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터닝포인트 낮에 그동안 처제의 둘째 아이를 봐주러 지난 한달 동안 올라와 계셨던 장모님을 터미널에 모셔드렸다. 차 뒷자리에서 느즈막에 연년생인 두 아이를 키우느라 힘들 처제 걱정에 눈물을 보이셨다. 부모 마음이 그런 것인가..
나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언젠가 그럴 날이 올 것이다.
터미널에 간 김에 아이들은 터미널 옆의 프리존에서 한 시간 동안 놀라고 하고, 아내와 까페베네에서 카푸치노, 딸기요거트브레드로 간단한 점심을 먹었다. 같은 까페베네라도 맛이 다 다른데 여기 카푸치노가 제일 맛있다.
아내는 잡지를 열심히 본다. 나도 집어들고 보니 인천공항 잡지다. 별 기대없이 뭐가 있나 들쳐보다가 곧 이국적인 취향에 빠져본다. 맛있는 카푸치노가 있어 더욱 그 세계에서 빠져나오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한 시간은 금새 갔다.
곧 내려온 아이들에게는 스페셜와플을 사주었다. 아이들은 후딱 먹어치우고, 까페 한쪽에 나란히 놓여 있는 두 대의 컴퓨터에서 인터넷 세계에 빠져든다. 시훈이는 웹툰과 게임, 시원이는 고스톱과 햄버거 만드는 게임. 나는 구태여 말리지 않는다. 집에서라면 말렸겠지만, 가끔은 신세계에 빠져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 비싼 커핏값을 주고 여기 와 있는 것이 아닌가.
3시 반. 서점에 책 구경을 가기 전에 뉴욕뉴욕이란 레스토랑에서 사이드 메뉴라는 감자튀김, 소시지를 처음으로 시켜보고 작고 얇은 피자 두 판으로 배부른 간식을 먹었다. 그리고 북스타서점에서 책을 보다 집에 왔다. 오늘은 왠일인지, 책을 보는 동안에는 인형을 장식하는 소품을 두 개나 사달라고 졸라대던 시원이가 순순히 아무 것도 계산대로 갖고 오지 않았다.
이렇게 오늘 나들이가 끝났다. 11시에서 저녁 7시까지 원주 터미널 근처에서만 놀아도 충분히 시간은 재미있게 갔다.
집에 와서는 어제 유치원 재롱발표회에서 자기 친구들이 췄던 루팡 동영상과 자기가 집에서 췄던 루팡 동영상을 보여달라고 했다. 자기가 더 잘 췄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리고는 자기에게 USB메모리를 하나 선물해달라고 했다. 노래를 담아서 유치원가서 노래도 듣고 친구들하고 춤도 추려고 그런다는 것이다. 그럴려면 MP3플레이어도 필요하고, 불편할텐데..
친구가 유치원에서 휴대폰에 노래를 담아와서 춤도 추고 그랬던 모양이다. 자기도 그런게 하고 싶었나 보다. 유치원 여자 친구들 중에 휴대폰을 갖고 있는 아이들이 여럿 있다고 지난번에 말하며 사달라고 조르던 기억이 났다.
3월에 학교 들어가면 등하교하는 일도 걱정이라 그렇지 않아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왕 사줄거면 조금 일찍 사줘서 유치원 때도 휴대폰을 써봤다는 추억도 좋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엄마한테 말해서 좋다면 내일 휴대폰 구경가보자고 했다. 그 말에 엄청 좋아라 하며 안방으로 달려갔다. 그 이야기를 들은 시훈이는 아예 안방 침대에서 구르다가, 바닥에 드러누었다. 언제부턴가 내 스마트폰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유치원 다니는 딸과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이 휴대폰을 쓰는 것이 별로 이상하지 않은 세상이 되었다.
어제 아침에는 유치원 발표회를 위해 아내가 시원이에게 화장해주는 것을 10분 넘게 동영상으로 찍었다. 색조 화장도 하고, 반짝이를 뿌리고, 눈썹도 그리고, 입술에 루즈도 바르고 하니 멋있고, 신기했는지 연신 거울을 들여다 보았다. 아내는 다 하면 찍지 왜 지금 찍냐고 핀잔을 주었다. 영화의 메이킹 필름 모르니..
(그리고 우리딸의 마지막 유치원 발표회잖아..)
시간은, 마치 주먹으로 움켜쥔 모래들이 스르르 손가락 사이로 빠져 달아나듯이, 그렇게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흐른다.
탄생, 졸업, 입학, 휴대폰처럼 꼭 갖고 싶은 것을 갖게 된 날, 만남, 결혼, 출산, .. 남들에게는 시시하고 흔한 일이지만, 본인에게는 절대적으로 중요한 인생의 터닝포인트들. 시간이란 긴 여행에서 잠시 머무르는 간이역 같다.
내 기차는 어제 오늘 그 어떤 간이역에서 잠시 머물렀다. 나는 다음 간이역이 무엇일지 모른다. 움직이는 도중에 역은 무수히 생겼다 없어질 것이고, 의미없는 역에서는 서지 않을 것이다.
빠져나간 모래들이 아쉽기는 하지만, 나는 아직도 내 주먹에 남겨진 반짝이는 모래들이 사랑스럽다. 어떤 것일지 궁금하기는 하지만 주먹을 펴는 순간 쏟아져 내릴 것이다.
아이들은 너무 기뻐서 잠이 오지 않는다며 안방 침대에 누워서 휴대폰에 대해 한참 서로 이야기를 한다. 휴대폰에 게임을 까는 것, 친구의 휴대폰에서 블루투스로 노래를 다운받는 것,.. 내가 어렸을 때는 설날 받는 용돈으로 폭죽을 사는 기대감으로 잠이 오지 않곤 했었다. 3일 후면 설날이다. 대상이 폭죽에서 휴대폰으로 바뀌긴 했지만 설날에 어떤 셀레임을 갖는 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것 같다. 아이들의 아이들은 또 어떤 것에서 그런 셀레임을 갖게 될까?
나는 마지막 남은 모래 한알에 대해서도 아이들과 같은 설렘을 지닐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