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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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브

드라이브는 차로 하는 산책이다. 산책에는 걷는 산책, 자전거 타는 산책, 자동차로 하는 산책이 있다. 걸을 때는 세세한 것을 볼 수 있지만 멀리 갈 수 없고, 차를 타면 빠르게 멀리 갈 수 있지만 이동 중에는 많은 것을 놓친다. 자전거는 그 중간이다.

어제 오늘 미세먼지가 많아서 외출을 삼갔다. 창문을 닫고 집에만 있으려니 갑갑해서인지 기운이 빠지고 잠만 온다. 어제는 아내가 차린 전복죽으로 점심을 먹고 3시간 가까이 낮잠을 잤고, 오늘은 시원이가 끓여준 라면을 먹고 그만큼 낮잠을 잤다. 오늘 오후 5시에 겨우 아내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혁신도시 쪽으로 드라이브를 갔다. 가는 길에 삼성통닭에서 옛날치킨 4마리를 예약했는데 개업 2주년 기념이라고 두 마리를 만원에 팔았다.

단골 드라이브 코스는 혁신도시 전원주택 단지다. 현재까지 70집정도 지어졌는데 다 달라서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지금도 몇 집이 공사 중이다. 10년 전만해도 전원주택 단지는 대게 300평정도로 분양을 했었다. 그 때는 어쩌다 200평인 곳을 둘러보면 좁아서 주차장 만들 공간도 없겠네 했었는데 혁신도시는 넓어봤자 120평이고 80평짜리도 많다. 그래서 집을 넓게 지으면 정원 만들 공간이 없다. 그렇지만 서울에는 10평 남짓한 땅에 4층으로 높게 올린 땅콩 주택도 심심치 않게 지어지고 있으니 80평이 좁다고 불평할 것은 아닌 것 같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상가주택 단지도 둘러보았다. 내가 나중에 하고 싶은 것이 상가건물이다. 1층에는 서점과 카페를 하고, 2층 이상에는 스터디룸과 오피스를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상가주택에 관심이 많다. 현재는 수요에 비해 너무 많은 건물이 지어지고 임대료가 비싼 편이라 중심지가 아니면 2년씩 비어있는 상가도 있는 편이다. 그래도 2년쯤 후에 몇 개의 아파트 단지 건설이 완료되면 이 지역 상가들은 대충 들어찰 것이다. 공원과 녹지, 도서관, 관공서, 아파트, 상가주택, 단독주택 등의 비율이 적절하고 도시계획이 비교적 잘 되어 있어 살기에 좋은 곳이다. 물론 깨끗한 물에 물고기가 없듯이 도시가 깔끔해서 나처럼 정감을 못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테지만.

그냥 집으로 오기는 허전해서 공차에서 밀크티를 하나 테이크아웃 했다. 아내가 운전할 때 공차에 불이 켜진 것을 보고 내가 들르자고 했다. 집에서 저녁으로 치킨을 먹고 티타임을 할 때 좋을 것이다. 이렇게 예정에 없던 방문이 산책의 묘미다. 주말을 심심하게 보낸 아내를 위한 작은 배려이기도 하다. 공차 건물은 이 지역에서 가장 먼저 오픈한 상가 중의 하나다. 오픈 당시에 몇 번 들러 건축주 아주머니와 이야기도 했었다. 주거전용주택이든 상가주택이든 모든 건축물에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아무런 이야기도 없이 자기의 전 재산을 털어 건물을 짓는 사람은 없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산책하다가 오픈한 건물을 보면 바로 들른다. 오픈 초기는 손님이 없는 편이고 주인도 기분이 들떠 있기 때문에 이야기를 나누기에 좋은 기회다.

집 앞에서 삼성통닭에 다시 들렀다. 우리 뒤에 온 손님은 이벤트 치킨이 품절되어 헛걸음 했다. 미리 예약해두길 잘 했다. 호프집 치킨은 조금 짠 것이 흠이다. 매출 주력 상품이 맥주이기 때문에 일부러 조금 짜게 하는 것 같다. 그래도 방금 튀겨진 치킨은 항상 맛있다. 치킨을 먹고 1인 소파에 앉아 나와 아내와 시훈이 셋이서 공차 밀크티를 나눠 마셨다.

티타임을 하고 시원이가 주말 동안에 풀지 못하고 남겨 놓았던 마지막 수학 문제 한 개를 풀어주었다. 중학교 1학년 기하문제였다. 시원이가 마지막까지 남겨놓은 문제는 나도 바짝 긴장해야 한다. 거실에 놓인 1미터 80짜리 멋진 멀바우테이블, 그 위에서 빛을 비추는 유려한 활장스탠드 덕분에 수학 문제가 더욱 잘 풀리는 것 같다. 공간은 사람의 기분과 뇌를 지배하는 힘이 있다. 내가 공간에 관심이 많은 이유다. 아무튼 오늘은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수학 과외선생님으로서 대충 내 역할을 잘 한 것 같다.

돌이켜보면 어제 오늘 피곤했던 것이 미세먼지 때문이었는지, 추천서의 스트레스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어제 끝낸 수학책 원고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어젯밤 드디어 네 번째 수학책 원고의 세 번째 버전을 마무리 했다. 몇 년째 다듬고 있는데 언제 출판될지는 모른다. 이르면 내년, 늦으면 10년 뒤, 어쩌면 출판이 안 될 수도 있다. 그 수학책에 대한 내 평가가 극에서 극으로 자주 바뀐다. 어제는 여러모로 피곤했지만 컨디션이 좋을 때보다 몇 배나 더 진도를 나갈 수 있었다. 어젯밤 12시에 자려고 침대에 누웠는데 과도한 낮잠 때문인지 버전을 마무리한 흥분 때문인지 잠을 이루기 힘들었다.

인생에서 삶의 경로가 마치 드라이브를 하듯이 기대감과 설렘으로 가득했으면 좋겠다. 가다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거나 재밌어 보이는 것을 만나게 된다면 가끔은 원래 가려던 길에서 벗어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비록 실망하거나 위험하거나 시간을 허비한 것일 수도 있지만 아름답게 빛나는 이야기를 건질 수도 있다. 그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입을 것이 되고, 먹을 것이 되고, 잘 것이 되며, 말할 거리가 되고, 두고두고 반짝이며 추억할 거리가 될 것이다.
박형종   2017-09-10 (일) 23:50   인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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