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대회 10월 2일 3세대 체육대회를 했다. 비가 종일 온다는 예보 때문에 걱정을 했지만, 비는 오후 3시경에야 오기 시작해서 다행이었다. 비가 왔으면 운동장 대신에 체육관에서 옹색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사진기를 들고 운동장으로 나가는데 다산관 로비에 3학년 학생들이 앉아 있었다. 작년에 신종플루 때문에 체육대회가 없었고, 3학년은 체육대회에서 빠지기 때문에 이 학생들은 2년 전 1학년 때 한번 체육대회를 하고 곧 졸업을 앞두게 되었다. 측은한 생각이 들어서 사진을 두 장 찍었다.
그것은 2학년도 마찬가지다. 이번이 고등학교에서의 처음이자 마지막 체육대회인 셈이다. 체육대회 한번 하려면 하늘이 도와야 한다.
사진기에 꽂은 메모리가 4GB짜리로 670장 정도를 찍을 수 있다. 지금까지 어떤 행사에도 그것으로 충분했지만, 이번에는 결과적으로 1400장을 찍었다. 교실을 몇 번 왔다갔다 하며 가지고 있던 메모리를 총 동원하고, 사진을 지우면서 찍느라 바빴다.
축구, 여자 피구, 여자 배구, 남자 농구, 단체줄넘기의 사진을 찍고 점심 도시락을 먹었다. 단체줄넘기에서는 나도 뛰느라고 정작 우리반 사진을 찍지 못했다. 단체줄넘기에서 우리반도 연습 때보다 매우 잘 하며 1회전을 통과하고 2회전에서도 26회를 뛰었지만 4반은 더욱 강했다. 그 4반도 8반을 만나서는 아쉽게 졌다. 8반은 결국 결승까지 가서 2학년 8반을 꺾고 우승했다. 밤에도 연습을 했다더니만. 부럽지만 내 체력을 생각할 때 2회전에 탈락한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스스로 마음을 달랬다. 갤러리에 올린 단체줄넘기 사진만 300장 정도 된다. 찍은 사진은 그 두 배 정도 되는데 취사선택 또한 쉽지 않았다.
점심 먹고 개회식을 하고, 라인댄스를 선생님과 3세대 전체가 배웠다. 댄스에 자신 있는 몇 가족이 앞에 나와 했는데, 1학년 어머님은 프로급의 솜씨를 뽐내셨다. 그 무렵 시훈이와 시원이도 학교에 왔다. 3세대 훌라후프 달리기, 투호, 훌라후프 개인전을 하고, 씨름, 단체줄다리기로 마무리를 했다.
막판에 비가 오지 않았다면 우리반 나의철이 벼르고 있었던 릴레이 달리기도 했을텐도. 아쉬움이 남지만 그나마 그 외에는 계획했던 프로그램을 다 할 수 있었던 것이 다행이다. 프로그램이 2년 전에 비해 알찼고, 체육선생님들의 수고가 많았다.
행사가 끝나고 기숙사로 올라가는 학생들에게 1학년 임원부모님들이 아이스크림을 나눠주셨다. 1학년 2반, 8반에서는 전날 학생들이 캔 고구마를 지퍼팩에 담아 나눠드렸다. 일찍 오신 학부모님과 선생님 가족은 텃밭에서 전날 캐고 남겨놓은 고구마를 직접 캐며 또 다른 즐거움을 누리기도 하셨다.
나는 5시반 체육선생님들을 끝으로 모두가 떠난 운동장에 앉아 어둠을 재촉하는 비를 구경하며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오늘 하루 운동장을 가득 메웠던 사람들의 수많은 이야기들 중 일부는 내 주머니 안에 있는 몇 개의 메모리에 사진들과 동영상으로 압축되어 있을 것이다.
그 사진들을 정리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며칠을 보냈다. 먼저 6천장이 넘는 사진들을 효과적으로 볼 수 있도록 갤러리에 슬라이드 기능을 추가하고, 프로그램을 이틀에 걸쳐 보완했다. 그리고 어제 밤 9시부터 오늘 1시반까지 체육대회 사진을 정리하고 웹에 올렸다.
사진을 넘겨보며, 벌써 아득하게 지나온 것 같은 시간들을 생각해본다. 그 사진에는 내가 담고 싶었던 스토리가 있다. 다산관 로비의 쓸쓸한 3학년, 목발을 강조하기 위해 의자 위로 발을 올리라고 한 안선호, 머리카락을 쓸어담는 모습이 멋있어서 좋은 사진이 나오기까지 계속 머리를 넘기고 있으라고 한 정다은, 친구들 틈에 누워있는 모습이 감각적이어서 일어나려고 하는 것을 몇 번이고 누워 있으라고 한 사진, 사진을 잘 찍지 않는다는 학생에게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 여러번 찍었다 지웠다를 반복한 사진, 축구공을 멋지게 다루는 모습이 순간적으로 포착된 사진, 즉석 사진을 자랑하는 모습을 찍은 것, 등등.
언젠가 이 사진들을 보며 그 때의 이야기들을 떠올리고 싶은 때가 있을 것이다. 흐믓하고 즐거운 추억들만 간직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