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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일요일

일요일 당직이어서 학교에 출근했다. 예전에는 교무실에 앉아 전화를 받는 것이 주임무였는데, 두달전쯤부터 학교 순찰을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11월 중순이었지만 초가을처럼 날씨가 따뜻했다. 보통 일요일에는 학생들이 늦잠을 자기 쉬운데, 9시 무렵 다산관에 들어서니 소강당에서 노랫소리가 들렸다. 무슨 소린가 해서 들어가보니 뮤지컬동아리 학생들이 화요일에 올릴 작품 연습에 열중하고 있었다. 나는 습관적으로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 사진과 동영상을 찍으며 구경했다.
 
그러고 있자니 연극동아리 학생이 소강당에 와서 나를 발견하고는 자기네들도 연습 중이니 와서 봐달라고 했다. 다산관 1층 공동강의실에서는 조촐하게 4명의 연극반 학생들이 12월에 올릴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인원수는 적었지만, 12월 것을 벌써부터 준비하는 것하며,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역시 사진과 동영상을 찍으며 한참을 구경했다.
 
이 학생들하고만 있어도 하루가 짧을 것이다.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강의실을 나왔다. 나오면서 보니 뮤지컬동아리 학생 한 명이 맞은편 공동강의실에서 홀로 대본 연습에 집중하고 있었다. 아직은 어설프지만 막상 무대에서는 폭발적인 끼를 발휘할 것이다.
 
역시 고등학교 생활의 꽃은 동아리 활동이다. 선배가 일요일의 달콤한 휴식도 반납하고 후배의 연습과 무대 작업을 도와주는 모습이 훈훈했다.
 
10시반경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교내 순찰을 시작했다. 보통 한시간 걸린다. 나는 소강당에서 뮤지컬 연습하는 학생들, 공동강의실에서 연극 준비하는 학생들, 충무관 3층의 화장실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학생 등을 만나 이야기도 하고, 사진도 찍으며 1시간 30분 정도 걸려 천천히 한바퀴를 돌았다. 햇살이 그들이 연주한 음악처럼 감미로왔다. 내 머릿속을 어지렵혔던 문제 몇 개는 자연스레 풀렸다. 골프연습장 가는 길은 이 길이 있는지 처음 알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물은 현재는 캠프때만 쓰이는 창의관이다. 내가 학교에 뽑히고 12월에 오리엔테이션 받으러 학교에 왔을 때 이 건물 지하 식당에서 설립자님과 함께 점심을 먹으며 학생들의 모습을 신기해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 건물은 한때 기숙사로 쓰였었는데, 높은 곳에 숲으로 둘러싸여 있고, 내려다보는 기세가 좋다. 작년 봄 이곳에 산책을 왔다가 캠핑에 대한 영감을 얻기도 했었다. 
 
점심 무렵 아내와 아이들이 학교로 와서 소사휴게소에서 점심을 함께 먹었다. 가족들은 소사휴게소가 리모델링을 하고 처음으로 와본 것이다. 아이들은 시설이 좋고 특히 인터넷을 마음대로 할 수 있어서 꽤 좋아했다.
 
카푸치노를 마시며 잠시 쉬다가 학교의 입시설명회를 들어볼 겸해서 체육관으로 향했다. 10년 넘게 학교에 있었으면서도 입시설명회는 처음이다. 1부에 학교홍보 동영상을 보고, 2부에는 입학관리실장님의 설명을 듣는 순서로 진행됐다. 나도 들어보려고 했는데, 민사고출판사의 정부장님을 만나니 반가와서 이야기를 나누느라 별로 못 듣고, 대신에 아내가 열심히 들었다. 
 
설명회가 끝나기 전에 두 번째 순찰을, 이번에는 가족과 함께 돌았다. 순찰을 하는 김에 산책도 하고, 학교를 둘러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내가 아이들을 학교로 오라고 한 것이었다. 아이들은 다산관 소강당에서 드럼을 두드리고, 충무관 3층에서 피아노, 북, 장구, 드럼, 기타 등을 치며 신나했다. 무엇보다 마지막에 들른 골프연습장에서 골프 치는 것을 제일 좋아했다. 6시가 되자 밤이 어둑해졌지만, 시훈이는 내가 퇴근을 준비하는 동안 운동장에서 축구공을 차며 더 많이 공을 차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했다.
 
집에 와서 아내가 늦은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 1박2일을 보았다. 이수근이 배 위에서 깃발을 숨겨 강호동을 속이는 장면은 정말 감탄스러웠다. 시훈이와 나는 박수를 치며 엄청 웃었다.
 
저녁을 먹고는 아이들이 자러 가기 직전에 오늘 찍은 사진과 동영상을 가족들과 함께 보았다. 아이들은 특히 뮤지컬 연습 동영상과 연극 연습 동영상을 재미있게 보았다. 이렇게 열심히 연습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누군가는 또 그것을 보며 행복해할 것이다. 일요일 근무한다면 누구라도 별로 달가와할 일은 아닐텐데 나는 오늘 평소보다 더 즐거울 수 있었다.
박형종   2010-11-21 (일) 23:10   [1]   인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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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종   고맙습니다. 이 글을 쓸까말까 고민했었는데, 답글을 보니 쓰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고 힘이 나네요.
2010-11-23 08:14  답글
 

박형종님의 답글에 대한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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