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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이야기 / 43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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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방학

오늘부터 방학이다. 학교에는 희고 큰 눈이 내렸다.
 
아내와 초록지붕에서 점심을 먹었다. 먼저 도착해서 아내를 기다리는 동안 아담한  건물 두 채가 이웃해 서 있는 마당을 둘러 보았다. 한 채는 레스토랑이고 한 채는 살림집이다. 지대가 높아 사방으로 시야가 확 트였다. 눈이 내려서 더욱 운치가 있었다. 평일 낮인데도 빈 테이블이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아주머니들끼리 오셨거나, 남자들끼리 왔거나, 부부가 온 팀은 우리뿐이었다. 가운데 놓인 화목난로와 군데군데 벽에 붙어 있는 크리스마스 장식이 더욱 실내는 따스하게 했다. 나가사키짬뽕, 베이징볶음밥을 시켰는데 세 사람이 먹을 정도로 양이 푸짐했다. 후식은 천원을 추가하여 네팔 홍차와 아메리카노 커피를 시켰다. 외국 음식은 그곳에 여행하고 싶다는 욕구를 자극하는 맛이 있다.
 
배터지게 점심을 먹고, 차와 커피를 마시며 한참을 이야기 하다가 은행을 들렀다. 원주에서 새롭게 뜨는 번화가 중의 한 곳인 롯데씨네마 상가거리가 일방 통행이 되면서 인도를 확보하는 공사를 하고 있었는데, 그 공사가 마무리 되면 더욱 걷고 싶은 거리가 될 것 같다. 아내가 은행일을 보러 간 사이에 북새통서점에서 잠깐 책을 보았다. 우연히 집은 책이 "노는만큼 성공한다". 재밌어서 한 시간 가량 읽었다. 특히 저자가 독일에서 박사 학위할 때 데이터베이스 정리를 위해 그 당시 본인 세 달치 월급에 해당하는 6백만원이란 거금을 털어 노트북과 테이터베이스프로그램을 구입했었다는 이야기가 나랑 비슷해서 흥미로웠다.
 
학교에서 쓰던 소파테이블을 집에 가져왔는데, 소파에 잘 어울리는 아담한 가구다. 아내와 소파에 나란히 앉아 내가 뽑은 에스프레소 마끼야또를 그 테이블 위에 올려 놓고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항상 식탁에서 마주보며 커피를 마시다가 옆에 나란히 앉아 마시는 느낌이 색달랐다. 시원이는 학교를 마치고, 피아노학원을 들렀다가, 다시 영어방과후를 갔다가 5시쯤 집에 와서는 오자마자 친구와 방방이를 타겠다고 2천원을 달라고 하고는 쏜살같이, 정작 그 돈도 놓고, 달려 나갔다. 나는 다섯시 반에 늦은 낮잠을 잤다. 잠을 깨니 저녁 7시였다.
 
저녁을 먹고는 밀린 신문을 보고, 인터넷에서 아까 서점에서 읽었던 책, 신문에서 소개된 미러리스 카메라, 서재에 놓을 프로젝터 스크린 등을 검색하였다. 궁금한 것들을 바로 검색할 수 있는 좋은 세상이다. 내일은 도서관에 가서 책을 몇 권 빌릴 생각이다.
 
바쁘게 학기말을 마감하다보니, 정작 방학 때 무엇을 할 지에 대한 생각을 못했다. 지금 좌식테이블의 노트북 옆에 빈 종이를 올려놓고 있다. 백지 위에 생각들을 그려볼 작정이다. 작년 이 맘때는 바다소를 소셜네트워크로 리모델링하느라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 없이 바쁘게 지냈었다. 핵심 코드는 일주일 정도만에 짰는데  후속 작업이 1년 넘게 지속되고 있다. 바다소는 지난 4년 사이에 진학실장 업무용에서, 1학년 대표담임 커뮤니케이션용으로, 지금은 소셜네트워크로 세 번째 서비스를 하고 있지만, 내년에는 또 어떤 용도로 변화될 지 모르겠다. 그것도 빈 종이 위에 그려볼 항목이다. 교무부장 커뮤니케이션에 활용할 수도 있을 것 같고, 또는 실험적인 디자인을 연습하는 공간으로 쓰고 싶기도 하다.   
 
원래 이 글은 포스트잇에 짧게 쓰려고 했던 것인데, 매거진에 옮겨서 쓰다보니 묘사가 자세해지고 글이 길어진다.
 
어제 민사고 연극반(Life is Drama, LID)의 정기공연이 있었다. 오아시스세탁소 습격사건. 나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아이들과 함께 구경을 오라고 했다. 연말에 이런 공연을 볼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오는 길에 아내와 아이들은 휴게소에서 저녁을 먹었다. 돈에 돌아버릴 것 같은 사람들에 대비되는 오아시스세탁소 아저씨의 따뜻한 마음씨.. 그것은 사막같이 삭막한 세상에서 오아시스같은 존재였다.
 
시험점수 1점 때문에 지친 학생들에게, 최고의 대학에 합격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는 학생들에게, 바다소가 그런 곳이기를.. 오아시스세탁소 아저씨의 50년된 고객 장부처럼 바다소의 데이터베이스에는 앞으로 수십년 동안 따뜻한 사연들이 쌓이기를 기대한다.
 
그 동안 수없이 보아오던 백지인데 오늘따라 내 앞에 놓여 있는 종이가 유난히 하얗고 크게 보인다.
박형종   2011-12-21 (수) 23:12   인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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