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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성에 가면


저녁을 먹고 산책을 나갔다. 비가 드문드문 내렸다.

지난 목요일은 시원이의 열한 번째 생일이었다. 아내는 초록마을에서 성게미역국을 사서 끓였고, 생일 플랜카드를 걸고, 축하편지도 쓰고, 돈 봉투를 걸어놓고, 생일선물로 우크렐레도 사주고, 베이커리에서 케이크도 사놓는 등 많은 일을 했다. 내가 한 것이라곤 아내가 권하는 보나베띠라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의 쿠폰을 티몬에서 끊어놓은 것뿐이었다. 식당 예약도 아내가 했다.

그날 퇴근했을 때 현관에서 우크렐레를 치는 아내를 보고 깜짝 놀랐다. 이벤트를 위해 겨우 코드 하나를 시원이에게서 배운 모양인데 마치 베니스의 식당에서 연주하는 거리의 악사 같았다. 분위기를 띄우는 데는 충분했다. 시원이는 예쁜 드레스를 입고 거실에서 우크렐레를 연주했다. 어설프지만 그래서 더 귀엽다. 학교 방과후 수업에서 우크렐레를 배운다.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와서 시원이는 "나성에 가면"이란 노래를 우크렐레로 쳤고, 노래를 불렀고, 나에게 그 노래를 부르게 하고 자기는 웃기는 춤을 췄다. 밤 10시가 넘었지만 흥이 남아서인지 잠자러 안방에 들어갔다가 몇 번이나 다시 거실로 나오는 장난을 쳤다. 아~ 이 순간이 영원하였으면.. 초코케이크에 꽂혀 있던 큰 초 한 개와 작은 초 한 개가 시원이의 춤과 겹치면서 눈에 어른거렸고 "나성에 가면"이란 노래가 귀에 쟁쟁거렸다. 시원이가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이 시간들이 곧 그리워질 것 같았다. 시원이가 또 나오지 않을까하여 소파에 앉은 채 한동안 그 방문 쪽을 바라보았다.


오늘 아침에는 날씨가 좋았고 낮에는 더웠다. 시원이가 텔레비전을 보고, 시훈이가 노트북을 하는 동안 나는 맨발로 베란다에 나가 캠핑의자에서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었다. 아이들과 자전거를 타거나 서점에 책을 보러 갈까도 싶었으나 이렇게 집에서 빈둥거리는 것도 시간을 느리게 쓰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으로 너구리 라면을 먹고, 낮잠을 자고, "1박2일"을 보면서 저녁을 먹었다. 오늘 우리 집에서 밖에 나간 사람은 나 혼자뿐이었다. 그것도 저녁 때 우산을 쓰고 30분 정도 걸은 것이 전부였다. 나는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지만, 항상 별무 소득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내가 지금 글을 쓰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글쓰기를 통해 생각과 감정의 일부를 남기고 동시에 지친 머리를 다독이고 있다. 글을 쓰는 것은 복잡한 생각이 잠을 자고 쉴 수 있도록 이불을 덮어주고 자장가를 불러주는 것과 비슷하다. 이런 식의 글을 쓰는 것이 만만해보이지만 스티브 잡스도 못했고, 빌 게이츠도 못하는 것이다. 이순신 장군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난중일기를 썼기 때문이라고 내 나름대로 생각해본다. 전쟁이란 극한 상황 속에서, 특히 상황이 불리하거나 급박할 때 그는 일기를 쓰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두려움을 극복하고, 내면에서 지혜를 이끌어내었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가야할 길이 이런 것이 아닌가 싶다. 플랫폼을 만들고, 이야기를 쓰고, 이야기를 듣는 것. 가령 다음과 같은 아름다운 이야기..



나성에 가면 편지를 띄우세요

사랑의 이야기 담뿍 담은 편지

나성에 가면 소식을 전해줘요

하늘이 푸른지 마음이 밝은지

즐거운 날도 외로운 날도 생각해주세요

나와 둘이서 지낸 날들을 잊지 말아줘요

나성에 가면 편지를 띄우세요

함께 못가서 정말 미안해요

나성에 가면 소식을 전해줘요

안녕 안녕 내 사랑



나성에 가면 편지를 띄우세요

꽃모자를 쓰고 사진을 찍어보내요

나성에 가면 소식을 전해줘요

예쁜차를 타고 행복을 찾아요

당신과 함께 있다하며는 얼마나 좋을까

어울릴꺼야 어디를 가도 반짝거릴텐데

나성에 가면 편지를 띄우세요

함께 못가서 정말 미안해요

나성에 가면 소식을 전해줘요

안녕 안녕 내 사랑

안녕 안녕 내 사랑
박형종 2014-08-24 (일) 23:54 글 901   답글 프린트 2 ▷4408 폴더 일상[142]
박시원   죄송해요. 아빠가 우리를 그렇게 많이 생각해 주실진 알았지만
제가 생각한 그이상이네요.그리고,나성에 가면 언제 다쓰셨어요?
2014-08-25 16:23  답글 1
박형종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요^^ 나성에 가면은 밤 12시 반쯤에 썼는데 시간은 별로 걸리지 않았어요. 2014-08-25 21:35  답글 1
박시원   기억을 잘하셨네요. 2014-11-25 17:42  답글
박시원   사랑해요~~~ 2014-08-25 16:24  답글 1
박형종   아빠도 사랑해요^.^ 2014-08-25 21:35  답글 1
박시원   넹~~~~~~~~~~~~~ 2014-11-25 17:43  답글
정채현   쌤 굉장히 좋은 아버지이자 남편이신거 같아요ㅎㅎ 짱짱! 2014-08-31 22:09  답글 2
박형종   그렇게 말하니 부끄럽네.. 그냥 어느 부모나 느끼는 감정을 글로 썼을 뿐이야~ 2014-08-31 22:26  답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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