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9 12기록 양혜원 박형종 정미경


양혜원
  꿈속도: 3  
  꿈통장: 133,000 ₩  


박형종
  꿈속도: 1,785  
  꿈통장: 24,175,000 ₩  


정미경
  꿈속도: 12  
  꿈통장: 1,052,000 ₩  

  박재호 점프 박시원

바다소포인트 <43회> 2017-10  
43 | 42 | 1 | 2017 | 2014 | 레전드
박형종 283 12
박시원 31
박형주 24
박시훈 23
최경민 8
정미경 7
조호연 4
이준영 3
이정민 1
양혜원 1 1

꿈속도 랭킹

박형종

1785

최경민

233

박형주

173

박시원

168

박시훈

87

조호연

45

이준영

38

윤재훈

38

이도엽

33

민성연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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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형종 > 검색 결과

프로필
바다소의 개발자 겸 운영자

자기계발과 꿈을 이루는데 도움을 줍니다

회원번호: 1   3
회원가입: 2010-12-15
  꿈속도 1   바다소포인트 1

박형종
  꿈속도: 1,785
  꿈통장: 24,175,000 ₩
박형종님의 <바다소어워드> 수상 기록   ※ 총 43
<제43회> 2017-10   ...   (현재) 1위 (283 포인트)
<제42회> 2017-09   ...   1위 (565 포인트)
<제41회> 2017-08   ...   1위 (485 포인트)
<제40회> 2017-07   ...   1위 (463 포인트)
<제39회> 2017-06   ...   1위 (684 포인트)
<제38회> 2017-05   ...   1위 (778 포인트)
<제37회> 2017-04   ...   1위 (667 포인트)
<제36회> 2017-03   ...   1위 (612 포인트)
<제35회> 2017-02   ...   1위 (474 포인트)
<제34회> 2017-01   ...   1위 (368 포인트)
<제33회> 2016-12   ...   1위 (908 최고기록! 포인트)
<제32회> 2016-11   ...   1위 (637 포인트)
<제31회> 2016-10   ...   1위 (800 포인트)
<제30회> 2016-09   ...   1위 (668 포인트)
<제29회> 2016-08   ...   1위 (615 포인트)
<제28회> 2016-07   ...   1위 (624 포인트)
<제27회> 2016-06   ...   1위 (693 포인트)
<제26회> 2016-05   ...   1위 (629 포인트)
<제25회> 2016-04   ...   1위 (645 포인트)
<제24회> 2016-03   ...   1위 (892 포인트)
<제23회> 2016-02   ...   1위 (659 포인트)
<제22회> 2016-01   ...   1위 (631 포인트)
<제21회> 2015-12   ...   1위 (783 포인트)
<제20회> 2015-11   ...   1위 (725 포인트)
<제19회> 2015-10   ...   1위 (340 포인트)
<제18회> 2015-09   ...   1위 (518 포인트)
<제17회> 2015-08   ...   1위 (393 포인트)
<제16회> 2015-07   ...   1위 (427 포인트)
<제15회> 2015-06   ...   1위 (345 포인트)
<제14회> 2015-05   ...   1위 (464 포인트)
<제13회> 2015-04   ...   1위 (439 포인트)
<제12회> 2015-03   ...   1위 (604 포인트)
<제11회> 2015-02   ...   1위 (666 포인트)
<제10회> 2015-01   ...   1위 (486 포인트)
<제9회> 2014-12   ...   1위 (591 포인트)
<제8회> 2014-11   ...   1위 (664 포인트)
<제7회> 2014-10   ...   1위 (382 포인트)
<제6회> 2014-09   ...   1위 (569 포인트)
<제5회> 2014-08   ...   1위 (393 포인트)
<제4회> 2014-07   ...   1위 (415 포인트)
<제3회> 2014-06   ...   1위 (608 포인트)
<제2회> 2014-05   ...   1위 (490 포인트)
<제1회> 2014-04   ...   2위 (93 포인트)

박형종님의 꿈속도 추이   ☞ 꿈속도?


2055


2017-01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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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2


20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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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


1785


2017-10

작은이야기
작은 이야기 (744)   | 글쓰기
> 가을 저녁노을 일상 10-15 박형종 31
> 꿈통장과 입출금 바다소 10-14 박형종 14
> 연휴 마지막 이야기-자기계발 바다소 10-09 박형종 56
> 연휴 다섯 번째 이야기-집과 건강 일상 10-08 박형종 37
> 연휴 네 번째 이야기-바다소 바다소 10-06 박형종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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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이야기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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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종 와우! 그거 좋은 방법인데!! 영어를 공부할 때도 바로 응용할 수 있겠어. 하고자 하는 의욕도 중요하지만 효율적인 방법도 그에 .. more (2017-08-23 20:45:24)
박형종 오호 한발 차이로 어긋났군! 이케아가 가까운 곳에 있으면 자주 갈 것 같은데, 사람들이 많아서 정신없기도 하고. (2017-07-11 12:22:23)
박형종 기승전 스파게티ㅋㅋ~ (2017-07-03 09:27:54)
박형종 오케이~ (2017-06-06 22:53:07)
박형종 사진 좋네!! 모델이 별로인데도 역시 사진전문가다워. 나는 요즘 집을 한창 정리하고 있어. 워낙 그동안 쌓아놓기만 해서. 승우.. more (2017-06-06 07:09:06)
박형종 그런 기능이 있어! 오늘 할 것에서 항목을 클릭하면 수정할 수 있는데 그것은 그날에만 적용되는 것이지. 아무튼 지금은 팔굽혀.. more (2017-06-05 17:10:09)
박형종 땡큐~ (2017-05-26 19:56:48)
박형종 고마워ㅠㅜ 그런데 그렇게 많은 책은 필요 없을 텐데. 한 권이면 충분할 거야ㅋㅋ (2017-05-23 10:22:59)
박형종 그거 좋은 생각이야!! 하경이 마음 바뀌기 전에 얼른 써야겠군ㅋㅋ (2017-05-22 23:04:10)
박형종 인터넷에서 알게 된 사이인데 당연한 네티켓이지ㅋㅋ (2017-05-22 23: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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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9 . 30 꿈속도 랭킹을 도입하다
바다소에 꿈속도 랭킹을 도입했다. 어떤 사람이 얼마나 믿을만하고, 앞으로 얼마나 성공하고, 건강하고, 행복할 지를 예측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지표를 고르라면 나는 망설임 없이 꿈속도를 택할 것이다. 꿈속도는 지난 60일 동안의 메모, 꿈 설정, 일정관리, 시간관리, 글쓰기 등으로부터 계산되는 바다소포인트의 평균값이다. 즉 꿈속도는 최근 두 달 동안에 있었던 종합적인 자기계발의 정도를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꿈속도가 빠른 사람은 성공 확률이 높다. 한편 꿈속도가 느리거나 바다소를 이용하지 않는 사람들의 성공 확률은 알 수 없다. 그 경우 자기계발 정도를 평가할 수 있는 방법을 나는 알지 못한다.

짐 론이 말하였듯이 성공이 자기계발의 정도를 넘어서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요행을 바라지 말고 꾸준히 노력하라. 큰 성공은 한 번의 큰 행운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물방울이 돌을 뚫듯 작은 노력이 쌓이다보면 어느 순간 이루어지는 것이다.
2016 . 08 . 07 모바일 페이지를 만들다
스마트폰에서도 바다소를 편하게 쓸 수 있도록 모바일 페이지를 만들었다. 그 전부터도 스마트폰으로 많이 사용하기는 했지만 바다소의 페이지들을 손바닥크기 만한 화면에 맞추니 쓰기 편하고 디자인도 예뻐졌다. 이번 작업은 성큼 다가온 모바일 세상에 대한 이해와 그것을 잘 활용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는 계기가 되었다.
2016 . 05 . 31 쥐포재단 창립
담임 학생인 김하경과 함께 쥐포재단을 창립하다. 수업하다가 졸음운전을 하거나 졸릴 때 쥐포가 좋다는 말을 하면서 김하경에게 대학에 가면 의학적으로 그 효능을 연구해보라고 했는데 김하경은 쥐포가 그렇게 효과가 있다면 국가가 정책적으로 쥐포를 안전벨트처럼 차에 두고 다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왜 내가 진즉에 그런 생각을 못했지 하고 무릎을 탁 쳤다. 쥐포가 졸음운전을 막는데 탁월하다면 그것을 교실에서 몇몇 학생들에게만 이야기 할 것이 아니라 일종의 사회적인 운동을 해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즉시 김하경과 함께 사이버 쥐포재단을 만들었다.
2015 . 11 . 16 프로그램 "나는 시간을 어디에 쓰는가?"를 만들다
일요일 아침에 원주천을 산책하다가 시간을 어디에 쓰는지 기록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자는 생각이 났다. 나는 때때로 인터넷에서 뉴스를 보거나 살 물건을 검색하면서 시간을 너무 쓰곤 한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아까운 시간이 낭비되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문제는 정작 해야 할 일에는 손이 잘 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간을 어디에 쓰고 있는지 의식할 수 있다면 첫째 시간이 낭비되는 것을 줄일 수 있을 것이고, 둘째 더 좋은 일에 시간을 쓰는 동기부여가 될 것이다.
2014 . 12 . 12 오늘의 문제를 다시 시작하다
오늘의 문제를 다시 시작했다. 문제와 정답, 제출답안 중에서 원하는 답안만을 골라서 프린트할 수 있도록 하는 등 프로그램을 보강했다.
2014 . 10 . 29 꿈 포럼, 꿈 속도, 꿈 통장을 만들다
꿈을 이루는 방법 등에 대한 토론의 장이 되기를 바라며 바다소에 꿈 포럼을 만들었다. 11월 3일에는 꿈 속도와 꿈 통장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꿈 속도는 "꿈을 이루는 속도"를 줄인 말로 꿈을 위해 최근에 얼마나 노력하는가를 나타내고, 꿈 통장은 지금까지 꿈을 위해 노력한 총량을 숫자화 한 것이다. 이들 값은 바다소 랭킹과 바다소 어워드를 정할 때 쓰는 포인트를 바탕으로 계산된다.
2014 . 04 바다소어워드 & 바다소랭킹 도입
나는 바다소가 유익한 사이트 중의 하나라는 자부심이 있지만 방문객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재미는 없는 사이트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건전하면서도 재미있는 웹 사이트가 될 수 있을까 오랫동안 고민하였다. 그러다가 2014년 4월말 바다소랭킹과 바다소어워드라는 제도를 도입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떠올랐다. 마치 영화제나 방송에서 연말에 시상식을 하듯이 바다소에서도 시상식을 하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꼭 배우나 연예인, 가수만 상을 타야 하는 법도 없는 것 아닌가? 자기 관리를 잘 하는 사람도 상을 받을 충분한 자격이 있을 것이다.

나는 수업 때 좋은 질문을 하거나 답을 잘 하거나 발표를 하는 활약을 펼친 학생에게는 별을 주고 그것을 기록한다. 그 기록이 학기말에 학교생활기록부를 쓰거나 여러 종류의 추천서를 쓸 때 중요하게 참조되는 것은 물론이다. 기록은 쌓일수록 힘을 발휘한다. 3학년까지 내 수업을 열심히 들은 학생 중에는 130개가 넘는 기록을 갖고 있는 경우도 있다.

기록은 그 자체가 창조를 위한 핵심적인 활동이다. 심지어 생물학에서 쓰는 말을 본 따서 "적자생존"이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적자란 기록하는 사람을 말한다. 나는 바다소에 2011년경부터 1년에 약 4천 개 정도의 기록을 한다. 하루에 10개꼴이다. 바다소어워드 & 바다소랭킹은 그런 기록 습관을 장려하기 위한 것이다.

바다소에 메모 등을 기록할 때마다 포인트를 부여해서 한 달 동안의 누적 포인트가 많은 순으로 바다소 어워드 수상자를 가린다. 2014년 4월에 제1회를 진행해서 2014년 5월 1일에 처음으로 시상하였다. 30포인트 이상인 상위 5명에게 상장을 수여한다.

바다소어워드 &바다소랭킹은 점점 더 발전할 것이다. 오토바이오그래피 프로그램과도 연동되어 수상자들을 더욱 영광스럽게 기록할 것이다. 더 나은 내일을 원하는가? 그럼 바로 오늘 기록하라.
2012 . 02 교무부장이 되다
2011년에는 창의적체험활동 업무를 맡았고 6월에 전교생이 2박 3일 창체활동하는 것을 기획했다. 선생님별로 십여 개의 코스와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학생들이 원하는 것을 선택하는 방식이었다. 나는 박혜선, 이준석, 조진호 선생님과 동해안으로 가서 강릉 커피박물관, 참소리박물관, 하슬라아트월드 등을 구경하고, 레일바이크도 탔으며, 망상 오토캠핑장에서 숙박하며 조별로 마트에서 장을 본 것으로 저녁과 아침을 해먹었다. 밤에는 숙소 한 쪽 벽에 폼보드로 대형 스크린을 만들고 학교에서 가져간 프로젝터로 두 편의 영화를 관람하였다. 나는 집에서 가져간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아이스커피를 만들고, 박혜선 선생님은 팥빙수를 만들어주셨다. 조진호 선생님은 학생 개인별로 캐리커처를 그려주었으며, 경품이 걸린 미니 음악회에서 이준석 선생님은 찬조 출연하여 멋진 노래를 불러주셨다. 족구와 물놀이도 하고, 피자와 물회도 먹으면서 꽤 즐거운 추억을 만들었다. 다른 활동을 한 선생님과 학생들도 그랬을 것이다.

그 해 가을 전화를 받고 교장실로 가니 교장선생님 하시는 말씀이 "이제 교무부장을 맡을 때가 되었어!" 교무부장은 교육과정, 시간표, 시험, 학교생활기록부, 도서관 등 학교의 학사 전반을 관리한다. 나는 그런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누군가는 그 일을 맡아야 했고, 그 일을 거절할 명분을 찾지 못했다.

내가 가장 먼저 한 것은 교무실을 쾌적한 곳으로 리모델링하는 것이었다. 그냥 선생님일 때는 몰랐는데 교무부장이 되어 교무실에 들어서보니 칸막이와 책상이 너무 많아서 빈 공간이라고는 사람 다니는 좁은 통로 밖에 없어 숨이 막힐 것 같았다. 나는 교무실의 반을 차지하고 있던 책상과 칸막이를 걷어내고 원형 회의용 테이블을 놓았다. 그리고 한 쪽 공간에는 에스프레소와 커피메이커 겸용 머신도 갖다 놓으면서 여유 있는 공간을 꾸몄다. 지금 그 테이블은 회의용으로, 시험 준비용으로, 응접용으로 요긴하게 쓰이고 있다.

교무부장의 역할로 가장 중요한 것은 한편으로는 선생님들 사이의 업무와 갈등을 조정하고, 지혜를 모아서 더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교육이 되도록 하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시험, 학사업무와 같이 일상적으로 진행되는 일들을 깔끔하게 처리하는 것이다. 교육부, 교육청, 재단, 학부모, 학생들과의 연계도 원활해야 한다. 이런 일들에는 여러 선생님들의 도움과 이해가 필수적이다. 교무부장을 하면서 조직이라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고, 조직을 관리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우게 되었다.
2011 . 04 . 01 바다소 오늘의 문제 오픈
바다소에 오늘의 문제라는 코너를 오픈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문제를 내고 답안을 제출하면서 즐겁게 공부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이다.
2010 . 12 바다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개시
2010년 12월 우연히 아내에게 공짜표가 있어서 "소셜네트워크"를 보게 되었는데, 페이스북에 관한 영화였다. 그 영화에서 소개된 소셜네트워크라는 것이 흥미를 끌었다. 그리고 그 정도 서비스는 나도 할 수 있는데 하는 자신감도 있었다. 나는 즉시 10일 정도 투자하여 바다소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형태로 리뉴얼 했다. 역시 그냥 재미로 만들어본 것이었다.

그래서 바다소는 처음에는 게시판이 주된 서비스였다가 작은이야기라는 공개 글이 메인이었다가 여기에 포스트잇이라는 친구 사이의 글이 추가되었다. 그 김에 목표, 일일계획, 메모, 스케줄, 입출금, 스토리보드 등등 나 혼자서만 쓰던 여러 응용 프로그램들을 다듬어서 다른 사람들도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발하였다.

그리고 제목에 "자기를 찾고 꿈을 이루는 곳"이라는 태그를 달았다. 웹이라는 망망대해에서 방황하고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자기를 찾고, 좋은 목표와 꿈을 세우고, 하루하루를 계획적으로 살아가며 시간과 일정과 메모를 기록하고 관리하도록 돕는 사이트가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그러면서도 SNS의 장점을 살려 바람직한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도록 도울 수 있기를 바란다.

훨씬 어려운 수학 문제도 잘 푸는 학생들이 바다소가 복잡하다고 말한다. 프로그램들이 이렇게 저렇게 얽혀 있기 때문에 처음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복잡해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익숙해질수록 그 프로그램들이 큰 위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좋은 도구 없이 사냥에 성공하기 어렵듯이 좋은 프로그램 없이 인생에서 성공하기 힘들다. 바다소의 프로그램들은 틀림없이 이용자들을 성공의 길로 안내해줄 것이다.
2010 . 03 스토리보드를 만들다
스토리보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스토리보드는 공부에 필요한 자료를 데이터베이스에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것이다.
2010 . 01 바다소에 작은이야기를 쓰기 시작
2009년 12월에 2년 동안의 진학실장 업무가 끝나면서 바다소를 게시판의 용도로 쓸 일이 적어졌다. 문을 닫을까 하다가 2010년 1월 15기 신입생 대표담임을 맡게 되면서 작은이야기를 쓰고, 사진을 갤러리에 올리는 용도로 전환했다. 작은이야기를 처음에는 매거진이라고 불렀는데, 3단으로 글을 편집해서 잡지의 레이아웃을 흉내내었었다. 작은이야기는 마치 잡지에서 편집자가 편집을 하듯이 관리자에게 인증된 글만 발행되는 형식을 갖고 있다. 또한 답글도 인증을 통과해야만 발행되는데 공 들여 쓴 글에 이상한 답글이 달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공개적으로 글을 쓴다는 것은 이래저래 부담되는 일이다. 사진은 나중에 올려도 달라질 것이 없지만 이야기는 바로 쓰지 않으면 기억이 달아나 버린다. 글을 공개하는 것의 장점은 더 정성을 들이게 되고,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며, 책임감을 갖고, 더 자주 쓰게 된다는 것이다. 더 자주 쓰게 된다는 것은 내가 작은이야기 코너를 만들기 전에 웹에 일기처럼 쓴 글은 수십 개에 불과하지만 더 짧은 기간 동안 작은이야기에 쓴 글은 400개가 넘는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2008 . 02 진학실장 겸 대표어드바이저가 되다
민사고는 담임을 어드바이저라 하고 학년 주임을 대표 어드바이저라 한다. 한 반당 15명 내외의 학생들을 맡는다. 하는 일은 담임이 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나는 민사고 선생님으로 부임하면서 5명의 학생을 맡았던 것을 시작으로 12년 연속 어드바이저를 했다. 2008년과 2009년에는 국내진학실장 겸 3학년 대표 어드바이저를 맡았고, 2010년에는 1학년 대표 어드바이저를 했다.

학생들은 여러 가지 스트레스와 진로에 대한 불안감이 많기 때문에 적절한 상담을 통해 개인별 알맞은 처방을 내려주어야 한다. 생활습관, 상벌점 관리, 교우관계, 공부 노하우, 봉사나 동아리활동 상담, 진로 및 진학 상담, 바비큐 파티, 교내 및 교외 행사 등등의 경우에서 베테랑 같은 세심한 지도와 상담이 필요하고 어떨 때는 피에로 같은 우스꽝스런 모습이 어떨 때는 근엄한 훈계가 필요하다. 그리고 어떨 때 그렇게 해야 하는 지 심리에 대한 이해와 훌륭한 판단력이 있어야 한다. 나는 무난히 어드바이저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2010년도에는 내가 맡았던 1학년 1반 학생들의 에피소드를 바다소에 쓰곤 했는데, 그것이 계기가 되어 반 학생 전원이 지은이로 참여한 "민사고의 별난 아이들"이란 책이 출판되었다. 민사고에서 처음으로 있었던 일이고 그 후로도 없는 일이다. 인세는 학교에 발전기금으로 기부되었다.

국내진학실장은 국내대학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의 상담과 진학업무를 주관한다. 고등학교의 특성상 진학실장은 심적 부담이 큰 자리다. 대학 진학이라는 것이 그 학생의 능력, 1학년부터 배우고 노력한 것, 학교의 총체적인 역량, 입시 환경 등에 좌우되지만 어떻든 대학진학 결과에 대한 부담은 1학년 때의 담임보다는 3학년 때의 담임이, 진학실장이 제일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 전인교육, 인성교육, 리더십교육, 영재교육 등등 좋은 말이지만 학부모나 3학년 학생들은 그 해 입시에서 일류 대학에 진학하는 것을 발등의 불로 생각한다. 나는 진학실장의 일도 대체적으로 잘 했다. 진학률이 좋았고, 학생들이 실력도 뛰어난데다 잘 따라주고 도와주어서 즐거움과 보람을 느꼈다.
2007 . 12 바다소(badaso.net)사이트 서비스 시작
바다소(badaso.net, 자기를 찾고 꿈을 이루는 곳)는 한 동안 아무런 서비스도 하지 않은 채 몇 년 동안 방치되어 있었다. 그러다 11기 학생들의 국내진학실장 겸 대표담임을 맡으면서 게시판을 통해 커뮤니케이션을 원활히 하기 위해 2007년 12월에 만들었다. 게시판에서 여러 정보를 전달하고 공지를 하고 의견을 듣기 위한 것이었다.

내가 바다소를 통해 하는 일은 여러 가지다. 수업 자료를 업로드하고, 그것을 수업 때 활용하며, 수업에서 칭찬을 받을만한 활약을 한 학생들에 대한 기록을 하고, 숙제를 바다소로 제출받기도 하며, 학생들은 내게 쪽지를 보낸다. 회의 때 쓸 자료나 레터나 추천서에 쓸 코멘트를 추출하고, 학교의 일정과 내 개인 일정을 챙긴다.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아이디어나 꼭 해야 할 일들을 메모하고, 장단기 목표를 세우며, 그것을 위한 하루하루의 실행계획을 체크한다. 새로운 책을 쓰기 위한 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거나 공개강좌를 위해 스토리보드를 활용한다. 포스트잇으로는 개인적인 일지를 쓰거나 수업 때 학생들의 활약을 기록하거나 친구들에게 쪽지를 쓴다. 작은이야기에서는 일상생활에서 느낀 감상을 공개적으로 기록한다. 입출금 프로그램으로는 돈에 관한 기록을 정리하는데, 이 입출금은 돈과 관련된 목표에도 연동되어 있다. 유용한 웹문서와 웹사이트를 북마크하고, 여행을 기록하며, 사진을 올린다. 이제 여기에 오토바이오그래피가 추가된 셈이다.

자기를 찾고 꿈을 이루는 곳. 꿈은 꿈꾸는 자의 것이고, 해답은 자기 자신 속에 있다. 나는 그것을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2004 . 04 . 27 "수학과 물리학"을 개정하여 "지혜로운 수학"을 펴내다
민사고에서 처음 2년은 전혀 준비가 없었던 선생님 생활을 익혀가기에 바빴다. 조금 적응된 듯하자 책 "천재적인 중고등학생을 위한 수학과 물리학"을 개정하고 싶다는 욕구가 살아났다. 일단은 내 여건 상 그 중에서 수학 부분만을 손대기로 했다. 학교 생활고 책을 쓰는 것을 병행하는 힘든 시기였지만 불굴의 의지만큼은 대단했다. 결국 2004년 4월에 "지혜로운 수학(총 2권)"을 낼 수 있었다. 총 1390쪽이었다. 그것을 다시 보완하여 2005년 8월에 제2판을 출판했고, 2007년 도서출판 민사고를 통해서 표지디자인만 바꿔서 개정판을 냈다.

아직 이 책은 미완성이다. 언젠가는 다시 새로 쓰는 작업을 할 것이다. 또한 "수학과 물리학"중에서 물리학 부분을 마무리 하는 것도 아직 남아 있다. 바다소와 마찬가지로 "수학과 물리학"을 쓰는 것은 평생 내가 함께 할 숙명적인 과제인 것 같다. 민사고에 선생님이 될 때 면접에서 그 당시 교감선생님이 내게 물었다. "왜 민사고 선생님이 되시려고 하세요?" 나는 이렇게 대답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저는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수학과 물리학 제2권을 완성하고 싶습니다."

2007년 2월에는 "지혜로운 중학수학 7-가", "지혜로운 중학수학 8-가"도 출판되었다. 그러나 이 시리즈는 7-나와 8-나까지 써 놓고 중단되었다. 이 때 무렵 장기간 책을 쓰느라 심신의 에너지가 모두 고갈되었고, 학교에서 진학실장을 맡으면서 더 이상 책을 쓰는 것은 불가능했다.
2000 . 01 . 16 민사고 교사로 근무하다
2000년 1월에 민사고 선생님으로 부임하여 5기 학생들과 학교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 해 2월에 2기 졸업식을 보았으니 1기 졸업생 십여 명을 빼고는 인연이 있는 셈이다. 나는 과학과 소속으로 물리 선생님이었지만, 책을 쓴 것도 있고 당시 학교 상황상 수학을 몇 달 가르치게 되었고, 웹 프로그래밍을 조금 할 줄 안다는 이유로 한 학기 동안 컴퓨터 심화반을 맡기도 했다.

그 때도 민사고는 대한민국에서 특이한 학교였고, 아마 지금도 그럴 것이다. 나는 원래 선생님이 될 생각이 없었다. 고등학교 때 꼭 되지 말자고 다짐했던 것이 고등학교 선생님이었다. 그런데 책을 내고 그것이 인연을 맺어주어 고등학교 선생님이 되었다. 부임하자마자 담임을 맡았을 때는 너무 어색했다. 많은 일화들이 있지만 나중에 더 쓸 기회가 있을 것이다.

선생님이어서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졸업생들이 찾아올 때다. 지난 금요일에도 13기 졸업생 몇 명과 15기 졸업생이 찾아와서 무척 반가웠다. 심지어 내가 교실을 비운 사이에 음료수와 떡을 놓고 메모도 쓰고 갔다. "... 항상 smile 가득하시던 우리의 물리적&정신적 지주님..."

나는 한 학기를 마칠 때마다, 졸업식 때마다 후회를 하고 자책을 한다. 나는 얼마나 학생들에게 애정과 관심을 쏟은 것인가? 미안한 마음이다. 그런대도 나를 밝게 기억해주는 학생들이 너무 고맙다.
1999 바다와소나무 출판사를 차리다
강릉에 있을 때부터 책을 어떻게 출판할 것인가를 위해 그 당시 자연계 분야에서 가장 큰 출판사에게 알아보았는데 자비 출판을 하라는 말을 들었다. 그럴 바에야 내가 직접 출판하기로 하였다.

책이 일단 마무리 되고 나는 이름에 대한 별 고민 없이 "바다와소나무"라는 출판사를 차렸다. 우리나라가 삼면이 바다이고 산과 소나무가 많은 것을 염두에 두고 "우리 곁에 늘 가까이"란 뜻으로 지었다. 그런데 카페 이름 같다고 해서 곧 "바다소출판"이라고 바꿨다.

1999년에 인터넷 정당 "맑은나라"라는 것도 만들어서 활동을 했는데, 그것이 신문과 방송에도 보도가 되고 유명했었다. 그 시류를 잘 읽고 그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 인터넷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정당이 대통령을 배출하기도 하였다.

책을 인쇄해도 유통이 문제였다. 대형 도매상들은 작은 출판사와는 거래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 시절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았던 인터넷을 통한 직접 판매 방식을 사용하기로 하였다. 다행히 KT에서는 한 달에 5만원을 주고 웹호스팅을 받으면 온라인 주문서를 짜주는 서비스를 하였다. 그 프로그램은 perl이라는 언어를 사용했다. 그래서 나는 그 언어를 공부하고, 주문서 프로그램을 뜯어보고 나름대로 업그레이드 하였다. 일간지 스포츠 섹션 하단에 660만원을 들여 그 웹사이트를 광고 하고 온라인으로 책을 팔았는데 처음에는 어떻게 책을 보지도 않고 살 수 있냐는 항의를 받기도 했다. 어떻든 1000부를 인쇄하여 다 팔고 보니 그 광고비만큼 적자가 났다. 책을 쓰고, 만들고, 유통하는 과정에서 여러 다양한 경험을 한 것으로 위안을 삼아야 했다.

엉뚱하게도 그 책은 두 가지 전혀 생각하지 않은 부분에서 효과를 발휘했다. 첫째는 그 책을 그 당시 민사고 수학선생님이 한 부 보내달라고 연락을 하신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택배로 한 부를 보내드렸는데 며칠 뒤 못 받으셨다는 전화가 다시 왔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는 강릉 가는 길에 직접 전해주겠다고 하며 민사고에 책을 가지고 갔다. 그 때 그렇게 민사고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 후 몇 달 뒤 내가 그 학교의 선생님이 되리라고는 그 당시 전혀 짐작도 하지 못했다. IMF 직후라 많은 지원서가 민사고에 접수되었지만 다행히도 나는 지원서와 함께 그 책을 보낼 수 있었다. 그 책 제목은 약간 촌스럽게도 "천재적인 중고등학생을 위한 수학과 물리학"이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영재학교를 꿈꾸던 설립자님의 마음에 들기에는 안성맞춤인 제목이었다.

둘째, 그 책을 팔려고 웹페이지를 만들었던 것이 지금까지 내가 웹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는 계기가 된 것이었다. 웹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은 아마도 내 평생의 취미가 될 것 같다. 학교에서 전화로 기출문제집을 팔고, 방문객 예약을 받았을 시절에는 2주 정도 걸려 웹 프로그램을 짜주기도 했다. 그 후로 실력이 점점 향상되어 그런 프로그램은 하루면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동시에 많은 정보를 웹에 기록하고 활용하게 되었다.
1997 . 04 . 01 한국원자력연구소에 근무-결혼하다
강릉의 강사로 일할 때 대전 대덕연구단지의 한국원자력연구소에 포스트닥으로 근무하는 김태연 선배로부터 연구소에서 포스트닥을 구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마침 강릉대 물리학과에서 교수를 뽑기로 했던 것을 취소했던 터였다. 대전 생활은 강릉하고는 또 달랐다. 도시가 컸고, 원자력연구소는 당시 연구원이 천 명이 넘을 정도로 단일 연구소로는 국내에서 최대였다.

나는 연구소에 4월 1일에 가서 25일에 아내가 될 사람을 만났다. 연구소 게시판에 산악회 주관으로 봄맞이 산보를 가는데 산악회 회원이 아니어도 된다는 공지를 보고 가벼운 마음으로 양복바지를 입고 구두를 신고 산악회에서 대절한 관광버스에 탔다. 내 바로 뒷자리에 앉은 세 명의 아가씨 중에서 두 명이 내 눈에 확 들어왔다. 그런데 산악회에서 말하는 산보라는 것이 밧줄을 타고 암벽을 오르는 것이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산악회에서 나눠준 도시락과 음료수를 그 중 한 명의 가방에 넣어달라고 부탁을 하고 대신에 그 가방을 내가 메고 다녔다. 나는 몇 달 뒤 11월 9일에 그 여자와 결혼했다. IMF에 구제 금융을 받기 2주 전이었다. 신혼여행을 다녀오고 바로 외환위기가 터진 것이다.

원자력연구소 생활은 재미가 별로 많지는 않았다. 연구소에서 하는 실험이라는 것이 입자물리학을 하던 사람에게는 별로 흥미로운 것도 아닐뿐더러, 내가 근무하던 곳은 원자력연구소에서도 핵물질을 다루는 핵심시설이라 근무하는 사람들이 이래저래 방사능에 자주 노출되었다. 이를테면 핵물질을 자를 때 발생하는 미세조각들을 청소하려고 핫셀에 들어가려면 엄청난 방사능을 쪼이게 되는 것이다. 물론 나는 우리 팀의 막내라서 그런 험한 작업에서는 열외 되었지만 핫셀로 통하는 바닥을 청소하는 간단한 작업에서도 얼마간의 방사능은 항상 쪼이게 되어 있다.

더구나 IMF사태 이후로 연구소의 정년이 대폭 축소되었고, 있던 연구원도 잘라내는 판국이라 새로 연구원을 뽑는 것은 기약 없이 연기되었다.

나는 책을 쓰는 것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 외의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집에서도 연구소의 도서관에서도 당시에 250만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노트북을 사서 직접 그림도 그리고 타이핑하고 편집하면서 책을 써나갔다. 엄청난 에너지가 없었다면 결코 끝을 보지 못할 일이었다. 책은 작은 글씨로 이단 편집하여 900여 쪽이었다. 요즘 방식으로 편집했다면 족히 1300쪽은 되었을 것이다. 1999년 4월 드디어 그 책이 완성되었다. 그러나 완성되었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나마 내가 쓰고자 했던 내용의 절반이었다. 나머지 절반은 시작도 하지 못했다.

연구소 일과 책을 쓰는 생활을 병행하는 것은 여러모로 나를 지치게 했다. 나의 미래와 관련하여 여러 가지 것들이 모호했다. 분명한 것은 나는 원자력연구소 하고는 맞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국책연구소에서의 공무원 같은 생활에 적응하기에는 나는 보다 자유분방한 정신의 소유자였다.

*방금 전 태연이형을 만나고 왔다. 춘천에서 살다가 이제 곧 원주로 이사 올 예정이란다. 새로 계약한 집을 구경하고, 아파트 단지의 평상마루에 앉아 음료수를 마시며 오랜만에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숲이 아파트를 둘러싸고 큰 나무그늘이 있어 솔솔 바람이 시원했다. 태연이형까지 원주로 온다고 하니 앞으로 더욱 즐거운 일들이 많을 것 같다.
1995 강릉대학교에서의 강사 시절-자전거에 빠지다
1995년 여름 프랑스에서 한국으로 귀국했다. 마침 강릉대학교 교수님과 같은 일을 하게 된 인연으로 강릉대학교 강사로 근무하게 되었다. 프랑스 연구원 생활 막바지 즈음에는 박사과정을 재수할 때 생각했던 수학과 물리학 책을 쓰고 싶다는 열망이 점점 강렬해져 갔다. 거의 마음이 병이 될 지경이었다. 아마 그 책이 아니었다면 나는 프랑스에 계속 눌러 살았을 것이다. 프랑스 지도교수님도 자기랑 프랑스에서 계속 연구하자며 연구비를 지원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렇지만 나는 그냥 그 책만 쓰고 싶었다. 강릉대학교 강사 생활은 그런 점에서 최적이었다. 강의 몇 개만 하면 나머지 시간은 완전히 내 것이었다. 남들의 이목은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강릉 포남동은 경포호수 바로 옆에 위치한 곳인데 나는 그곳 다세대 건물 2층에 원룸을 빌려 2년 반 동안 살았다. 제일 좋았던 점은 자전거로 경포대를 한 바퀴 도는 것이었다. 처음에 자전거는 계단을 올라갈 때 무릎이 삐걱거리는 것 같아서 관절에 좋을 것 같아 산 것이었는데 나중에는 자전거 마니아가 되어서 시내를 갈 때도 강릉대를 갈 때도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그 자전거는 나중에 대전의 원자력연구소에도 가져가고 원주에 올 때도 가져와서 19년 정도 나와 함께 했다.

지금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운동은 자전거 타기다. 그런데 강릉 경포대만큼 자전거 타기 좋은 곳이 없어서 아쉽다. 가끔 강릉을 갈 때는 가능하면 가족과 함께 경포대 자전거 산책을 한다. 그 때보다 경포대는 볼 것도 많아졌고 많이 변했지만 그래도 경포호수를 한 바퀴 돌때의 상쾌함 만큼은 여전하다.
1992 프랑스 유학-글로벌에 눈 뜨다
캄캄한 밤. 대한항공 비행기가 파리 샤를드골 공항에 내렸다. 멋진 에펠탑의 야경을 제대로 음미하기도 전에 겁이 덜컥 났다. 미국 유학 준비한답시고 영어는 조금 공부했었지만 프랑스어는 봉주르 한마디 밖에 몰랐다. 무슨 무데뽀로 프랑스어 공부를 한 시간도 하지 않고 프랑스 땅에 발을 디뎠단 말인가? 다행히 파리 11대학교 선형가속기연구소의 연구원들과는 영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고, 비서들이 능숙하게 행정업무를 도와주었다. 그래도 연구소에서 소개해준 뻬르지아나 할머니의 집에서 숙박하는 생활은 적응하기 힘들었다. 그 집 다락방에는 달랑 침대만 하나 놓여 있었는데 독일 식민지 지배의 공포를 잊지 못하는 할머니는 절대 혼자 주무시는 법이 없었다. 내가 혹시 한인들과 어울려 늦는 날에는 반드시 할머니에게 전화를 드려야 했고, 그러면 할머니는 택시를 타고 근처 딸네 집으로 가서 주무셨다. 기분이 좋으시면 내 앞에서 옛날 프랑스 식 춤도 보여주시곤 하셨다.

그렇지만 그 집 다락방에 결국 적응하지 못하고 몇 달 안 되어 생활지에 실린 광고를 보고 이사를 갔는데 그곳이 다름 아닌 레만 부인의 대저택이었다. 아주머니는 영어도 할 줄 아셨고, 은퇴 전에는 연구소에서 팀장까지 했던 공학도 인텔리전트이셨다. 은퇴 후에는 유명 조각가에게 사사 받아 조각을 하셨다. 불행히도 내가 그 집으로 가기 몇 달 전 남편이 암으로 돌아가셨는데, 그 남편이 바로 내 지도교수의 지도교수님으로 입자물리학의 대가이셨다. 우연치고는 모든 게 신기했다. 그 아주머니 아들이 결혼을 할 때는 그 집 마당에서 피로연이 열렸는데 그 해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조지 샤팍도 하객으로 왔다. 아주머니는 저녁 때 종종 프랑스 각 분야의 거물들을 초청해서 식사 자리를 여셨는데 나도 초청을 받아 황홀한 만찬을 즐겼다. 말을 떠듬거리는 한국이라는 잘 모르는 나라의 청년을 이곳 사람들은 따뜻하게 환대해주었다. 음식을 잔뜩 먹고 나면 메인 요리, 디저트가 또 새로 나와서 예의상 음식을 남길 수도 없고 정말 배터지게 먹었다.

레만 부인은 직접 프랑스어 책을 몇 권 사주면서 저녁 때 프랑스어를 무료로 가르쳐주셨고, 프랑스 오페라하우스의 뮤지컬을 보여주셨다. 포도주의 양대 산맥인 브루고류 마을에 있는 본인 아버님의 집으로 지금은 가족 별장으로 사용하는 곳으로 데려가서 하루 재워주시고, 포도주 박물관도 구경시켜주셨다. 순박한 마을 사람들은 자기 포도밭도 보여주고 차로 마을을 드라이브 시켜주었다. 사람들마다 자기 집 저장고에 보관되어 있는 소시지와 포도주도 자랑하면서 맛을 보게 하였는데, 그 맛이 그 맛인 것 같았다. 그날 저녁 만찬에서 동네 사람들이 장난스럽게 권하는 포도주를 주는 대로 다 받아먹었는데 그래도 흐트러짐 없이 꼿꼿하게 버티다가 내 침실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쓰러졌었다. 레만 부인과 사람들은 맨발로 마당을 걸어 다니셨다. 아~ 그 때의 포도주와 그 마을 사람들 만큼이나 따뜻한 추억이다.

내가 박사 논문을 쓰다가 새벽에 장이 뒤틀려 두 번이나 쓰러져 신음하고 있을 때는 그 때마다 2층 침실에서 내려오셔서 반 지하에 있던 나에게 냉수 찜질을 해주셨다. 프랑스말로 학위 논문을 발표 할 때는 전체 발표를 들어주고 평을 해주셨고, 학위논문에서 유일하게 프랑스어로 쓴 부분인 첫 페이지(감사의 글)를 다듬어주셨다. 학위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하니 만류하며 슬퍼하셨다. 강릉에서 강사를 할 때는 국제우체국환으로 수십만 원을 생활비에 쓰라고 보내주셨는데 내가 생활이 힘들다고 한 적도 없었는데 고마운 한편으로 왜 보내주셨는지 의아했다.

2년 뒤에 아내와 다시 프랑스를 한 달간 여행하러 왔을 때는 20여 일 동안 무료로 재워주셨고, 매일 아침 요가를 하러 가시면서 늦게 일어나는 우리 먹으라고 차와 빵 등으로 아침을 차려주셨다. 파리를 구경하고 저녁 때 돌아오면 본인의 지인들과 함께 우리 부부를 만찬에 초대해주셨다. 여행 막바지에 전철에서 젊은 애들에게 500프랑을 도둑맞았을 때는 본인이 500프랑을 주셔서 계획했던 여행도 잘 마무리 할 수 있었다.

레만 부인은 내개 종종 한국에 있는 자기 아들이라고 하셨다. 하나 뿐인 아들이 남편이나 본인의 기대와는 달리 학자가 되기보다는 단역 콩트 배우가 된 것을 못내 아쉬워하신 것 같다. 내가 레만 부인 집에 살면서 새벽에 연구소에서 돌아와서 샤워하며 소음을 내고, 샤워물이 넘쳐 바닥에 홍건이 고이게 하고, 주말에 파리에서 한국음식을 사와서 요리를 하며 특이한 냄새들 피우는 등 여러 말썽을 부렸지만, 너그러이 이해해주셨다. 오히려 내가 그러는 덕분에 남편 잃은 슬픔을 잊게 되었다고 고마워 하셨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내 서재의 책상 위에는 레만 부인과 내가 레만 부인이 아틀리에로 쓰던 차고에서 다정히 찍은 사진이 놓여 있다. 그 사진을 볼 때마다 더 없이 포근함을 느낀다. 내 인생의 열정적인 시기에 우연하게 만나서 국적을 초월한 사랑을 나눠주신 분이셨다. 방송에서 르펜이라는 극우주의자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다양한 인종에 대한 "똘레랑스(이해심)"를 강조하셨던 레만 부인. 그 분은 내게 있어 프랑스에 있는 어머니였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메르시 보꾸 마담 레만 ♥~
1991 박사과정에 재수하다-새로운 변화의 씨앗
만만하게 봤던 박사과정에 떨어지는 바람에 한 학기를 재수하게 되었다. 생선장사하는 어머니에게도 미안하고 자존심도 상했다. 박사과정에 입학하면 프랑스에서 장학금을 받고 논문을 쓰기로 약속되어 있었다. 공부 좀 한다하는 선배들이 미국으로 유학 가서 박사과정을 다닌 후에 한국으로 돌아와서 교수를 하는 것이 코스인 시절이었다. 나도 그렇게 준비하고 있었는데 프랑스에서 학위를 하신 교수님이 프랑스 11대학교 교수님과 인연이 닿아서 한국 학생 한 명을 프랑스에 보내기로 하셨고 내게 그런 제안을 했을 때 나는 흔쾌히 수락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연기되어 버렸고 장래가 불투명해졌다. 그 해 봄 대학원도서관 앞 잔디광장에서 정문 쪽을 내려다보며 내 인생에서 대체 무엇을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인가를 골똘히 생각했다. 불현듯 수학과 물리학에 대한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곧 있을 박사과정 시험을 준비해야 했고, 2학기에 합격을 하고 나서는 수업 듣기에 바빠 그 책에 대한 생각은 잊어버렸다. 그냥 그렇게 끝나는 줄 알았다.

만약 그 때 내가 그냥 미국으로 유학을 갔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어딘가에서 내가 원했던 교수님으로 살고 있을 가능성이 제일 많겠지만 어느 경우든 바다소라는 웹사이트는 세상에 없었을 것이다. 인생은 참으로 어렵고 정답이 없다. 한참을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그 때의 선택을 평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1985 물리에 열정을 불태웠던 고려대학교 생활
어둡고 긴 터널 같았던 고등학교 시절. 그러나 그 끝은 해피앤딩이었다. 나는 매우 운 좋게도 고려대학교 물리학과에 합격했다. 그 당시는 학력평가시험을 치고 정시에 대학에 딱 한 군데만 원서를 낼 수 있었다. 그곳에서 떨어지면 야간대학이나 전문대학을 가거나 재수를 해야 했다. 집안 형편상 재수는 불가능했고, 물리학과는 당시 가장 인기 있는 학과였다. 나는 약간 여유 있는 점수를 받았지만 합격을 보장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전두환 군사정권은 대학생들이 대학에 들어와서 데모만 하고 공부를 하지 않는다면서 대학 정원을 40명원에서 46명으로 늘리고, 대신 공부를 하지 않는 대학생은 중도에 떨어뜨리겠다는 졸업정원제 정책을 폈다. 그렇게 늘어난 정원 덕분에 나는 간신히 합격했다. 그런데 졸업정원제는 흐지부지 되어 입학한 학생 모두 졸업하게 되었고, 정원은 곧 다시 40명으로 축소되었다.

3월의 따뜻한 교정은 낙원이었다. 나는 일반화학 같은 과목은 출석만 부르고 잔디밭에 앉아 따뜻한 봄볕을 마냥 즐겼다. 과모임, 동아리 모임 등에서 신입생 환영파티 등도 즐거웠고, 미팅도 하고, 동기들과의 회식 자리도 자주 있었다. 다만 인천에서 제기동까지 전철을 타고 두 시간이나 걸려 통학하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었다. 도서관에서 공부를 할라치면 잠에 빠져버리고, 도서관 시간이 끝났다는 안내음악을 듣고 마지막 전철을 놓치지 않기 위해 제기동역까지 전속력으로 달리는 생활이 반복되었다. 사회가 혼란스럽다보니 물리보다는 정치 쪽에 좀 더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런 어느 가을 나는 인문계 학생들이 주로 이용하는 중앙도서관에서 "퀴리부인의 생애와 사랑"이라는 퀴리부인의 둘째 딸이 쓴 전기를 빌렸다. 통학하는 전철 안에서 읽기 위해서였다. 그 전기를 읽고 나는 번개에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막연히 좋아해서 선택한 물리라는 학문이 전력을 다해서 해볼 만한 것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책의 힘은 대단하다. 나는 그 즉시 어머니에게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하며 공부를 하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어머니는 막내아들을 옆에 두고 싶어 하셨지만 나는 작은 용달에 짐을 싣고 책을 읽은 지 일주일도 안 되어서 보문동 한옥의 방 한 칸에서 그 후 6년이나 계속된 자취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 후로 나는 재밌어서 물리에 깊이 빠져들었고, 덩달아 여러 차례 학업성적 최우수 표창도 받게 되었다. 대학원에서 핵물리학을 전공하여 초기우주론에 대한 논문을 썼고, 박사과정에서 입자물리학을 전공하기까지 물리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불태웠다.
1982 어둠과 빛이 공존했던 동산고등학교
추점 방식으로 배정된 동산고등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말썽부리는 학생들이 체벌을 받느라 거의 매일 담임시간이나 수업 중에 엄지손가락보다 굵은 마대자루가 부러지는 것을 목격하였다. 수업 때 무엇을 배우느냐 보다는 제발 아무 일 없이 하루가 지났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학교를 다녔다. 밤 11시까지의 야간 자습까지 교실의 같은 자리에서 붙박이처럼 자습을 해야 했기 때문에 활발한 학생들에게는 곤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유일하게 배운 것은 인내심이었다. 학교에 야구부가 있었는데(류현진 선수가 동산 야구부 출신임), 야구부가 인천지역 예산에 출전하거나 전국대회에 출전하는 때가 축복의 시간이었다. 수업을 빼고 우리는 운동장에 모여 응원 연습을 했고, 시합이 있는 날에는 인천이나 서울의 동대문 운동장을 찾아 목청이 터져라 응원을 했다. 그래도 나는 선생님들과 관계가 좋아 학교에서 선생님들께 맞은 적은 거의 없었고, 심지어 선생님들 당직실을 기웃거리다가 선생님들과 바둑을 함께 두곤 했다.

나는 중3 겨울방학 때 집에서 형부와 하루에 열 판 가까이 바둑을 두며 바둑에 푹 빠졌다. 몇 점 깔고 두다가 방학이 끝날 무렵에는 맞두고도 자주 이겼다. 신문의 바둑 코너를 열심히 따라 두다가 바둑 잡지와 바둑 책을 사서 공부하고, 주말이면 기원을 다녔다. 아침에 원장님보다 일찍 나가서 기원 앞에 서 있다가 밤늦게 집으로 돌아왔다. 나중에는 기원에서 손님들에게 바둑을 두어주는 사범 역할을 하고 기원 입장료를 면제받고 짜장면도 얻어먹었다. 심지어 2학년 수학여행 때도 선생님들과 바둑을 두었다. 학교에서는 내가 주관하여 최초로 학생과 선생님 바둑대회를 개최하였고, 참가비를 걷어서 트로피와 상금도 마련하였다. 나는 그 대회에서 2등을 하여서 트로피를 받았다. 그것은 내가 받은 유일한 트로피가 되었다.

며칠 동안의 학교 시험이 끝나면 혼자서 집으로 가는 길에 점심으로 간짜장을 먹는 것도 큰 즐거움이었다. 그 당시에 인천에는 화교가 많이 살았는데, 짜장면 집에서 나이 많은 아저씨가 손님에게는 우리말로 주문을 받고, 자기들끼리는 중국말로 이야기하는 것이 신기했다. 손으로 면을 뽑는 수타 짜장면이었는데 꿀맛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사소한 말다툼을 벌인 학생을 시험에서 이겨보겠다고 엄청 열심히 공부했는데, 그 때 노력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 하면 된다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다. 동아리로는 문예부에 지원해서 3대 1의 경쟁을 뚫고 합격했다. 시를 몇 편 썼고, 그들 중의 몇 편은 멋진 액자에 걸려 학교 교실과 복도에 걸리기도 했다. 그런데 학교 개교 기념 동아리박람회에서 사건이 일어났다. 동아리 선생님이 나랑 상의도 없이 내가 쓴 시의 결론 부분 마지막 두 줄을 빼고, 제목도 "낙서(落書)"에서 "인생의 환희"로 바꾼 것이었다. 나는 그것이 학교 강당에 걸려 있는 것을 보고 화가 나서 그 액자의 비닐을 벗기고 친구의 도움을 받아 제목에 엑스 표시를 하고 그 옆에 낙서라고 다시 쓴 다음 빠진 결론 두 줄을 친구의 엉망인 글 솜씨로 채워 넣어 제자리에 걸어 놓았다. 진짜 우리말 제목대로 낙서가 된 것이다. 테이프 커팅을 하고 강당에 학교 귀빈들이 입장할 때까지도 나는 당당했다. 그런데 내 작품 앞에서 어떤 부인이 뭐라고 했고, 동아리 선생님이 그 앞으로 불려갔고, 잠시 뒤에 그 선생님이 나를 불러 뺨을 몇 대 때렸고, 내 작품은 떼어져서 창고에 처박혔다. 나는 동아리에서 제명되었다. 그 사건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 시인이나 문학가가 되어 있지 않았을까?
1979 상인천중학교에서의 활달했던 학창시절
중학교 생활은 매우 활동적이었다. 그렇지만 집에서는 만화방에서 만화책이나 무협지를 빌려보는 것이 취미였고, 방에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여러 상상을 하는 것도 좋아했다. 동네에서도 그랬지만 친구들과 장난치는 재미에 학교 가는 게 좋았다. 2학년 때 여자 담임선생님은 무섭고 원칙을 잘 지키는 성격이셨는데, 학생들이 잘못해서 걸리면 그 날 날짜대로 30센티미터 플라스틱 자로 손바닥을 때리셨다. 그런데 한 번은 하필이면 시험 보는 날 복도에서 날뛰다가 선생님께 걸렸다. 원칙대로 20여 대 손바닥을 맞고 시험을 보는데 영 기분이 엉망이었다. 그런데 선생님이 시험지 위에 사탕 하나를 올려놓으시고는 조용히 나가셨다. 선생님도 마음이 좋지 않으셨던 모양이다. 내 눈에서 눈물이 시험지로 떨어졌다. 그날 시험 점수가 어땠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그 장면은 아직도 예리하게 선명하다. 그립습니다!! 선생님!
1978 과학을 좋아하다
초등학교 6학년 무렵 나의 취미는 다른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만화책 읽는 것, 텔레비전 보는 것, 전자오락실 가는 것 등이었다. 만화방에 가서 한 번에 열권 정도씩 만화책을 빌려와서 읽었다. 전자오락실에서는 100원짜리 동전을 넣어야 한 판을 했는데 한 번은 친구가 알려준 대로 10원짜리 동전에 투명테이프를 감아서 100원짜리로 만들어 쓰려다가 실패했을 뿐더러 주인아저씨에게 걸려 두들겨 맞고는 그 후로 오락실 출입을 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전화위복인 셈이었다.

용돈이 생기면 나는 책을 사고 나머지 돈은 돼지저금통에 넣었다. 돼지저금통이 꽉 차면 나는 그것을 깨서 책을 살 돈 빼고는 누나에게 주었다. 누나는 항상 나보다 돈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과학 잡지를 사는 것을 좋아했는데 권말부록으로 조잡하기는 하지만 신기한 과학교구를 끼워주곤 했다. "라디오와 모델" 같은 잡지도 수십 권 구입했다. 작은 전자 부품들을 써서 라디오나 차임벨 같은 전자장치를 만드는 방법을 소개한 월간지였다. 나는 라디오 키트를 사서 조립하고, 만능기판을 사용해서 책에 나온 것을 따라 만들었다. 나중에는 기판용 소형 전동드릴과 구리기판을 사서 특수 펜으로 회로를 그리고 염화제이철로 구리를 녹여서 납땜을 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작은 다락방이 내 공작실이었고, 어두컴컴한 지하실을 과학실험실로 만들어 달라고 어머니에게 조르기도 했다. 그런데 한참 잘 나가던 때에 그만 묽은 황산을 옷장에 넣어놓는 실수를 하고 말았다. 그 당시는 꼬마에게 묽은 황산을 팔아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던 시절이었고, 나는 구리판을 녹이기 위해 묽은 황산을 집 근처의 공업사에서 구입한 것이었다. 노란 병에 들어 있던 묽은 황산이 위험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런 만큼의 주의를 기울이지는 못했다.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3단 서랍장 맨 위 칸에 놓아두었던 묽은 황산의 옆으로 쓰러져 있었고, 고무마개가 빠지면서 흘려내려 옷장과 옷가지들을 모두 녹이고 방바닥의 장판까지 시커멓게 녹였다. 어머니는 옷장과 옷들을 모두 버리게 된 것에 대해서는 일절 혼내지 않으셨지만 내가 위험한 일을 하고 있다고 느끼셨는지, 어느 날 몰래 내 공작실에 있던 전혀 위험하지 않은 물건까지도 모두 갖다 버리셨다. 나는 조금 서운하기는 했지만 내가 저지른 잘못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뭐라 할 처지가 아니었다.

나는 60밀리미터 굴절망원경도 샀다. 그것은 대학교 때까지도 내 보물이었다. 한겨울 몸을 달달 떨고 손을 호호 불어가며 깜깜한 밤에 단층 슬라브집 옥상에 올라가서 오리온 별자리와 오리온성운 등을 망원경으로 살펴보았다. 이 당시의 여러 활동과 경험들이 내가 나중에 대학에서 물리를 공부하기로 진로를 택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을 것임에 틀림없다.
1976 인천 석암초등학교로 전학하여 새로운 계기를 맞다
4학년 2학기 무렵 급작스럽게 용현동에서 주안동으로 이사하면서 용현초등학교에서 석암초등학교로 전학을 하게 되었다. 석암초등학교 6학년 때 호랑이선생님이라고 불렸던 박진호 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은 시험을 보고 나면 학교 옥상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올라가서 점수대별로 학생들을 줄 세운 다음에 80점대 이상은 집에 그냥 가게 했지만, 70점대는 청소를 시키셨고, 60점 이하는 벌을 주셨다. 나는 그게 너무 무서워서 억지로 공부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덕분에 초등학교 졸업을 앞 둔 마지막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아 내 생애 처음으로 상(성적우수상)을 받았는데 그 때 집으로 돌아오는 기분이 하늘을 날듯이 좋았다. 그 때의 강렬했던 기억이 평생 내가 공부를 지속하는 힘이 되고 있다. 감사합니다!! 박진호 선생님!
1966 . 10 . 22 인천에서 태어남
1966년 10월 22일(음력 9월 9일) 인천에서 태어났다. 용현동에서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실컷 놀았다. 고통스러운 시간들도 있었지만 대체로 구김 없이 자랐다. 학교에 갈 때는 친구 한 명과 같이 걸어가면서 친구를 웃기는 이야기를 많이 했던 기억이 난다. 어려서부터 낙천적인 성격이었던 것 같다. 이런 성격을 갖게 된데는 어머니의 역할도 컸을 것이다. 어머니는 생선 장사를 하면서 하루 종일 힘들었을 텐데도 집에서 나에게만큼은 자상하셨다. 하루는 혼자 야구놀이를 하다가 공을 배트로 쳤는데 그 공이 앞에 있는 가게의 유리창을 깼다. 그 집 아주머니가 공을 들고 나에게 걸어오는데 나는 겁에 많이 질렸었다. 그런데 마침 그 때 어머님이 장사를 마치고 집으로 오시는 길에 그 광경을 보셨다. 그 가게 아주머니는 그 공을 내게 주며 어머니에게 어린 아이가 놀다보면 그럴 수도 있다고 말씀하시고 다정하게 공을 건네 주셨고 어머니도 화를 내거나 하시지 않으셨다. 누나 결혼식 때는 어머니가 축의금이 잔뜩 든 지갑을 내가 맡겼었는데 나는 그만 짜장면을 여섯 그릇이나 먹느라고 식당 테이블 밑에 그 지갑을 두었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잊는 바람에 결국 지갑을 잃어버렸다. 그 때도 어머니는 좋은 날이고, 어린 아이에게 돈을 맡긴 자기 잘못이라며 혼을 내지 않으셨다. 시험 점수가 좋을 때는 그 점수를 들고 돈 계산을 하는 어머님 방에 들어가서 용돈을 타기도 했다. 그렇지만 시험 점수가 반에서 30등을 했을 때는 성적표를 보시고도 별 말씀이 없으셨다. 나도 지금 아이들을 키우면서 애들에게 화를 내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잘 알게 되었다. 고맙습니다 어머님!! 언제까지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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