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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지 한장

(2006.09.02)
 
개학한 후 첫 토요일입니다.

긴 방학 덕분에 학생들이 학교 생활을 그리워했던 것인지 하나같이 밝은 모습이고 열심히 공부하려는 것이 기특하네요.

오늘은 너무나 화창한 9월초의 토요일 아침이고 교실 창문 밖으로 펼쳐친 녹색의 경치와 멀리서 들려오는 새소리와 풀벌레 소리들이 정겹습니다.

학생들도 토요일이라 자유복을 입고 교정을 마음껏 활보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방학이 끝나고 새 학기가 시작되었네요.

5주가 넘는 지난 여름 방학 동안 아내와 아이들은 방학 초에 열흘, 그리고 후반부에 1주일 대전 친정에 갔었구요. 저는 집에서 혼자 여러 작업들을 하며 지냈습니다. 그리고 2주 동안 과학캠프 수업을 하였구요.

마지막 1주일 정도만 아이들과 방학을 즐길 수 있었는데요.. 그 때 에버랜드도 다녀오고, 홍천의 대명비발디파크에 있는 오션월드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었습니다.

지난 일요일, 방학 마지막 날, 이른 점심을 먹으며 시훈이와 놀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네요. 이것도 우연하게 시작된 일이었는데요..

시훈이는 볶음밥 중에서 피망을 빼고 골라 먹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식탁 위에 있던 곽휴지통에서 휴지를 한장을 꺼내 세 겹으로 길게 접어서 눈 안대를 시훈이게 했지요. 시훈이는 막 잡아 뺐구요.

얼마간의 실랑이 후에 그 휴지를 스크린이라고 하고 스크린 뒤에서 내가 시훈이 밥 잘 먹으라는 이야기를 하다가, 휴지 가운데 구멍을 뚫고 텔레비전이라며 편식하지 말라는 뉴스를 방송하였습니다. 물론 시훈이가 달려들어 그 휴지를 찢어서 두 조각을 냈구요.

나는 다시 휴지 한장을 빼서 역시 가운데 구멍을 내고 이번에는 요리 방송을 하였습니다. 마침 식탁 위에 있는 복숭아와 바나나 조각들을 갖고 디저트 요리를 하면서 뚫린 구멍 사이로 그것들을 집어넣어 먹었고, 시훈이에게도 먹으라고 하고(막 도망갔지요), 바나나와 복숭아로 꼬치 요리도 하여 휴지 구멍을 통해서 먹었습니다.

이런 일련의 모습들에 시훈이는 아주 배꼽을 잡고 웃었는데 아마 올해 들어서 가장 신나게 웃은 것이었을 겁니다.

단지 휴지 한장으로 이렇게 아이에게 웃음과 신기함을 줄 수 있다는 사실에 사실 저도 좀 놀랐구요..

십몇년 전에 프랑스에서 제 지도교수님이 식사 중에 물리 공식을 냅킨 위에 써서 설명을 할 때 냅킨의 효용성에 대해 놀란 이후로 두 번째가 아닌가 싶네요.

뭐 여러가지로 바쁘기는 하지만 앞으로도 이렇게 작은 시간들과 순간의 기회를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잠시 그 속에서 아이들과 맘껏 휘젓고 놀았으면 좋겠네요.
박형종   2006-09-02 (토)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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