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크릴 상자 어제 택배로 아크릴 상자가 왔다. 어떤 크기가 좋을까 고민이 많았는데 최대한 큰 것으로 잘 산 것 같다.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40센티미터다. 이것이 택배로 보낼 수 있는 가장 큰 크기라고 한다. 경면가공후 제작이라는 공정까지 옵션으로 추가해서 절단면이 더욱 반짝인다. 주문하고 5일 만에 받았다. 상자의 꼭지가 너무 뾰족해서 사포로 조금 갈았다.
보통 아크릴 상자는 매니아들이 피큐어 등을 전시하는데 사용된다. 나는 내가 쓴 책을 보관하는 용도로 마련했다. 그동안 내가 쓴 책들이 다른 책과 함께 책장에 꽂혀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비록 명작은 아니지만 내가 그 책에 들인 노력과 고생을 생각할 때 그렇게 먼지가 쌓이도록 놓아두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멋진 아크릴 상자는 지난 작업에 대한 보상이자 다음번 책에 들어갈 시간에 대한 격려와 위로가 될 것이다.
서재를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그 상자 속에 들어 있는 책들이 눈이 띈다. 아마 지금이라면 나는 그 책을 쓰지 않을 것이다. 쓰려고 해도 쓰지 못했을 것이다. 그 때는 어떻게 그런 초인적인 에너지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너무 힘들 때였고 다른 일들도 많았다.
앞으로 즐겁게, 즐거운 때에 책을 쓰고 싶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과정이 즐겁다면 더 오래갈 수 있을 것이다. 패러다임은 항상 변하고 있다. 하루 이틀은 그 변화를 느끼기에 충분하지 않겠지만 몇 년이 지나면 분명히 그 변화는 눈앞에 명확해져 있다. 나는 지난 10년간 책을 쓰기보다는 바다소라는 온라인 사이트에 집중했다. 그것이 필요하다는 느낌은 분명했다. 이제 다시 오프라인 작업으로 돌아가야 할 시점인 것 같다. 아크릴 상자를 볼 때마다 그런 의욕이 불타오른다. 물론 바다소는 항상 내 옆에 있을 것이다. 바다소 덕분에 내가 짜임새 있게 시간을 쓰고 왕성하게 아이디어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그 아크릴 상자는 너무 커서 그런지 내가 주문한 이후로 “현재 판매 중인 상품이 아닙니다.”라는 메시지가 뜨며 더 이상 판매되지 않는다. 소위 막차를 탄 것 같다. 운이 좋았다. 그 커다랗고 투명한 아크릴 상자에 또 무엇이 담길지 궁금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