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있으면 즐거운 사람 요즘 방송에서는 오디션과 예능 프로그램이 대세인 것 같다. 오디션은 누가 이길지 모르는 스릴이 있고, 예능은 재미있다. 어제 토요일에는 아이들과 저녁을 먹으며 무한도전을 보고, 이어서 영화 "분노의 질주 6"을 프로젝터로 보았고, 오늘 저녁에는 1박2일을 보았다. 그런데 이들에서 재미의 본질은 무엇일까? 내가 생각할 때 다음과 같다.
1. 착하고 재미난 사람들(주인공)이 나온다. 아마도 내가 닮고 싶거나 사귀고 싶은 캐릭터들일 것이다.
2. 그들이 힘들게 무언가를 한다. 무한도전에서는 무모한 도전을 하고, 분노의 질주에서는 자동차 곡예운전을 하고, 1박2일에서는 복불복 여행을 한다.
3. 강요하지 않는다. 끝장 토론을 하거나 관객을 직접 가르치려고 하지 않는다. 카메라로 미션에 대한 주인공의 성공과 실패를 보여줄 뿐이다. 그것도 자막과 편집을 통하여 유쾌하게 보여준다. 재미와 감동은 오로지 시청자 몫이다. 그래서 같은 방송을 보고도 누구는 재미있다고 하고, 누구는 지루하다고 한다.
일상에서 사람을 사귈 때도 마찬가지이다. 훈계조로 말하거나 자기주장을 강요하는 사람과 가깝게 지내고 싶은 사람은 별로 없다. 흔히 부모들은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잔소리를 많이 하게 되는데 아이들은 대게 그런 잔소리를 싫어한다. 효과도 없다.
아내는 장모님을 만나러 어제 오후 금산에 가서 하루 자고 오늘 저녁에 왔다. 장모님이 무릎이 불편하여 곧 수술을 하실 모양이다. 나는 아이들과 토요일 오후부터 일요일 저녁까지 아내가 없는 28시간을 지냈다. 조용한 주말이었다. 시훈이 하고는 밥 먹을 때마다 설거지 내기 “가위 바위 보”를 했다. 두 번 지고 막판에 한 번 이겼다. 지든 이기든 짜릿한 스릴이 있다.
시훈이는 오늘 흔쾌히 청소기를 밀었고, 쓰레기 분리수거를 했다. 제법 듬직하다. 나는 어제 아내가 양념을 재워놓고 간 LA갈비를 프라이팬에 구워서 저녁을 준비했고, 시원이는 오늘 아침에 달걀을 풀어서 반죽을 하여 팬케이크를 만들어주었다. 조금 두꺼웠다. 시훈이가 우유를 더 넣으니 그럴듯한 모양이 되었다. 설탕시럽에 찍어서 맛있게 먹었다. 요리할 때 보면 시원이도 제법 엄마 흉내를 낸다. 김치볶음밥이나 달걀프라이도 잘 한다. 점심에는 1박2일을 녹화한 것을 보면서 내가 끓인 짜파게티를 먹었다. 달걀 두 개를 프라이팬에 반 정도 익혀서 면 위에 얹어 먹었는데 나름 훌륭했다.
어제 오늘 가는 비가 와서 날씨가 좋지는 않았지만 주말에 집에서 텔레비전만 보았던 것은 아니었다. 어제 오후에는 AK플라자에 주차하고 시원이와 함께 북스타에 가서 책을 보았고, 시훈이는 백화점을 구경하고 북스타로 와서는 책을 읽었다. 피곤했는지 잠시 뒤에 보니 자고 있었다. 나도 잡지책을 보면서 조금 졸았다. 멋진 인테리어 잡지책을 보면서 잠이 들 정도면 정말 피곤한 것이다. 오늘 오후에는 화원 가게로 가서 예쁜 화분에 담긴 스투키를 사고, 시원이는 꽃 몽우리가 몇 개 있는 빨간 장미꽃을 샀다. 자기 돈으로 사야 잘 키운다고 열심히 하나를 고르고 구태여 자기가 돈을 냈다. 생각하는 게 바람직하다. 그리고 이마트로 가서 열세 가지의 과일을 사고, 수납상자 두 개와 레인보우 책꽂이, 시훈이 미니카와 시원이 학용품을 샀다.
이번 주말의 하일라이트는 식탁 옆의 선반을 채우고 있는 온갖 잡동사니들을 치우는 일이었다. 밥 먹을 때마다 눈에 거슬려서 몇 년 동안 작정하고 있었는데 오늘 아침에서야 일을 벌였다. 폭 93센티미터, 깊이 56센티미터, 높이 52센티미터에 불과한 고작 한 칸을 정리한 것인데도 하루가 꼬박 걸렸다. 중간에 몇 번 식탁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빈 칸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를 고심했다. 스투키 같은 화분도 생각했지만 빛이 드는 곳이 아니라서 포기했다. 예쁜 접시 한 개와 멋있는 요리책 몇 권을 놓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침 이마트에서 딱 어울리는 레인보우 책꽂이를 발견했다. 시원이는 센스 있게 선글라스를 걸어 놓았다. 아무튼 결과에 대만족이다.
결론은 나는 이번 주말에 아이들과 즐겁게 지냈다는 것이다. 그것이면 됐다. 아이들과 세 끼 밥을 먹고, 집에서 영화를 보고, 텔레비전을 보고, 북스타에서 책 읽고, 화원과 이마트에 갔다. 시훈이는 그 사이에 알아서 적당히 공부했고 시원이는 책을 읽다가 클레이, 종이접기를 하면서 놀았다.
부모가 어느 정도 아이들 삶에 참견해야 할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위험한 일, 무례한 말과 행동, 게임 중독 등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말려야 한다. 제일 애매한 경우가 공부를 하지 않고 엉뚱한 짓을 할 때인데, 이때는 참견하거나 잔소리 하는 것보다는 그냥 지켜봐도 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뭐라도 흥미를 갖고 열심히 한다면 소질이 개발되거나 적성을 찾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부모가 하는 잔소리의 대부분은 공부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학창 시절의 공부는 대개 별로 재미있지는 않다. 그것이 교재나 참고서의 문제이든, 학교의 문제이든, 정부 정책이나 글로벌 경쟁 탓이든 간에 현실이 그렇다. 공부라기보다는 재미없는 것을 참아내는 끈기를 기르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하기 전에 어떻게 하면 재미있는 공부가 될 것인가에 대해 여전히 고민하고 있다. 바다소에 오늘의 문제를 만든 것도 재미있는 공부를 위해서이다.
여행은 동행하라는 말이 있다. 나는 아이와 함께 길을 가는 부모가 되고 싶다. 여행에서 잔소리를 하거나 강요하는 것은 금물이다. 여행은 즐기기 위한 것이고, 체험을 공유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 서재의 테이블에서 수학공부를 한다. 시훈이도 종종 그 테이블에서 수학공부를 한다. 어떤 때는 둘이 나란히 테이블에 앉아 있다. 백 마디 잔소리보다 부모가 모범을 보이는 것이 도움이 된다.
함께 있으면 즐거운 사람이 되고 싶다. 함께 길을 걸으면 작은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사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