 추출하는가 하면 역으로 되어있는 플라스크에서 올라오는 증기를 통해 추출하기도 했단다. 커피가 가장 고급스러운 차로 인정받는 것은 어쩌면 커피 자체보다는 이런 다양하고 화려하기도 한 추출방법과 높은 가격의 영향이 클지도 모르겠다. 다음으로는 직접 커피콩을 로스팅하는 체험을 해보았다. 그린빈 상태의 커피를 철망으로 된 냄비에 담고 강한 불에서 쉬지 않고 섞어주며 서서히 가열해나가자 커피가 익으며 색깔이 변하기 시작했다. 색이 조금 변했을 때 한번 팝콘 터지는 듯한 소리가 나며 일차 단계 완료를 알렸다. 계속해서 가열해 약 20분쯤이 지났을까, 이번엔 참께 볶는듯한 소리가 다시 났고, 이어 조금 더 가열하자 추출할 수 있는 상태의 커피콩으로 거듭났다. 이제 이리저리 열을 식히고 봉지에 밀봉해 담고 점심을 먹으러 출발했다.
점심은 대부분의 사람이 좋아 죽어라하는 회! 나는 회를 잘 먹는 편이 아니라 무덤덤했지만 친구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그래도 따라서 기분이 좋아졌다. 거대한 쟁반에 회가 모음으로 나왔고, 몇십 분에 걸쳐 이리저리 집어먹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은 지나고 버스는 다음 목적지를 향했다.
다음 목적지는 다름 아닌 대형할인마트. 캠핑에 온 만큼 직접 메뉴를 정해 요리를 하기로 계획되어있었다. 우리 조는 일단 그날 저녁에 있을 바비큐와 야식, 그리고 다음날 아침메뉴를 정했다. 바비큐는 보통 먹는 목살과 갈매기살, 라면 그리고 다양한 야채, 김치, 햇반을 샀고, 야식으로는 과자모음과 음료수, 다음날 아침으로는 카레를 직접 요리해 먹기 위해 카레가루와 야채를 구입했다. 지정금액은 18만원이었기에 이리저리 싼 상품을 찾아다니며 가격을 맞추기 위해 돌아다니는 것도 1박2일에서만 보던 나름의 재미였다.
이제 버스를 타고 망상오토캠핑장에 도착했다. 마트에서 산 엄청난 양의 물품을 한 박스에 담아왔기 때문에 친구와 둘이서 들고 오느라 팔이 빠질 지경이었지만, 바다가 보이는 팬션의 모습은 벌써부터 마음을 설레게 만들었다. 아직 시간이 많이 늦지 않았기에 짐을 정리하고 다음날 보너스 밥값을 위해 족구와 피구경기를 했다. 결과는.. 우리조가 꼴지를 했다는 것만 말하겠다.
기다리던 바비큐의 시간이 도래했다. 물론 고기를 썩 잘 굽는 사람이 조에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덜 익은 돼지고기가 속출했지만 구충제를 먹으면 된다는 근거 없는 믿음에 조원들은 고기를 먹어치웠다. 대부분의 야채와 고기를 자르고 굽던 나는 그나마 덜 먹은 것 같아서 지금 생각해보니 힘든 것보다 오히려 다행인 게 아닐까. 고기에 양파까지 밥과 함께 구워먹고 라면을 한 냄비에 한 번에 끓여내서 먹고 나니 할 일이 없었다. 족구를 하다가 다쳐서 설거지를 하기도 힘들고, 대신 해변영화제를 준비하시는 선생님을 도와드렸다. 물론 다음 순서는 영화제. 라푼젤이라는 애니메이션을 봤는데, 디즈니 애니메이션인 만큼 결말은 뻔했지만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영화가 끝나니 시간이 꽤 늦었었다. 선생님께서 아까부터 만들고 계시던 아이스커피를 친구들과 한잔씩 받아서 들고 바닷가로 나갔다. 역시 밤바다는 쏴아쏴아거리는 파도소리와 함께 까맣게 아름다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해변에 손도장을 찍고 이름과 함께 소망 한 구절을 써놓고 마음에 묻었다. 그 후에 그네를 발견해 초등학생 때의 그네실력을 실컷 발휘하다가 숙소로 돌아와 내일 아침 메뉴가 될 카레에 들어갈 야채들을 손질하고 잠들었다.
다음날 아침은 꽤 일찍 시작됐다. 아무리 늦게 잠들어도 이렇게 놀러오면 첫날만큼은 아침 일찍 몸이 벌떡 일어난다. 빨리 씻은 후 친구들을 깨우고 조의 여자아이들도 전화로 깨웠다. 요리를 혼자서 많이 해본 편은 아니지만 워낙 어머니 옆에서 본 것이 많아 아이들이 오기 전까지 왠만한 준비를 끝마쳐 놓았고, 어쩌다 보니 내가 요리 전담인 것처럼 요리를 맡아하게 되었다. 물론 많은 친구들이 옆에서 거들어주어 일은 수월했고, 카레는 만들기 쉬운 메뉴이니 금방금방 해낼 수 있었다. 캠핑을 와서 처음 만들어먹는 아침의 맛. 안 먹어본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시간이 없어 설거지는 뒤로 미루어놓고 준비를 해 버스에 올랐다. 이날의 첫 일정은 삼척의 레일바이크를 타는 것. 1박 2일에서도 지나간 코스라 꽤나 기대가 됐다. 철도를 따라 움직이는 4인승 레일바이크를 타고 친구들과 달리다보면 아름다운 풍경에 미소가 지어지기도 했지만, 마을을 지나가는 구간에서는 주민들이 소음으로 인한 고통을 호소한 현수막들이 끊임없이 눈에 들어와 기분이 썩 좋지 않기도 했다. 그래도 터널 속까지 지나가는 레일바이크는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레일바이크를 타고 나오니 밖은 엄청 더웠다. 바로 영화관으로 출발한 일행은 곧 롯데시네마에 도착했다. 시내거리인 만큼 대부분의 시설들은 다 있었고, 영화관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친구들과 건물 안 오락실을 들락날락거리다가 영화를 보러 들어갔다. 간만에 보는 영화인데 정말 좋은 영화를 보게 되어 좋았다. 중년 여성이 죽어가는 고교시절 친구를 만나면서 인생을 되돌아보게 되는 것. 나도 언젠가 저런 날에 내 오늘날을 되돌아보았을 때 피식 웃고 눈물 뚝뚝 흘릴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원래는 저녁도 직접 해먹는 계획이었지만, 이왕 시내로 나온 만큼 피자를 먹기로 일정이 바뀌었다. 배가 불러서 많이 먹지는 못했지만 학교에서는 금지음식인 피자를 밖에서 학교선생님, 친구들과 먹는다는 것이 영 웃기기도, 즐겁기도 했다.
다음은 야식과 다음 날 아침을 해결할 또 다른 메뉴를 마련하기 위해 대형마트로 향했다. 이번 메뉴는 떡볶이와 수박화채, 과일, 그리고 육개장으로 정해졌다. 떡볶이는 나와 종민이의 경험을 토대로 만들기로 했고, 육개장은 귀찮아서 팩으로 된 즉석음식을 샀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번엔 직접 밥을 지어 먹기로 했다. 요리하는 음식을 최대한 늘려서 돈을 아껴 아이스크림은 하나씩 입에 물고 캠핑장으로 돌아갔다.
숙소로 돌아오니 쌓여있는 설거지거리들이 눈에 먼저 들어왔다. 친구들이 옆방에서 퍼질러져 티비를 보고 있으니 혼자 집안일하기에는 절호의 기회였다. 역시 중학교 시절까지 할 일을 하지 않으면 벌로 해왔던 설거지 실력은 빛을 발하는 듯 했다. 바느질도, 설거지도, 요리도 생각해보면 어머니는 내게 참 훌륭한 벌들을 내려오신 것 같다. 내 아이들한테도 시켜야겠다. 그렇게 수북히 쌓여있던 설거지를 다 끝내고 나니 속이 다 개운했고, 선생님께서는 상으로 팥빙수를 일등으로 먹을 권리를 주셨다!
이번에는 야식을 먹기 전에 모여 캐리커쳐, 해변 음악제와 또다른 영화제를 했다. 조용하고 소심해 보이기만 하셨던 이준석 선생님께서 뛰어난 노래실력을 보여주셨고, MR은 없었지만 몇몇 사람들의 용기가 썰렁할 뻔한 음악제를 살려냈다. 영화제에서는 솔트를 보았고, 어이없는 결말에 친구들과 한마디씩 하다가 서둘러 떡볶이를 만들기 시작했다. 주 셰프는 경험이 있는 나와 종민이었다. 하필 재료를 몇 개씩 빠트리고 사와 어쭙잖게 만들던 것이 후반에는 맛이 부족해 결국 라면스프를 넣게 되었지만, 그래도 친구들은 맛있다고 웃으며 먹어주었다. 그래, 친구란 건 부족하더라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줄 수 있는 존재다. 밤에 또 해변에 나가 걷다가 친구들이 농구하는 걸 구경하다 돌아와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 늦잠을 자버렸다. 허겁지겁 씻고 나와보니 시간이 얼마 없어 급한대로 밥을 짓기 시작했다. 쌀을 불려놓지 않았으니 물을 더 넣어야 하는데 정신이 없다보니 평소와 똑같은 양을 넣어버린 걸 알아차리지도 못한 채 육개장을 준비했다. 다른 반찬이 다 준비되고 나서 밥솥을 열었더니.. 생쌀을 보는 듯 했다. 친구들한테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 하다 일단 밥을 먹는 게 먼저인 것 같아 그런대로 먹었다. 친구들은 이번에도 참고 먹어주었다. 설거지도 허겁지겁 대충 끝내고 짐을 모두 챙겨 버스에 실었다. 벌써 캠핑장을 떠날 시간이 왔다.
처음 간 곳은 하슬라 미술관. 하슬라는 언뜻 보면 영어 같지만, 한때 강릉을 부르던 명칭이라고 한다. 산 중턱에 아직도 건설중인 듯 했지만, 나름 색다른 경관과 전시물들은 눈으로 즐길 만 했다. 박물관에서 나와 점심은 그 근방에서 유명하다던 물회와 회덮밥으로 해결했다. 물회를 골랐는데, 신 맛이 강해서 많이 먹지는 못했더라도 나름 유명한 음식을 먹었다고 생각하니 만족스러웠다.
이번 캠프의 마지막 순서는 참소리 박물관 견학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많이들 갔다온 것 같았지만, 난 처음이었기에 많이 흥미로웠다. 커피박물관에서부터 해서 신기한 박물관인데다가 전세계의 에디슨 영사기를 모두 소장하고 있고 축음기 또한 가장 많이 전시한 박물관이라니 우리나라 박물관들의 위엄이 느껴졌다. 또한, 직접 축음기를 작동시켜 200년 전의 소리를 들려주어 망가지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도 들었지만 정말 색다른 경험이었다. 에디슨의 3대 발명품인 축음기, 영사기, 전구는 현대 생활에 있어서 모두 필수적인 요소들이다. 몇 백년 전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그 많은 발명품들을 발명한 에디슨이 존경스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상업적인 용도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점에서 비판받을 점도 많은 것 같다. 테슬라처럼 안전한 발명품을 아무런 보상 없이 내놓는 사람도 분명 존재하는데 말이다.
이번 캠핑은 처음으로 가본 캠핑이기도 했지만,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함께한 인생의 배움이자 나를 찾는 여행이었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주어진 환경에 맞추어 협력하는 재미와 수많은 박물관과 영화, 견학을 하면서 하나하나 느낀 것들이 앞으로 내 삶에 미칠 영향이 얼마나 클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바닷가에 찍고 온 손도장을 찾을 수 있을 날이 올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