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훈이 진료와 서울 구경 방금전 시훈이와 시원이가 컴퓨터를 하는 동안에 산책을 나갔다 왔다. 거의 한달만이다. 부쩍 시원해진 밤 바람에 뒤섞인 여러 풀벌레 소리가 싱그러웠고 산책로의 반 이상을 뒤덮은 키큰 잡풀들이 위세를 부렸다. 시훈이는 바다소에 글을 쓴다고 했고, 한글이 어설픈 시원이는 자기도 글을 쓰겠다고 우기다가 인터넷 동화를 보는 것으로 방향을 바꿨다.
나는 아이들이 바다소에 글 쓰는 것이 좋다. 서재 책상 맞은편에서 서로 얼굴을 바라보면서 각자 글을 쓴다. 바다소는 내가 시훈이와 커뮤니케이션 하는 또 하나의 장소이다. 서로가 상대방의 글을 읽고 바로 피드백을 하기도 한다. 나는 토를 잘 달지 않는다. 즐기며 글을 쓰다보면 생각이 깊어지고, 실력도 늘 것이다. 학생들도 글을 쓰면 좋을텐데 겸연쩍거나, 바쁜 모양이다.
산책을 나갔다 오니 시훈이가 글을 쓰다가 마무리 하지 못하고 엄마 성화에 자러 간것 같다. 근데 글 제목이 "서울나들이" 여서 놀랐다. 나도 산책하고 집에 들어오면 그 제목으로 글을 쓰려고 했었다. 뭔가 통하는 건가?
오늘 백구현선생님의 진료가 있어 아침 6시에 일어나서 버스로 서울에 갔다. 시훈이 덕분에 모처럼 버스로 서울 여행을 한다. 내려올 때는 기차를 탔다. 온가족이 버스와 기차를 타본 것이 처음이다. 항상 내 자동차로 다녔었다.
손가락만 다치지 않았다면 더없이 즐거운 여행이었을텐데, 붕대를 풀 때 손가락을 보는 섬뜩한 느낌이 마음을 짓누르고 있었다. 거기다 나는 지난번 진료 때 옆에 없었기 때문에 일주일 전 한라병원에서 보았던 검게 변한 손가락만이 내 기억 속에 남아있었다. 오늘 붕대를 풀면 어떤 모습일까? 그것이 일주일 내내 해결되지 않은 숙제였다.
병원진료는 한 시간 가까이 지연됐고 달라붙은 거즈를 떼는 데 고생을 하였지만, 그래도 검은 부분이 없어져서 희망을 갖게 되었다. 다음 진료를 예약하고, 병원을 나오니 11시 반. 마침 동관이 어머님과 연락이 되어서 토속촌에서 삼계탕으로 점심을 함께 했다. 한라병원에 있을 때부터 이번 진료 때까지 여러 가지로 도움을 많이 주셔서 점심을 꼭 대접해드리고 싶었다. 서울 도심 속의 한옥집이 이색적이었고, 삼계탕을 먹으려고 대문밖까지 늘어선 사람들의 행렬이 특이했다.
삼계탕을 먹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방학 때 서울에 가면 여러 학부모님과 편안하게 대화하는 기회를 갖고 싶었는데, 이렇게 희한하게 자리가 마련된 것이다. 삼계탕도 맜있었고, 대화도 즐거웠다. 시훈이가 다쳐서 서울에 왔다는 사실도 잠시 잊었다. 점심 후에는 아이들을 위해 청와대쪽으로 드라이브도 시켜주시고, 난타공연장에 내려주셨다. 덕분에 정동극장에서 난타를 볼 수 있었다.
내가 연극을 본 것이 언제만인가? 난타는 가족이 서울에서 처음 보는 연극이었다. 우리 모두가 난타를 아주 좋아했다. 시원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며 몰입했고, 시훈이도 멀쩡한 오른손으로 허벅지를 때리며 박수를 쳤다. 원주에서 1시간 30분거리이므로 앞으로는 당일로 자주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방학 때는 특별 이벤트로 티켓을 할인해주므로 이 기간을 잘 이용해야겠다.
기차역으로 가는 사이에 힘들다는 시원이를 달래 서울역사박물관을 들렀다가 6시에 청량리에서 무궁화 기차를 탔다. 원주까지 아직 복선화가 다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서 중간에 마주오는 기차를 피하려 멈추기도 했다. 서울을 벗어나니 기찻길 주변에 녹색으로 우거진 곳이 많았다. 양평 쯤에는 멋있는 전원주택들이 숲들 사이에 빼꼼이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좋은 곳이로구나..
나는 언젠가 경치 좋은 땅이 있는 곳에 동호회형 전원주택 단지를 만들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나홀로 전원주택은 조금 외로울 것 같다. 그래서 취미가 원주 인근에 그런 곳을 방문해서 둘러보는 것이다. 아마 십년 쯤 뒤에는 가능하지 않을까? 관심있는 분은 지켜봐주세요^^
시훈이는 옆자리에서 내 어깨에 기대어 잔다. 뒷자리의 시원이는 처음에는 종알거리고 앞자리의 오빠에게 장난을 걸다가 반응이 없자 원주에 도착할 때까지 잠이 들었다. 기차가 간현유원지를 지난다. 우리가 즐겨 캠핑을 하던 곳이다. 캠핑을 할 때 시도 때도 없이 지나가는 기차 소리가 종종 거슬리기도 했다. 오늘은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는 유원지에 멀리 텐트 한 동만이 보인다. 왠지 쓸쓸하다. 북적거리면 안 좋은 점도 있지만 캠핑은 사람보는 재미가 반 이상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당일로 다녀온 서울나들이가 이렇게 종착역에 다다랐다. 짧은 하루 동안에도 인생의 희로애락을 다 겪었다. 슬픔과 고통만을 인생에서 빼낼 수 있다면 좋을텐데.
많은 비로 원주천 물이 불어나서 큰 소리를 낸다. 즐거운 징검다리건 괴로운 것이건 모든 징검다리를 잘 건너야만 전진할 수 있는 것이 인생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