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은 누가 만들었을까?
"주말은 누가 만들었을까? 주말을 만든 사람에게 노벨평화상을 줘야 한다." 아빠가 없다고 금요일 밤에 컴퓨터를 하며 신나게 놀다가 늦게 자고, 토요일 아침에 느지막하게 일어나서 월드컵 축구를 보다가 9시가 넘어서야 아침을 먹으며 시훈이가 한 말이다. "그러게. 누가 만들었을까? 컴퓨터로 물어볼까?" 시원이도 한 마디 거든다. 나도 껴들었다. "그렇게 물어보면 제일 많은 답은 뻔해." "내가 만들었다! 내가 곧 신이다!"
아닌 게 아니라 금요일은 팍팍한 삶의 오아시스다. 목이 마른 모든 동물들이 오아시스에 모여들듯 모든 사람들이 주말을 즐기러 나선다. 어디에 있든 주말은 그 자체로 기분을 들뜨게 한다. 인생이란 그 오아시스 사이를 오가는 짧고도 긴 여행이란 생각이 든다.
나는 7시에 일어났다. 냉수 한 컵을 들이켜고, 서재에서 창문을 열고 텔레비전을 보면서 스트레칭을 했다. 상쾌한 아침이다. 월드컵 중계를 하고 있었다. 텔레비전을 끄고 노트북으로 월드컵 하일라이트를 보고 있자니 큰 새 한 마리가 나무 위에 올라서서 두리번거리고 멀리 전봇대에 앉은 까치 두 마리가 마치 축구중계를 하듯 종알거린다.
간밤에 선생님들과 저녁 회식을 했다. 금요일 회식자리는 10년도 더 된 것 같다. 역시 금요일은 색다른 느낌을 준다. 평소 집에서 가족과 저녁을 먹을 때도 금요일에는 우리 모두 들뜬 기분이 된다. 금요일의 마법! 불타는 금요일이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학기 말이 다가오면서 다음 주에도 두 번의 회식이 예정되어 있다. 물론 나는 집에서 가족과 저녁 먹는 것을 가장 좋아하는데 학기 초나 학기 말에는 회식 모임을 만들고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선생님들과의 끈끈한 관계가 교무부장 업무를 하는 데도 큰 힘이 되어주고 있다. 다만 어느 회식 자리에서도 술은 기껏해야 한 잔 정도 밖에 마시지 않는다.
2차로 맥주를 간단히 하고 일부러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40분 정도 걸으면서 금요일 밤 11시경의 도시 풍경을 찬찬히 보게 되었다. 차들이 넓은 도로를 쌩쌩 내달렸다. 어디를 그리 바쁘게 가는 것일까? 학원을 막 마친 것으로 보이는 한 무리의 중학생들이 학원 입구에 모여 버스를 기다린다. 금요일 밤에 학원이라니. 마치 오아시스 없는 사막처럼 인생이 너무 무미건조한 것은 아닌가? 그들 중에 남녀 한 쌍이 서로를 바라보며 다정한 분위기다. 사랑을 알기에는 조금 이른 나이일 텐데. 삭막한 사막에 핀 한 송이 꽃일까? 맥도날드는 불이 환하고 사람들도 불나방처럼 제법 들어차 있다. 금요일 밤의 기운은 어김없이 집 앞의 포차들도 휘감고 있었다. 월드컵 영상을 띄어주는 대형 스크린 옆 야외테이블에는 사람들이 자리를 가득 메웠다. 역시 금요일 밤에는 야외테이블이 더 잘 어울린다. 나는 걷는 내내 골똘히 생각에 빠져 있었다. 인생의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
월드컵 하일라이트를 몇 개 보고나니 아침 7시 40분이다. 아내와 아이들은 아직 일어날 기미가 없다. 나는 세수도 하지 않은 꾀죄죄한 얼굴로 산책을 나섰다. 원주천을 따라 걷다가 돌아올 때는 변화를 주기 위해 아파트 단지를 가로질러 왔다. 산책을 하며 여러 사람들을 지나쳤다. 노부부가 휴대폰에서 가요를 크게 틀고 나란히 걸어오신다. 서로에게 그리 다정한 모습은 아니지만 마치 길게 뻗은 기찻길을 걸어가는 것처럼 흐트러짐 없는 간격을 유지하며 일정한 빠르기로 묵묵히 지나쳐간다. 얼마나 많은 세월과 이야기가 그들을 지나쳐간 것일까? 나는 어젯밤에 얻지 못한 결론을 오늘 아침에도 이어서 얻으려고 한다.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
나는 어떻든 다른 프로젝트는 보류하고 바다소에 오토바이오그래피를 만들기로 했다. 일종의 자서전을 기록하는 프로그램이다. 며칠 전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어찌된 일인지 고등학교 시절 라이벌이 문뜩 떠올랐었다. 그 때는 한 번 이겨보자는 다짐이 격렬했었고, 덕분에 나는 발전할 수 있었다. 수십 년이 지나도 라이벌은 라이벌이다. 구글에서 그의 이름으로 검색했으나 그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반면에 내 이름으로 검색해보니 19만 개의 웹문서 중에서 내 웹사이트가 첫 페이지에 나왔다. 적어도 인터넷에서 나는 그에 비해 뚜렷한 존재감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흐뭇했다. 오토바이오그래피에서 그런 기분을 공유하고 싶다.
집에 들어서니 시훈이가 월드컵을 보고 있고, 아내는 고무밴드 스트레칭을 하고 있다. 시원이도 곧 깼다. 아침을 먹고 시훈이는 거실에 노트북을 갖고 나와 노트북을 하면서 시원이와 텔레비전을 보고, 나는 아메리카노를 뽑아서 아내와 함께 베란다에서 마시면서 노트북으로 강화도의 펜션을 구경하고, 텔레비전도 힐끔거렸다. 오랜만에 "잘 먹고 잘 사는 법"을 보았는데 포맷이 많이 바뀌었다. 넓은 주말농장 같은 곳에서 즉석으로 야채를 캐서 요리를 하는 모습이 여유로워 보였다. 현대인에게는 호사스러운 여유다.
시원이는 피아노를 몇 곡 치면서 우리에게 곡명을 맞혀보라고 하고, 공기놀이로 아리랑을 하다가, 서재의 컴퓨터에서 애니메이션을 본다. 시훈이는 거실 좌탁에서 노트북을 하다가 나에게 자기가 사고 싶은 외장하드디스크에 대한 링크를 쪽지로 보내고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서 기말시험 공부를 한다. 아내는 베란다에서 취미로 천을 오리고 바느질하여 컵받침을 만든다. 구태여 멀리 떠나지 않아도 행복한 모습들이다. 아내가 차린 점심을 먹고 아이들은 방금 전 택배로 온 워터픽이라는 물총으로 이를 청소하며 신나한다. 시훈이는 프레젠테이션 대회를 준비한다고 친구들과 만나러 나갔고, 나와 아내는 "우리 결혼했어요"가 곧 시작한다며 안 나간다고 하는 시원이를 데리고 한 시간 정도 드라이브를 했다. 근처 블루베리 농장을 들렀는데 오늘 팔 블루베리를 따놓은 것은 없었다. 그렇지만 마음씨 좋은 사장님이 블루베리를 몇 개 따먹으라고 하셨다. 혁신도시의 집들을 구경하고, 오픈준비 중인 카페를 살펴보았다. 나는 스마트폰으로 방송국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시원이에게 "우리 결혼했어요"를 보여주었다. 참 편리한 세상이다. 순댓국집에서 저녁에 먹을 순댓국을 포장해오려는데 영업준비 중이었고 대신 사장님이 마음껏 가져가라고 하시는 호박을 다섯 개 가져왔다. 그것이 오늘 저녁 부침개 재료가 될 예정이다. 마침 천둥이 치고 소낙비가 내리는 날씨라 부침개가 제격이다.
나는 거실 소파에 앉아 노트북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숲 속 집에 있는 듯 안락한 기분이다.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거나 거창한 프로젝트를 시작하지 않아도 좋다. 지금 필요한 것은 오아시스의 물 한 모금이다. 나는 그것을 한껏 들이킬 것이다. 그 물 한 모금이 새로 먼 길을 떠날 용기를 줄 것이다.
결국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에 대한 해답은 찾지 못했다. 하지만 실마리는 발견했다. 행복은 삶의 테두리 안에 있다. 우리는 종종 그 테두리를 벗어나고자 몸부림을 치지만 사실상 그 테두리 너머에 의미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지금 이 짧은 순간을 사랑하고, 이 작은 곳을 아름답게 가꿔라. 그것이 삶의 전체이자 행복의 근원이다. 나에게 물 한 모금을 마시고 새로운 길을 떠날 얼마간의 시간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