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1시. 모구리 대피소에 몇 가족이 둥글게 둘러앉아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른다. 김현식씨의 "내 사랑 내 곁에".. 내가 한 때 즐겨 부른 노래다.
나는 아이들이 텐트에 자러 들어간 사이에 설거지를 하러 갔다왔다. 캠핑에서는 남자들이 설거지를 하는 것이 매너다.
아침에 여유 있게 일어나니 공기가 상쾌했다. 간단하게 된장국으로 아침을 먹고, 중문관광단지 입구의 관광안내소에 들러 여러 안내서들을 챙겼다. 내가 제주도에 온 것을 실감하는 곳이다.
그리고는 롯데호텔로 가서 관광지 할인 쿠폰을 끊었다. 풍차와 이국적인 정원이 멋있다. 나도 언제 이런 곳에 자면서 럭셔리한 관광을 할 수 있을까? 덤장에서 전복뚝배기, 보말국, 회덮밥으로 점심을 먹었다. 작년에 중문을 지날 때마다 외관도 멋지고, 사람도 북적대서 꼭 들러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실내 인테리어가 깔끔하고, 메뉴도 다양하며, 맛도 좋았다. 반찬으로 준 멸치튀김이 맛도 좋았지만 보기에도 통통한 게 신기했다.
3층에서 통창으로 내려다보니 몇 대의 오픈카를 비롯해서 좋은 차들이 많이 보였다. 한편으로 내 차 지붕을 보니 17년된 차답게 얼룩이 많았다. 잔 고장은 흔했지만 큰 사고없이 여기까지 온 것이 고맙다.
점심을 먹고 카트를 탔다. 작년에도 두번이나 탔을 정도로 가장 좋아했던 것이다. 올해도 가장 먼저 해보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제주에 오면 즐겁다는 느낌을 아이들에게 주고 싶었다. 나는 작년과 마찬가지로 옆에 시원이를 태우고, 시훈이와 레이싱을 했다. 나는 여유있게 이길 수 있었지만 승리는 시훈이 것이었다.
서귀포 이마트를 들러 저녁으로 먹을 흑돼지 삼겹살을 샀다. 작년에는 흑돼지 삼겹살을 구할 수 없어, 흑돼지 앞다리만 실컷 먹었는데 이번에는 쉽게 살 수 있었다. 다만 100그램에 2300원으로 다른 돼지 삼겹살 보다 300원정도 더 비싸고, 흑돼지 앞다리보다는 1300원이나 더 비싸다.
모구리에 돌아오니 컵스카우트 학생들이 엄청나게 많은 텐트를 쳤다. 이들은 밤에 캠프파이어도 했다. 저녁을 준비하기 전에 나는 원주에서 만들어 온 워터드립 커피를 이마트에서 사 온 얼음을 넣어 마셨다.
워터드립 커피는 예가체프를 이와키로 추출한 것인데, 캠핑오기 전에 3병을 만들었다. 캠핑에서 아이스커피는 호사다. 더구나 예가체프 워터드립 커피라니! 입이 즐겁기 전에 숙성된 커피향에 코가 먼저 즐거웠다.
바비큐 테이블에서 흑돼지 삼겹살을 다 구워먹을 때쯤 되자 비가 내렸다. 엘파소 그늘텐트 안으로 테이블을 옮겼다. 빗소리를 들으며 먹는 저녁도 묘미가 있다.
덥고, 습기가 높아 집에서 가져온 전기선풍기가 효자다. 아내 구박을 들으며 막판에 내가 우겨서 챙겨온 것인데 작년에는 사 놓고도 실을 데가 없어서 가져오지 못했던 것이다. 올해는 차에 수납을 잘 해서 같은 차에 더 많은 장비를 실고 올 수 있었다. 장비가 잘 갖추어지니 캠핑이 더욱 안락하다. 그동안 캠핑 고수들을 보며 많이 부러워했었는데, 이제는 그럴 일이 별로 없을 것 같다.
대피소 출입구 옆에서 비를 피하며, 창문에서 흘러나오는 희미한 불빛 아래서 글을 쓴지도 한 시간이 넘었다. 그 틈으로 흘러나오던 노래는 멈췄고, 그 보다 더 크게 대화하는 소리가 들린다. 설거지하다 축축하게 적은 옷도 어느새 다 말라버렸다.
이 사랑스런 밤을 떠나보내고 잠을 자러 좁은 텐트로 들어가기는 싫지만, 밤이 길어지면 그만큼 낮이 짧아질 것이다.
박형종 노래는 정말 음치라 안 불러. 그래서 가장 싫어하는 자리가 억지로 노래시키는 곳이야. 커피잔 씻는 것은 두 번 정도 시켜본 것 같은데 아침마다라니. 그것도 커피를 타주는 데 대한 최소한의 심부름이지. 이런말 들을까봐 이후에는 그냥 내가 씻었어. 선풍기말고도 전기냉장고, 워터드립커피도 마찬가지로 사랑을 받고 있지. 노트북도 두 개 더 가져오고, 야전침대만 실을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아. 가람이도 즐거운 여행하길 바래.. 2010-07-28 0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