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소 이야기 / 327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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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비큐와 첫눈

보름전에 반장 호정이가 바비큐를 하자고 했을 때 하지 말자고 했다. 지난 7월에 땀을 뻘뻘 흘려가며 한번 했으면 됐지. 거기다 바비큐할 때의 연기가 몸에 좋지 않다는 과학동아의 최근 기사를 봤던터라 별로 내키지 않았다.
 
그런데 호정이가 오늘 바비큐를 하자며 지난주 목요일에 다시 문자를 보냈다. 내 대답은 간단했다. "그래 알았어" 반장이 이 정도로 의지를 갖고 있다면 하지 뭐. 그깟 20배나 되는 발암 물질이 대수겠어.
 
그리고 금요일 혹시나해서 날씨를 확인해보니 "월요일에 비옴". 이런! 연기해말어.. 토요일 다시 날씨 예보를 확인하니 "월요일 오전에 비 그침" 그냥 빨리 해치우자.
 
일단, 이마트 고기가 맛은 어떨지 확인할 겸 일요일 점심에 고기를 사서 낮에 피크닉을 가서 구워먹어 보았다. 맛이 괜찮았다.
 
저녁에 장보기 전에 문자를 보냈다. "지금 장보러 가는데 먹고 싶은 과자나 음료수 주문받는다"  "홈런볼ㅋㅋㅋ" "저환타파인애플" "포카칩이요ㅎ" "o l 히! 포카칩이요♥" "포카칩이요><우왕쌤짱이에요ㅋㅋㅋㅋ감사합니다~" "감자칩이요!" 아주 예전에 딱 한번 종이에 주문을 받은 적이 있었다. 핸드폰이 있어 세상이 많이 좋아졌다. 그렇지만 그 좋은 것도 이렇게 잘 써야 하는거지ㅋㅋ 집에 와서 아내가 야채를 씻고, 버섯과 양파를 자르고, 바비큐도구를 챙겼다.
 
아침에 비가 올 것까지는 예상을 했는데, 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숯불에 불을 붙이러 가기 직전에 차가운 소나기가 또 한차례 내렸다. 그 동안 날씨가 좋았는데 하필 오늘 이런 날씨라니. 어떻든 이미 장도 봤겠다 잘 하는 수 밖에 없다. 
 
3시 40분에 짐을 나르고 숯불을 피웠다. 날이 금새 어두워질 것이기 때문에 마음이 급하다. 가스토치가 숯불에 불을 내뿜는 동안 차에서 짐을 꺼내고 차를 충무관 앞쪽으로 이동했다. 그 사이 가스토치가 장렬하게 불에 타며 전사했다.
 
다행히 숯불에 불이 잘 붙었다. 더 이상의 난관은 없을 것이었다. 치즈스틱, 수제소시지, 잡채소시지, 목살, 버섯, 양파를 구워먹고, 고구마와 감자를 호일에 싸서 불에 집어 넣었다. 의철이가 목살을 굽는 사이 나는 얼른 차를 갖고 기숙사로 가서 밥과 김치를 갖고 왔다.
 
마지막 고기를 굽는 사이 금새 캄캄해졌다. 핸드폰에 내장된 후레시로 빛을 비추어가며 익은 정도를 확인하기도 했다. 이제 불판 위에서 굽는 것은 끝났다. 고구마와 감자를 꺼내 먹는 시간. 구운 감자에 버터를 발라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노변잡담. 아직도 시뻘건 빛을 잃지 않고 있는 숯불 위로 손을 얹고 오늘 발표된 신입생 이야기며, 민족제 때 공연 이야기로 즐거운 이야기를 나눈다. 밤새 이야기를 나눠도 시간이 충분하지 않을 기세다. 몇 명은 기숙사로 먼저 올라갔다.
 
비가 내리는 것 같다. 그런데 카메라 모니터에 비친 것은 비가 아니라 눈이었다. 첫눈이다! 빨리 사진찍자! 첫눈 덕분에 더욱 특별한 바비큐가 되었다. 거기다 마침 사진기로 그 장면을 담을 수 있어서 행운이었다.
 
저녁 6시 40분. 기숙사로 올라가는 학생 몇 명을 차로 바래다주고 오늘의 바비큐가 끝났다. 
 
항상 끝나면 아쉬움이 남는다. 올해의 바비큐는 유난히 더 그런 것 같다.
 
사진을 갤러리에 올리자마자 아내, 아이들과 함께 그 사진들을 보았다. 그러면서 갤러리에 있는 아내와 아이들의 과거 사진들을 보았다. 지금보다 훨씬 앳된 얼굴들을 보며 서로 신기해했다. 아이들을 위해서 과거 사진들을 부지런히 올려야겠다. 오늘 올린 사진들도 몇년 후에는 진귀한 것이 될 것이다.
 
10년 쯤 뒤에는 원주 인근에 마당이 있는 집을 하나 마련하고 싶다. 졸업생들이 결혼해서 자기의 아내 또는 남편, 아이들과 함께 찾아오면 그 마당에서 바비큐를 하면서 오늘 내가 찍었던 사진들을 대형 스크린으로 보여줄 것이다. 그 사진에 얽힌 스토리, 오늘 내가 미처 못했던 이야기, 새로 생긴 이야기들을 밤새 하면서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들게 될 것이다. 재주있는 학생들이 많아 미니 콘서트 같은 것도 멋질 것 같다. 피곤해서 이만 자야겠는데,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박형종   2010-11-09 (화) 00:12   [1]   인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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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종   고맙습니다. 사람 얼굴 사진만 10년 이상 찍다보니 예전에는 찍은 후에야 사진을 잘 찍었는지 알 수 있었는데, 요즘은 찍기 전에 미리 알 수 있게 되었지요. 그래도 깜깜한 밤에 눈이 내릴 때 셔터를 누르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였습니다. 필연보다는 우연이, 논리보다는 감각이 지배했지요.
2010-11-09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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