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소 이야기
1894개  
가난하지 않은 시간들-김혜진이 쓴 글   [1] 2010-02-25 박형종
김혜진   [1] 2010-02-25 박형종
유주 2010-02-24 박형종
꽃동네 소식5 2010-02-19 박형종
꽃동네 소식4 2010-02-18 박형종
⊙ ◁ [361][362]363[364][365][366][367][368][369][370] ... [379] ▷ 
가난하지 않은 시간들-김혜진이 쓴 글

11기 김혜진이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주최 '선생님들의 작은 이야기' 글쓰기에 공모하여 책으로 발간된 글입니다. 2년 전 혜진이가 조기졸업할 때 어머님이 한부 복사하여 주셨습니다. 고등학생으로는 혜진이의 글이 유일하게 실렸다고 하네요.
 
 
가난하지 않은 시간들
 
김혜진
 
 아무리 강해 보이는 사람에게도 어깨를 기대고 울면서 의지할 수 있는 사람 한 명 정도는 필요하기 마련입니다. 대학 입시 때문에 심신이 지친 고등학생에게는 그런 존재가 더더욱 필요할지도 모르는 일이죠. 더 이상 어린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른도 아닌 고등학생들은 아직 홀로 독립할 수 있는 나이는 아닙니다. 이런 고등학생들이 부모님의 곁을 떠나 기숙사 생활을 한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여간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기숙사 생활을 하는 고등학생들에겐 의지할 사람이 더더욱 필요합니다. 힘들 때 언제든지 찾아가서 위로도 받고 고민이 있을 때는 상담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부모님일 수도, 선배나 후배 혹은 친구일 수도 있지만, 선생님일 수도 있습니다. 여기, 그렇게 늘 학생들을 위해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놓으신 선생님 한 분이 계십니다.
 
 40대에 한 가정의 어엿한 가장이신 선생님께 장난을 치고 농담을 하면서 친구처럼 지내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나요? 그 모습이 쉽게 떠오르지 않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선생님은 학생들이 장난을 쳤을 때, 꾸중을 하시면 하셨지, 같이 놀아주시진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 담임선생님은 안 그러십니다. 선생님과 저는 근 30년 정도 차이가 나는데도 친구처럼 친하고 편하고 즐겁게, 허울 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하루는 제가 몰래 선생님의 신발을 다른 신발장에 숨겨 놓았습니다. 그 때는 선생님 퇴근 시간 한 시간 전이었고, 선생님은 그 신발을 못 찾으면 그대로 실내화를 신고 퇴근을 하셔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몰래 선생님의 신발을 숨겨 놓은 것이 걱정이 돼서 20분쯤 지나 선생님께 전화를 했습니다. "선생님, 제가 선생님 신발 숨겼는데요, 어디에 숨겼을까요?" "야, 김혜진. 나 곧 퇴근 시간이야. 나 그 신발 없으면 안 돼. 얼른 신발 갖고 오피스로 튀어 와." 그 때 선생님께 신발을 돌려 드렸어야 마땅한 것이지만 장난기가 발동한 저는 선생님께 "선생님, 잘 안 들려요. 선생님 신발이요, 선생님 오피스에는 없으니까 거기에선 찾지 마세요. 그럼 내일 봬요, 선생님! 안녕히 계세요!" 이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선생님께 혼날 각오를 하고 선생님 오피스로 갔는데, 아니 선생님은 평소처럼 저를 환하게 맞아주셨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하고 조심스럽게 인사를 하자 선생님께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어, 혜진이 왔구나."하고 저를 맞아주셨습니다. 한 숨 돌리려는 그 순간, "맞다, 김혜진! 너 어제, 그 신발!" 드디어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는데 "너 내가 그 신발 없으면 퇴근 못 할 줄 알았지? 나 신발 하나 더 있었어. 너 한번만 더 그렇게 장난치면 나도 네 실내화나 신발 다른 데다 숨겨버린다. 그러면 너 dress-code 걸려서 법정 가지? 야, 이거 좋네."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저를 혼내시기는커녕 제 장난을 이해해주시고, 오히려 다시 장난을 걸 생각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의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선생님은 나이는 40대이지만 마음만큼은 '동심' 그 자체라고 느낍니다.
 
 선생님은 학생들의 사소한 의견 하나, 하나에도 귀를 기울여 주시죠. 하루는 선생님께 여쭈어 보았습니다. "선생님, 왜 선생님 교실 책상 배열이 작년이랑 달라요? 저는 작년 책상 배열이 더 좋은데...." 이렇게 지나가는 말로 말하자 선생님께서는 "작년 책상 배열이 어땠는데? 이거랑 달랐어?" 이렇게 되묻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다시 대답을 했죠. "네! 작년에는 ㄷ자 모양이었잖아요. 왜, 칠판 쪽에 선생님 책상이 있고 그 쪽을 중심으로 해서 ㄷ자 모양이었잖아요. 저는 그 배열이 더 좋은데. 이렇게 앉는 건 학원 같아서 싫어요. 뒤쪽에 앉게 되면 왠지 선생님이랑 교류를 많이 못 할 것 같아서요." "그래? 나 기억이 안 나는데.... 그러면 저기 칠판에 그려 놓고 수업 들어가 봐. 시간 나면 바꿔 볼게."
 
 남들은 사소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사소한 것이기 때문에 저는 선생님이 학생들의 의견에 귀 기울여 주신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책상 배열뿐만이 아닙니다. 학교생활에 대해 불만이 있으면 학급회의 시간에 친구들끼리 "이렇게 해 주면 더 좋을 텐데. 그리고 이건 좀 없어져야 될 것 같아.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단 말이지." 이렇게 수다를 떨고 있을 때 선생님께서는 아무 말씀도 안 하십니다. 다만, 우리가 그렇게 얘기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가 교사회의에 들어가셔서 "학생들이 이런 점이 불편하다고 하네요. 바꿔 주실 수는 없나요?" 이렇게 저희들의 의견을 전해주신다고 합니다. 학생들이 학교 행정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알겠냐고 무시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태도에 제 친구들도 가끔은 놀랍니다. 중학교 때는 학교 행정에 아무리 불만이 많아도 그 의견을 교장 선생님께 전하기란 거의 불가능이었는데,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하기란 거의 불가능이었는데 이곳에서는 그게 가능하기 때문이죠. 관심 없는 것 같아 보여도 늘 저희에게 귀 기울이는 선생님이 계시기 때문이죠. 모든 선생님이 그렇다고 말하지는 마세요. 학생들의 편의는 안중에도 없는 선생님들이 많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은 돈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추억이 없는 사람이라고들 말합니다. 그렇게 본다면 저는 적어도 가난한 사람은 아닙니다. 선생님께서 만들어주시는 아름다운 추억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죠. 그 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중간고사 이후의 삼겹살 파티였습니다. 사실 이 곳 민사고에는 시험이 끝나도 딱히 스트레스를 풀면서 놀만한 것이 없습니다. 노래방이나 영화관이 있는 것도 아니고, 주변에 쇼핑센터가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즐거운 추억을 만들 수 없을 것이라고 속단하지는 마세요. 민사고에는 민사고만의 특별한 파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중간고사 마지막 날, 마지막 시간에 시험이 이제 끝난다는 생각을 하며 답안지 검토를 하고 있던 때, 선생님께서 들어오셔서 "우리 반 애들, 잠깐 들어. 이 시험 끝나면 등나무 밑으로 와. 꼭 와야 되. 안 오면 후회한다! 그러면 애들아, 끝까지 시험 잘 보고. 선생님 간다!" 이렇게 말씀하시고는 사라지셨습니다. 딱히 놀 곳도 없는데, 게다가 등나무 밑이라면 야구장 옆인데 왜 거기로 오시라는 건지 어리둥절해하며 등나무 밑으로 반 친구들과 함께 갔는데, 그 곳에는 서프라이즈(surprise) 파티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담임선생님께서 손수 숯, 삼겹살, 소시지, 조개, 고구마, 귤, 과자, 식혜, 음료수, 그릇, 상추, 밥 등을 모두 준비해 오셔서 저희에게 삼겹살 파티를 열어 주신 것입니다. 삼겹살과 소시지를 구워 먹고 중간에 귤과 과자를 먹고, 또 조개를 먹고, 맨 마지막으로 군고구마까지 해 주셨습니다. 선생님 혼자 준비하셨다고 하기엔 너무나도 많은 먹을거리가 있었고, 저희는 환희의 비명을 지르지 않을 수가 없었죠.
 
 저희는 아직도 그 날을 잊지 못합니다. 아니, 그 날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날의 추억이 너무나도 행복하기 때문에, 선생님께서 수도 없이 많은 사진을 찍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은 아마추어 사진사이기도 합니다. 늘 카메라를 들고 다니시며 "얘들아, 포즈 한 번 취해 봐! 오늘 날씨 좋은데 사진 한 방 당겨야지!" 이렇게 말씀하시며 우리의 생생한 학교생활을 사진에 담아주시는 선생님.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그렇게 졸업을 하고 사회생활을 하다 문득 고등학교 시절이 그리워지는 날이 올 것입니다. 그 때, 선생님께서 찍어주셨던 그 사진첩을 들여다보며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요.
 
 아무리 대학 입시 때문에 힘들고, 내신에 찌들어 살았다 한들, 그 시간은 가난하지 않은, 추억으로 가득 찬 시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선생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박형종   2010-02-25 (목) 21:06   [1]   인쇄


다음 글 《 김연아 》 박형종

이전 글 《 김혜진 》 박형종
최보인   정말 와닿는 얘기네요 가난하다는 마음은 스스로 만드는것 아닌가싶네요.민사고에서의 생활은 아이들 모두를 추억이 많은 부자들로 만들어줄거에요..마음이 부자가 되는 인생을 살기 바랍니다..
2011-01-03 22:03  

최보인님의 댓글에 대한 댓글

*작은 이야기의 댓글은 편집자가 인증할 때까지 발행대기상태로 웹에 보이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