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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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바꾸는 상담

점심 먹고 잠시 쉰다는 것이 깜박 잠이 들어 하마터면 3학년 모의고사 감독 시간을 놓칠뻔 했다. 슈퍼맨보다 빠른 속도로 헐레벌떡 다산관 3층에서 계단을 뛰어내려가 기숙사로 차를 몰아 2층 고사본부에서 문제지를 갖고 정각에 4층 고사실에 들어가는데까지 걸린 시간이 총 3분이었다.
 
감독을 마치고 다시 교실로 와서 불을 키지 않은채로 접이식 침대에 누웠다. 편안한 자세로 수학에 대해 생각을 해볼 작정이었다. 그런데 얼마 뒤 학생 한 명이 교실에 들어왔다. 어둡고, 내가 안경을 벗어 놓고 있었기 때문에 얼굴 표정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근심이 가득한 목소리로 언제 상담을 할 수 있겠냐고 물었다. "지금 상담해서 안될 것이 없잖아"
 
그렇게 즉석에서 한 시간 가량 이야기를 나눴다. "대학가려면 얼만큼 공부해야 돼요?" "최대한 많이"
 
힘든 고비에서 이거냐저거냐 선택의 갈림길에 있었던 학생들에게 해준 상담의 성공 사례 몇 가지를 나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내가 상담에 특별한 재주가 있다면, 몸에 좋은 약은 쓰다고 하는데, 그 쓴 것을 달달한 말로 둘러싸는 재주랄까.
 
상담을 해달라는 경우도 있고, 내가 부르는 경우도 있고, 길거리에 서서 농담을 섞어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 경우도 있다. 말하는 시간의 양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어떤 경우는 힘껏 이야기 했는 데도 자기의 관념을 고집하고, 어떤 학생은 지나가는 말로 했는 데도 귀담아 두었다가 실천한다. 중요한 것은 학생이 내 말을 믿는 것이다.
 
12기 상훈이가 나와 가깝게 지내라고 했단다. 그런데 나와 어떻게 가깝게 지내냐고? 길에서 미소를 띠고 나를 바라보는 정도면 내가 먼저 다가갈 것이다. "야 뭐하냐" 또는 "무슨 좋은 일 있냐?" 하면서. 내가 다산관 앞을 어슬렁거릴 때 강명지나 이지원 같이 "선생님이 학교에서 제일 한가해보여요" 이런 정도의 딴지면 효과 만점이다. 나는 맞받아치기 위해 머리를 최대한 굴릴 것이고, 최소한 30분은 그 자리에 머물 것이다. 가장 단순하게 만날 때마다 "선생님 제 이름 뭐게요?"란 말로 나를 괴롭혔던 이성경 같은 방식도 있다. "마우스!" "또 기억못하신다"
 
오늘, 한 명은 힘들게 나를 찾아왔고, 한 명은 그 후에 내가 불렀다. 4시가 넘어 해가 가늘어지는 늦은 오후. 안경을 쓰지 않고, 불도 키지 않은 교실에서, 회전하는 전열기의 노란 빛만이 등대처럼 은은하게 우리를 비추었고, 나는 그 빛만큼이나 부드러운 대화를 나눴다. 따사로운 열기가 이 학생들을 성장시킨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으리라.
 
이들이 교실을 나서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앞서 골똘하던 수학에 관한 주제들이 다시 내 머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박형종   2010-11-04 (목) 23:55   [1]   인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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