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가치 아침 7시에 눈을 뜨자마자 “나는 시간을 어디에 쓰는가?” 프로그램을 다듬을 생각이 났다. 덕분에 얼른 침대에서 빠져 나왔다. 간단히 작업을 끝내고 산책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러 나갈까 했는데 안개도 짙게 끼었고 프로그램도 예상보다 시간이 걸려서 포기했다. 9시쯤 혼자서 바나나를 먹고 시동이 잘 걸리지 않는 자동차를 검사받으러 현대서비스센터에 갔다 왔는데 그때까지도 가족들이 깨어나지 않았다.
아내가 구은 베이글과 시원이가 만든 달걀 프라이로 늦은 아침을 먹고 원주천을 따라서 혁신도시 쪽으로 자전거를 탔다. 가을이 끝날 무렵이어서 나무가 앙상하기는 했지만 날씨가 자전거를 타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강천섬 이후로 가족들이 함께 자전거를 타기는 오랜만이었다. 그동안 2주 연속 주말에 비가 왔었다. 시원이와 아내는 똑같은 미니벨로를 샀는데 새 자전거를 사고 나서는 자전거 타기를 좋아한다. 내일도 아침에 자전거를 탈 계획이다.
어느덧 혁신도시에 건물들이 제법 많이 들어섰고 오픈한 가게들도 하나 둘 늘어나고 있다. 토지옹심이라는 곳에서 옹심이 칼국수를 먹고, 시훈이는 친구랑 UCC동아리 모임이 있어서 먼저 집으로 돌아갔다. 시훈이는 최근에 UCC동아리를 만들어서 학교에서 지원금도 받고 신났다. 해킹 쪽에 관심이 생겼다면서 사이버국방학과나 컴퓨터공학과 쪽으로 진학할 마음을 굳혔다고 한다. 뭔가 열심히 하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나와 아내와 시원이는 디저트를 먹으러 요거프레소 혁신1호점으로 갔다. 오픈 이벤트로 6천원 당 머그컵 한 개를 주는데 우리는 두 개를 받았다. 여기 인테리어 중에서 달걀 모양의 테이블에 2인용 소파와 두 개의 의자가 마주보며 놓인 부분은 그대로 집에 옮겨 놓고 싶다. 카푸치노를 마시며 패션 잡지를 읽는데 의자와 테이블이 편해서 안락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더욱 따스했고 자전거를 탈 때 받는 맞바람이 상쾌했다. 시원이는 아파트 놀이터에서 친구들을 만나서 미끄럼틀을 타며 놀았다. 원래는 도서관에 갈려고 했는데 아이들도 없고 해서 나는 이발을 하고 낮잠을 잤다. 평일에는 시원이방 싱글 침대에서 자는데 가끔 주말에는 안방 킹사이즈 침대에서 낮잠을 자는 호사를 누린다.
볶음밥으로 저녁을 먹으며 무한도전을 보았다. 오늘은 멤버들이 다른 프로그램에서 하루 동안 일하는 것을 경매를 통해 가격을 매겨서 정하는 것이었다. 깔깔대며 보았는데 교훈도 있었다. 같은 하루였지만 사람이 누군가에 따라 경매 낙찰 가격이 천차만별이었다. 어떤 멤버의 하루는 2천만 원이었다.
텔레비전을 보고나서는 “나는 시간을 어디에 쓰는가?” 프로그램을 최종적으로 마무리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각자 노트북을 갖고 거실로 나오라고 해서 그 프로그램의 사용법을 시연해주었다. 사실 너무 간단하고 직관적이어서 설명할 것도 없었다.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무엇보다 옆에서 지켜본 아내가 좋아했다. 언제까지나 부모가 옆에서 잔소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본인이 스스로 자기의 시간 사용에 대해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나는 학교에서도 이 프로그램이 도움이 될 만한 몇몇 학생들에게 사용법에 대해 알려주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프로그램이 필요한 학생들은 구태여 붙잡아놓고 사용법을 알려주어도 쓰지 않는 반면 스스로 시간 관리를 잘 해서 필요하지 않은 학생들은 말하지 않았는데도 프로그램을 이용한다. 이것은 마치 보험의 역설과 비슷하다. (위험한 일을 해서) 보험이 필요한 사람들은 정작 보험을 잘 들지 않고, (위험하지 않은 일을 해서) 보험을 탈 일이 별로 없는 사람들은 보험을 잘 든다. 물론 이것이 바로 보험회사가 원하는 것이다.
시원이는 잠자러 방에 들어가고 나는 시훈이에게 부연 설명을 해주었다. 몸값도 비싸고 여기저기서 데려가려는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겠는가? 무엇보다 시간을 알차게 보내야 할 것이다. 특히 요즘 시훈이는 중3 기말고사도 끝나고 마음 편하게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공부하면서 실력을 다질 수 있는 중요한 시기이다.
내가 만든 이 훌륭한 프로그램이 보험의 역설을 극복하고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다행인 점은 이 프로그램을 운 좋게 발견한 사람들과 그것을 만든 나에게는 시간이 있다는 것이다. 아직은 폭포에 다다르기 전이고 물살이 빠르지 않으므로 보트를 원하는 방향으로 돌려서 탈출할 수 있다. 시간을 기록하는 간단한 장치가 시간을 낭비하는 일을 할 때에는 그것을 인식하게 해서 가능한 한 줄이게 될 것이고, 한편으론 유용한 일을 하도록 이끌 것이다. 시간을 사용하는 것은 시소와 같아서 한쪽이 낮아지면 다른 쪽이 높아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하루 24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지만 그것을 얼마나 값어치 있게 사용하는가는 사람마다 다르다. 분명한 것은 오늘까지 값어치 있게 사용한 시간의 합계가 내일 그가 만나게 될 하루의 가치를 결정할 것이라는 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