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에서 하는 캠프파이어 추석 연휴다. 온도가 23도인데 날이 차갑게 느껴진다. 캠핑하기에 좋은 계절이다. 토요일부터 다음 주 수요일까지 5일 동안에 월요일 하루만 인천에 다녀올 예정이다. 고3 아들을 핑계로 나와 시원이만 당일로 갔다 올 거다. 덕분에 이번 추석은 앞뒤로 이틀씩 쉬면서 어느 때보다 한가하다. 명절에 이런 휴식을 즐기는 것도 좋은 것 같다. 여행이니 해외니 하며 어디 움직이는 것도 번거롭다. 집에서 쉬다가 간단하게 집 근처에서 산책이나 나들이를 하는 게 좋다.
어제 아침을 간단히 먹고 아내와 마트로 가서 추석 선물을 샀다. 그런데 껌을 씹다가 충치 때운 것이 떨어져서 부랴부랴 치과에 갔다. 아내는 나를 치과에 데려다주고 다시 마트로 가서 마저 쇼핑을 했다. 토요일 오전까지는 치과진료를 해서 다행이었다. 치료가 끝나고 아내가 오는 것을 기다리며 북새통에서 잡지책을 읽었다. 집에 오니 시훈이는 12시가 넘었는데도 아직 자고 있었다. 점심은 마트에서 사온 피자로 먹었다. 점심을 먹고 자동차 에어컨필터를 DIY로 교체하려다가 실패했다. 그래서 근처 카센터에 가는 도중에 갑자기 유리창 기어박스가 고장 났다. 긴급히 단골로 다니는 자동차공업사로 갔다. 이것도 다행히 오전까지는 명절 전에 차를 손보려는 차들로 넘쳤었는데 내가 갔을 때는 손님이 없어 바로 차를 고칠 수 있었다. 에어컨필터도 서비스로 교체해주셨다.
집에 와서 커튼 조명을 테이프로 고정하고, 저녁을 먹고 간접조명들을 켜고 소파에 누워 쉬었다. 오전, 오후에 갑자기 있었던 일들 때문이었는지, 환절기 감기 기운 때문인지 컨디션은 별로였다. 시훈이도 방에서 스마트폰을 하며 쉬다가 나를 보고 티타임을 하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래서 따뜻한 녹차를 마시며 티타임을 하기로 했다. 테이블 위에 원통 모양의 노란 등을 놓았다. 마치 식탁 위의 촛불이나 캠핑장에서 피는 모닥불 같은 느낌이 났다. 분위기가 좋아서였는지 저녁 9시 반쯤에 시작된 티타임이 밤 12시에 끝났다. 녹차를 0.5리터씩 6번이나 우렸다. 아내는 안방에서 스마트폰으로 방송을 보았고, 나와 시훈이와 시원이는 거실에서 녹차를 마시고 과자와 초콜릿을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시훈이는 얼마 전에 아이폰을 팔고 V20이라는 스마트폰을 샀다며 렌즈가 두 개 달린 카메라의 성능에 대해 자랑했다. 광각이 넓게 나온다며 마음에 들어 했다. 고3인데 수능 공부를 하는 틈에 언제 택배를 주고받으며 직거래할 짬이 있었는지. 시원이는 방탄소년단 이야기를 한참 했다. 거의 연예전문가 급이다. 나중에 리포터나 그런 쪽으로 일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바다소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나는 바다소가 페이스북이 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말했다. 그런 대형 서비스가 아니라 나 혼자 감당할 수 있는 작은 사이트였으면 한다. 막판에는 시원이가 블루투스로 튼 잔잔한 음악을 들으며 대화를 이어갔다. 시훈이는 그 후에 공부하러 방에 들어갔고, 시원이는 늦은 시각에 잠자리에 들었다.
내가 집 또는 학교에서 티타임을 즐겨 하는 것은 이렇게 대화를 하는 것이 인간관계와 사회생활의 핵심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화를 하면서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공감하며, 적절하게 자기의 이야기를 할 줄 아는 능력이야말로 무엇보다 중요한 자산이다. 이런 능력은 한 순간에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술과 체육, 수학, 글 쓰는 것과 마찬가지로 오랜 훈련을 통해 길러야 한다. 이야기를 하는 것은 혼자서 연습할 수 없다. 그러므로 어려서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 집을 티타임을 하기 좋게 꾸미고, 즐겁게 이야기 할 수 있는 분위기로 이끌어야 한다. 부모라고 잔소리를 하거나 고압적인 자세로 임하는 것이 아니라 친구처럼 대화에 동등하게 참여하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어야 한다.
캠핑도 좋지만 집을 캠핑장처럼 꾸미는 것도 좋다. 캠핑의 하이라이트는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캠프파이어다. 집에 그런 느낌을 살릴 수 있다면 매일같이 캠핑장에 있는 것이다. 은은한 간접조명을 하고, 가운데 모닥불 같은 노란 불빛의 등을 켜고, 따뜻한 차를 마시면 딱 어울린다. 우리 집에서는 개울물 소리와 새소리도 들려서 계곡에 있는 느낌이 나는데 그런 배경음이 없다면 잔잔한 음악도 좋겠다. 현대 문명에서 사람들은 디지털과 데이터, 인터넷의 홍수 속에 살지만 진정한 즐거움과 행복은 아날로그의 이야기 속에 있다. 그 이야기는 모닥불의 노란 불길처럼 종잡을 수 없고, 뜨겁게 타올랐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그렇지만 거기에는 따뜻한 체온이 있다. 이야기를 타고 체온이 흐르고 마음이 따뜻해진다. 23도는 따뜻한 이야기를 나누기에 좋은 계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