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 요즘 메타버스라는 말이 유행이다. 페이스북이 회사 이름을 메타로 바꾼다는 뉴스도 나왔다. 메타버스는 사회, 경제 활동이 일어나는 가상세계를 가리키는데, 새로운 개념은 아니고 20년 전쯤에 비해 정보기술이 발전하면서 더 그럴듯하게 진화했다라고 보면 되겠다. 예를 들어 1999년 스타워즈: 에피소드 1에 컴퓨터그래픽이 사용된 이후 지금 그런 기술이 사용되지 않는 영화는 거의 없다. 더구나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기업들이 집에 틀어박혀 있는 소비자를 유혹하기 위해 메타버스에 더욱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그런데 나는 메타버스가 그렇게 대세가 될 것 같지는 않다. 이번 주에 학교에서 메타버스 관련 특강이 있었는데 90여명의 학생은 강당에서 대면으로 들었고, 30여 명은 줌을 통해 중계된 화상으로 봤다. 나는 강당의 앞에서 두 번째 줄에 앉았는데 줌이 편리한 인터페이스를 제공하기는 하지만 코앞에서 얼굴을 마주보고 듣는 강연은 비교할 수 없이 생생했다.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강당에서 듣는 강연이라 2년 동안 숱하게 겪어 봤던 화상 강연과 비교하여 더욱 그랬던 것 같다. 줌에서 보이는 영상은 고정된 위치에 설치된 카메라가 전송하는 평면적인 이미지들이므로 생생하지 않은 것이 당연하다. 가령 뒷자리에 앉은 학생이 질문할 때 나는 몸을 돌려 그 학생의 얼굴을 봤지만, 강연자 쪽을 비추는 카메라는 그 학생의 뒤통수를 보여줬을 것이다. 스포츠 방송에서처럼 여러 대의 카메라를 써서 클로즈업 화면을 실시간으로 선택해서 전송할 수 있다면 훨씬 몰입도가 올라가겠지만 작은 강연에서 그런 장비와 인력을 동원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강연이 끝나고 마침 줌으로 강연을 들은 학생을 만나 물어보니 잘 안보였고 시청 만족도가 낮았다고 했다. 그럴 것이라고 짐작했기 때문에 강연을 하신 분도 메타버스와 관련된 일을 하고 곧 메타버스의 세상이 올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정작 본인은 강당에서 대면으로 진행하기를 원했을 것이다. 강연자는 학생들의 얼굴과 반응을 눈앞에서 보며 이야기 하는 것에 흥이 난 것 같았다.
아마도 사람들은 메타버스가 주는 편리함에도 불구하고 리얼버스에서 다른 사람을 직접 만나 맛있는 것을 함께 먹고, 생생한 얼굴 표정과 눈빛을 보고, 시끄럽고 때로는 간지러운 이야기를 귀로 듣고, 손을 잡아 따듯한 체온과 부드러운 촉감, 서로의 유대감을 느끼는 것에 더욱 매달리게 될 것이다. 그것이 사람이 태어난 방식이고 존재하는 본질이기 때문이다.
아들이 지난 주말에 친구들과 번개모임 한다고 급하게 밤 12시쯤 나가서 다음날 늦게 들어왔는데, 이번 주말에도 친구를 만난다고 방금 전에 번개처럼 뛰쳐나갔다. 그래서 번개모임인가보다. 딸은 내일 친구를 만나 점심을 같이 먹기로 했다고 들떠있다. 메타버스가 철학자들의 열띤 논쟁거리이거나 기업들이 사활을 건 연구 대상일지는 모르겠지만 아들과 딸이 친구를 만나서 놀 때, 내가 아내와 진한 아메리카노 커피향기를 맡으며 아침을 먹을 때 메타버스는 우주 저 멀리 밀쳐질 것임에 틀림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