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소 이야기 / 204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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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여행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다. 온도차 때문에 몸이 더 피곤을 느끼는 것 같다. 저녁을 먹고 리클라이너에서 무릎담요를 덮고 쉬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깰 때쯤 시훈이가 야간자습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그제 토요일 아침에는 혁신도시에 새로 오픈한 메가박스에 갔다. 천장이 높고 붉은색 벽돌 인테리어가 품격이 있어 보이는 영화관이다. 티켓박스에서 표를 받고 내부에 놓인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한 칸 올라가서 영화를 보게 되는 구조다. 아직 주변 상가들은 많이 입주해 있지 않지만 같은 층에 오락실과 호미빙이라는 카페가 들어와 있어서 영화를 기다리는 동안 가볍게 즐길 수는 있다. 영화 『 미스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을 보았다. 팀 버튼 감독의 상상력을 보는 것이 즐거운 영화다. 내가 아무런 제약 없이 최대한 상상력을 발휘한다고 해도 그런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점심으로 낙지수제비를 먹고는 집 근처에 지어지는 새 아파트 모델하우스를 구경했다. 우리는 모델하우스 구경하는 것이 취미지만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청약을 하기 위해 둘러보는 것 같았다. 홈플러스에서 간단히 쇼핑을 하고 집에 왔다.
집에 오니 시원이가 내 생일선물로 사주기로 한 무릎담요가 와 있었다. 리클라이너 소파에서 그것을 덮고 있으면 따뜻하다. 진한 갈색의 기린 무늬가 연한 브라운 색의 리클라이너와 잘 어울린다. 저녁은 봉선루에서 처제 가족과 함께 먹었다. 집에 와서는 가볍게 동네를 산책했다. 바다소에 채널을 도입하면 어떨까를 놓고 생각해보았는데 아직은 잘 맞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일요일 아침에 깨어보니 내 생일을 축하하는 플랜카드와 번호 1,2,3이 쓰인 봉투에 뭐라고 적힌 종이가 넣어져 있었다. 내가 자는 동안에 시훈이가 이벤트를 준비한 모양이었다. 엄마가 애들이 어릴 때 하던 이벤트를 지난번 시원이 생일 때도 그렇고 시훈이가 이어서 하고 있다. 한 시간 정도 자전거를 타고 와서 아침으로 미역국을 먹었다. 봉투에는 “경축 식음료상품권”, “경축 도서상품권”, “경축 영화 시청권”이 들어 있었는데 나는 영화 시청권을 뽑았다. 집에서 프로젝터로 영화를 보는 것이다. 알뜰한 아들이다.
원래는 일요일에 원주 AK백화점을 구경하고 북스타에서 책을 보려고 했는데 날씨도 좋고 하여 여행을 가기로 했다. 아침을 먹으며 어디로 나들이를 할까 물어보니 서울, 여주, 강릉이 나왔다. 나는 밥을 먹고, 외출복을 입을 때까지도 장소를 정하지 못했다. 아내는 11시가 넘도록 어디로 떠날지 모르는 상황에 어이가 없어했다. 결국 강릉으로 가기로 했다. 환상적인 날씨를 제대로 즐기려면 야외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강릉에 간 것이 2년도 더 된 것 같다. 경포대에서 자전거를 탈 계획으로 접이식자전거 두 대를 차 트렁크에 넣었다. 강릉은 내가 서른 살 때 강릉대학교에서 강사를 하며 자전거를 타고 누비던 곳이었다.
역시 강릉은 훌륭한 선택이었다. 길도 뻥뻥 뚫리고 모처럼의 드라이브가 상쾌했다. 강릉에 도착하여 우연히 발견한 한우령이란 곳에서 점심을 먹고, 선교장을 구경했다. 경포 바다에서 사진을 몇 장 찍고, 아는 분을 만나 그 분이 내년에 집을 짓기 위해 다듬고 있는 땅을 구경했다. 내외분이 말을 재미있게 하시고 이야기가 많고 아이들을 좋아하셔서 그 분들을 만나는 것이 내가 강릉에 오는 이유 중의 하나다. 멋있는 한옥이 내년 봄에 지어지면 그 때 그 집에 묵으러 또 오기로 하고 헤어졌다.
경포대로 다시 가서 시훈이 아이디어대로 2인용 자전거를 빌려서 시훈이가 앞에 타고 내가 뒤에 타서 사진을 찍기로 했다. 마침 해가 막 지려는 참이었다. 사진을 찍으면서 호수 한 바퀴를 도니 20분밖에 안 걸렸다. 조금 더 돌아서 전망대에서 사진을 찍고 자전거를 반납했다. 저녁은 강문에서 해물뚝배기와 전복죽과 섭국을 먹었다. 해가 지면서 차가워졌던 몸이 섭국을 먹고 다시 뜨거워졌다.
그냥 원주로 돌아오기 아쉬워서 시훈이는 테라로사에 가보길 원했다. 우리는 대신 가까운 안목 카페거리에 가서 전망 좋은 카페에서 카푸치노를 마셨다. 그곳 바닷가 주변에는 거대한 자본이 투자된 3,4층짜리 카페 건물이 즐비하다. 일주일 전에 있었던 강릉 카페축제 때는 훨씬 많은 사람들로 북적댔을 것이다. 내가 강릉에서 살았던 1995년에는 바닷가에 커피자판기 몇 대가 놓여 있었을 뿐이었다. 강릉뿐만이 아니라 서울에서도 에스프레소가 뭔지도 잘 모르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내 기분일지도 모르겠는데 파도소리를 들으며 모래 위에 서서 마시던 자판기 커피가 으리으리한 건물에서 멋진 기계가 뽑아주지만 영혼 없는 카푸치노보다 훨씬 더 맛있었던 것 같다.

아무튼 이번 강릉 여행도 언제나처럼 행복했다. 강릉에는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즐거움이 있다. 날씨가 좋아서 오긴 했지만 비나 눈이 오는 날에도 할 것이 많다. 다음 번에는 형제막국수에서 점심을 먹고, 영화박물관을 구경하고 테라로사를 둘러보는 코스도 괜찮을 것 같다. 인천에서 자라고, 서울과 파리에서 공부하고, 대전에서 연구를 했지만 그 중간에 2년 정도 있었던 강릉은 내 젊은 시절의 따뜻했던 추억이 가장 진하게 남아 있는 곳이다. 억수같은 비를 맞으면서도 경포대를 자전거로 몇 바퀴 도는 일과를 생략할 수 없었고, 젊은 대학원생들과 방이 뿌옇게 되도록 원룸에서 브루스타로 삼겹살을 구워먹었던 것도 지금 돌아보니 참 즐거운 일이었다. 이런저런 기억을 끄집어내다 보니 어제 강릉에서 돌아왔는데 내일 또다시 가고 싶다.
박형종   2016-10-10 (월) 23:50   인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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