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소 이야기 / 182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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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아침에 베란다 창밖을 보니 개천이 얼어 있었다. 춥다고 하더니 실감이 났다. 햇볕이 따뜻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2주 만에 화초에 물을 주고 그 김에 텔레비전 아래 놓여 있던 스투키 화초들을 베란다 쪽 사이드테이블로 옮겼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화초들을 보니 이제야 제자리를 잡은 것 같다. 화초들이 기뻐하는 것이 내게 전해진다. 테이블에서 노트북을 하거나 책을 읽을 때 눈이 한결 편하고 공기도 더 상쾌한 기분이다.

이 집에 이사 온 다음 해에 의욕적으로 화초를 키웠었는데 여름에 제주도에 20일씩 캠핑을 다니느라 다 말라 죽였다. 그 후로 한 동안 화초를 키우지 않다가 3년 전 중국의 암마을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다시 화초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화면에 보이는 마을과 집에 나무와 화초가 하나도 없어 매우 삭막했다. 우리 집은 2층인데 바로 앞에 개울이 흐르고 풍성하게 나무들이 심어져 있어 모든 창에서 초록을 잘 감상할 수 있다. 덕분에 전원주택에 대한 로망을 어느 정도는 만족시켜준다. 집에서 화초를 키우는 실력도 조금은 나아진 것 같은데 별거 아니고 꾸준히 관심을 갖는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것도 그렇고 모든 것이 그럴 것이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 생각났다.


풀꽃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요즘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하고 자극적인 것에 열광한다. 일상적이고 소소한 것을 천천히 오래 음미하는 데는 요령이 아니라 생각이 필요하다. 그 생각을 위해서는 번잡하고 소란스러운 곳을 떠나 산 깊은 곳을 찾아가는 것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바쁘게 살다가 죽고 나서야 시간을 아끼고 사랑을 만들고 사람을 찾는다. 나태주 시인이 풀꽃을 쓸 수 있었던 것도 죽을 고비를 가까스로 넘겼기 때문이리라. 안타깝게도 나에게는 그런 기회가 없을 것이기 때문에 지금 때때로 브레이크를 밟고 자세히 보고 오래 보는 기회를 갖는 방법 밖에는 없다. 나는 바다소가 깊은 산 속 같은 곳이 되었으면 한다. 모든 번잡함을 남겨 놓고 나 자신을 찬찬히 마주하고 싶다.
박형종   2017-11-19 (일) 16:06   인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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