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소 이야기 / 337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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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카페와 신비의 도로 2010-08-05 박형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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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카페와 신비의 도로

산방산온천의 찜질방에서 새벽에 엄청난 번개와 천둥에 잠시 깨기도 했지만 아침 7시반까지 자는데 별 문제는 없었다. 미리 이곳에서 잠을 잘 거라는 것을 알았다면 이불로 쓸만한 침낭 등을 들고 왔을텐데, 에어컨 바람이 새벽녘에는 추웠다. 아침에 간단하게 온천과 샤워를 하고 9시반에 온천을 나왔다. 온천도 두번 하고, 저렴하게 잠을 자고, 밤에 이동하기 보다는 아침에 상쾌한 기분으로 드라이브를 하며 서부권을 여행할 수 있어 산방산온천에서 자기로 한 것은 잘한 선택이었다. "제주도 백배 즐기기"란 책도 있지만, 제대로 즐기려면 몇번은 경험해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처에 있는 저지리 예술인마을을 들러보기로 했다. 거기로 가는 길에 우연히 무인까페를 보았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곳이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랴. 우리는 급히 차를 멈춰 세워 그 안으로 들어갔다. 하얗고, 나지막하고, 자그마한 건물이었지만, 그 안에 들어가니 여기저기 주인 없이도 불편없이 손님들이 이용하도록, 즉 시스템이 돌아가도록 적절한 곳에 놓여진 메모들이 인상적이었다. 메모와 그 메모를 남긴 주인장이 공간적으로 분리되어 있을 뿐인데, 마치 시간적으로도 분리된 느낌이 들었다. 마치 먼 과거에 현재의 사람들을 위해 친절하게 먹을 것을 준비해주고 안내문을 써 놓은 기분이었다.
 
우리는 마침 아침을 어제 쵸콜릿뮤지움에서 산 초콜릿 등으로 간단하게 먹은 참이었기 때문에 무인까페 안에 있는 땅콩과 과자가 그리 반가울 수가 없었다. 아이들은 녹차와 옥수수수염차, 둥굴레차 등을 끓는 물에 부어 마셨고, 나와 아내는 감귤주스, 커피메이커로 뽑은 커피, 아이스커피 등을 마셨다. 아이들은 마치 바리스타라도 되는듯 커피도 타주겠다고 하고, 잔도 기꺼이 씻었다. 마친 무슨 체험이라도 하는 양 열심히 했다. 아내는 나올 때 3천원을 넣었다. 나는 5천원 정도가 적당할 거라고 생각했다.
 
예술인마을로 가는 길에는 이 밖에도 오설록뮤지엄, 유리의 성, 방림원 등 볼만한 곳이 많았다. 예술인마을에 있는 제주현대미술관을 둘러보았다. 입장료는 2300원으로 저렴했지만 때마침 김흥수화백의 멋진 그림들과 강지만 화백의 얼큰이 그림들을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전시되어 있는 김흥수화백의 그림들은 대략 90%가 여자 또는 여자의 누드를 그린 것이다. 시훈이는 그게 이상한 모양이었다. "왜 이렇게 여자 그림만 그렸어?" "여자의 몸이 굴곡이 많아 더 아름답기 때문일거야.." 그 옆에는 어린 학생들의 작품들도 전시되어 있었는데, 대가와 아마추어의 차이를 비교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강지만 화백의 경우 스트레스를 받아 얼굴이 커졌다는 얼큰이의 캐릭터가 재미있었다. 그림도 발상이 특이했고, 제목도 엉뚱했다. 아무튼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한데 성공한 화가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다. 시훈이는 저녁을 먹으며 나에게 그 그림들의 특징을 설명해주고 제목을 맞추는 퀴즈를 냈다. 나와 시훈이는 그림의 제목을 유심히 살펴보았었기 때문에 나는 대체적으로 답을 잘 하였다. 특이한 점은 시훈이는 나와 함께 제목을 한번 쓱 보고 지나쳤는데, 정확하게 그 제목들을 기억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아니면 내 기억이 너무 쇠퇴한 것일까?
 
현대미술관을 나와 특이한 의자가 천개나 있다는 낙천리에 갔다. 집 높이만한 의자, 벤치처럼 긴 의자 등등  신기한 의자가 많았다. 아직도 의자를 만들고 있었다. 지금은 조금 엉성하지만 몇년 후에는 훌륭한 볼거리를 제공해주는 곳으로 발전할 것 같았다.
 
아내가 맛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보영반점에서 자장면 곱배기, 고추짬뽕, 탕수육으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중식점에 가면 어딜가나 이런 메뉴를 시킨다. 좀 다양한 것을 시켜보고 싶지만, 호주머니 사정도 그렇고, 아이들이 무난하게 좋아하니 대체로 그렇게 된다. 그리고 중식당은 무엇보다 이 세 가지 맛을 보면 그 솜씨를 알 수 있다. 면이 쫄깃거리는 느낌이 색달랐지만 맛은 전체적으로 평이했다.
 
점심을 먹고 해안도로로 드라이브를 했다. 숙이네보리찐빵과 신제주에 있는 롯데마트에서 저녁 먹을 거리를 사러 가는 길에 일부러 해안도로를 선택했다. 파랗다는 말이 하늘과 바다의 여러 색을 표현하기에는 꽤 부족하다는 것을 느낄 정도로 하늘과 바다가 다양한 파란색들로 서로 맞닿아 있었다. 하늘에는 드문드문  하얀 뭉개구름이, 바다에는 자그마한 어선들이 그 파란색에 얼룩을 만들었다. 시원이는 졸린듯 엄마 무릎에 누워있다가도 내가 "파란 바다다!" 하면 벌떡 일어나서 창문 너머로 신기롭게 바라보았다.  
 
애월의 해안도로는 석양이 멋져서 저녁 때 드라이브를 하기에 좋다고도 하지만, 낮에도 그 근처에 멋진 건물들을 구경하기에 좋다. 우리는 잠시 길에서 벗어나 제법 큰 규모로 지어진 펜션 단지를 구경하며, 가격을 물어보기도 하였다. 근데 하룻밤에 정상가 20만원, 할인해도 18만원이라니 너무 비싸다. 그 돈이면 모구리야영장에서는 42일을 잘 수 있다.
 
숙이네보리찐빵은 인터넷에 제법 유명한가본데 3개에 천원이다. 쑥보리찐빵에서는 쑥냄새가 진했다. 시훈이가 전날부터 야영장 이웃 아저씨(녹차청년)의 생일 선물을 챙겨야 한다고 몇번씩 이야기를 했는데, 우리는 보리빵을 몇 개 더 사서 선물하기로 했다. 
 
40킬로미터 정도의 속도로 천천히 차를 몰며 다른 펜션이나 리조트들을 구경하다가 도로 바로 옆에 붙은 초계미술관이라는 곳을 발견했다. 지난번에 제주공항에서 그곳에 대한 팜플릿을 보고 한번 들르고 싶다고 했던 곳이다. 무엇보다 멋진 건물 외관이 차를 멈춰 세웠다. 관람은 무료였다. 청동을 갈아서 황금색 광택을 낸 여러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홍대 미대에서 교수를 역임한 작가는 초지일관 청동에 모양을 만들고, 광택을 내는 작업을 한 것을 미술관 입구에 있는 평론가의 글에서 알 수 있었다. 이 멋진 건물의 1층에는 전시실과 작은 까페가 있었고, 2층과 3층은 작가의 집과 아뜰리에로 사용되는 것 같았다. 다만 커피 메뉴가 단 세 가지 뿐이어서 선택이 많지 않았다. 나와 아내는 5천원 하는 스트롱 아이스커피를, 아이들은 아이스매실차를 주문했다. 에스프레소에 맞춰진 우리의 입맛에 4가지 원두가 블랜딩된 아이스커피는 그렇게 인상적이지 못했다. 그렇지만 멋진 얼굴의 남자 직원이 마일드한 아이스커피를 무료로 한잔 더 타줘서 아내는 대체로 만족하는 것 같았다.
 
아내는 단독주택보다는 아파트 생활을 선호하지만 이렇게 멋진 건물이라면 제주건 원주건, 그 집에 살 생각이 있는 것 같았다. 저지리 예술인마을의 멋진 집을 보았을 때도 그런 말을 했었다. 나는 그런 쪽에 욕심이 있기 때문에 언젠가 그런 집에서 살 날이 있을 것이다.
 
롯데마트로 가는 길에 아내는 그 곳에서 불과 4킬로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신비의 도로를 들르자고 했다. 그 신비의 도로는 제주에서 두 번째로 발견된 곳이다. 언뜻 높아보이는 쪽이 사실은 더 낮다. 신비의 도로 앞에 간이 음식점을 하시는 사장님이 직접 페트병을 굴려보고, 물을 따라보며 시범을 보여주셨고, 뒷걸음질을 쳐보면 어느쪽이 더 높은 쪽인지 알 수 있다고 알려주셨다. 정말 높다고 생각했던 곳으로 뒷걸음을 쳐보면 걸음이 빨라지는 것을 몸이 느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체험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눈이 보는 것과 몸이 느끼는 것이 다르다. 나는 다른 차들처럼 차를 중립 기어에 놓고 차가 어느 쪽으로 가는지 세 바퀴를 돌며 실험해보았다. 차는 높은 쪽으로 굴러갔다. 관광버스, 택시, 승용차, 사람들 이렇게 실험하는 차와 사람들, 또 이 길을 그냥 지나치려는 차들이 뒤섞여 이 길은 사고 위험이 높다. 
 
롯데마트에서는 사각볶음팬을 하나 샀다. 이번 캠핑에 놓고 온 사각팬이 아쉽기도 했고, 그것이 한 가족이 쓰기에는 조금 큰 것이어서 작은 것이 하나 더 있어도 좋을 것 같았다. 그것을 식탁에 놓고 쓰기 때문에 크기가 크다보면 공간도 좁아지고, 화상을 입을 염려도 그만큼 많아진다. 이번에 3만 5천원을 주고 산 사각팬은 독일 알텐바흐의 한국 공장에서 만든 것으로 정식 이름은 클레드 통 3중 다용도 철판구이팬이다. 위 아래 광택이 있는 스테인레스 안에 알루미늄이 샌드위치 되어 열전도율이 좋다. 거기에  양념흙돼지 870그램을 사서 처음으로 해먹어 보았는데, 정말 맛있었다.
 
또한 커피드립세트를 만 8천원에 샀다. 캠핑올 때 만들어온 워터드립커피를 3병 다 마시고, 이제는 함께 가지고 온 에쿠아도르 원두를 핸드밀로 갈아서 내려마실 생각이다. 거기에 얼음만 넣으면 썩 괜찮은 아이스커피가 될 것이다. 3잔만 뽑아도 드립세트값은 뽑는 셈이다.
 
산방산온천에서 하루 자고 1박2일의 긴 여정이 끝났다. 긴 여행 안에 들어있는 작은 여행 같았다. 모구리야영장에 돌아오자마자 시훈이와 시원이는 옆 텐트로 가서 조촐한 생일선물과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주었다. 우리는 밤 10시경에 늦은 저녁으로 사각팬에 양념흑돼지를 볶아 먹었다. 마치 밖에서 오래 머물다 집에 돌아와 처음 해먹는 밥처럼 꿀맛이었다.
박형종   2010-08-05 (목) 23:35   인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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