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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패러다임

겨울방학이 3주 지났다. 방학 무렵에는 컨디션이 별로였는데, 지금은 거의 회복했다. 열흘 전에는 세인트존스 호텔에 묵으며 1박2일 강릉을 다녀왔고, 며칠 전에는 선생님들과 당일로 강릉 청소년동계올림픽에서 아이스하키를 관람하고 안목항에서 회를 먹고 카페에서 레몬차도 마셨다. 이번 일요일에는 인사동에 자면서 1박2일 서울 구경을 할 계획이다.

방학 처음 2주 동안에는 물리 공부를 열심히 했고, 지난 한 주 동안에는 새 학기를 준비하며 바다소를 다듬었다. 별문제로 활용하기 위해 큐시트 사진을 발표사진으로 링크하는 프로그램, 발표화면에서 답안제출을 확인하는 기능, 발표사진의 순서를 바꾸거나 다른 예고편으로 이동하는 프로그램 등을 만들었다. 수업에서 상호작용을 돕는 이러한 프로그램들 덕분에 새 학기가 몹시 기다려진다. 개학 때까지 남은 시간에는 별문제를 준비할 것이다.

최근 들어 세상의 패러다임이 또 한 번 크게 변하고 있다. 패러다임은 1900~1930년에 있었던 과학혁명을 설명하기 위해 토머스 쿤이 1962년 그의 책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지어낸 말이다. 쿤은 정통적으로 받아들여지던 과학이론(과거의 패러다임)이 짧은 시간에 상대론과 양자역학 같은 전혀 다른 과학이론(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대체되는 방식을 설명하고자 했다. 그의 책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어쨌든 패러다임이라는 말은 일상적으로 흔히 사용하는 단어가 되었다.

패러다임이 무서운 이유는 패러다임이 바뀌면 아무리 기존 패러다임에서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도 새로운 세상에서는 빛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패러다임이 석탄에서 석유로 바뀌면 기업이나 개인들이 석탄을 캐고, 연탄으로 가공하고, 유통하는 데 효율을 높이고 비용을 줄이는 것에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대부분, 그것도 순식간에 망한다. 말에서 자동차와 기차와 비행기로, 진공관에서 트랜지스터로, 브라운관, 백열등, 형광등에서 LED로, 편지에서 이메일로, 지도에서 인공위성과 네비게이션으로, 유선전화에서 무선전화로, 캠코더, 카메라, 카세트플레이어, 피처폰에서 스마트폰으로, 신문, 라디오, 텔레비전에서 소셜네트워크와 유튜브로, 공책에서 태블릿으로, 로컬에서 글로벌과 인터넷과 서버로, 패러다임은 끊임없이 점점 더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기업들은 생존을 위해 새로운 패러다임이 무엇일지 항상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현재 사람들은 배터리, 전기차, 자율주행, 드론, 로봇, 인공지능, 우주개발, 무인화, 비대면, 유전자공학 등을 새로운 패러다임의 유망주로 손꼽고 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분명히 그런 방향으로 돈이 투자되고 기술이 발전하겠지만, 내 생각에는 인간이 생활에서 체감할 수 있는 효용은 운송수단이 말에서 자동차로 바뀌었던 때에 비해 그리 극적이지 않을 것 같다. 인류는 절대적인 수치에서 이미 충분히 발전했다. 별로 필요 없는 것들이 너무 많이 생산되고 있다. 지금 세상 사람들은 지난 길을 되돌아보며 무엇이 진짜 소중한 것인지를 되새겨볼 위치에 다다른 것 같다. 과거의 미신이나 메시아에게 의존하고 싶지는 않겠지만 현명한 판단을 도와줄 지혜와 믿고 의지할 동반자를 구하려는 마음은 어느 때보다 열렬하다.

나는 앞으로 나올 새로운 패러다임은 물질적인 게 아니라 정신적인 발명품에 가까울 거라고 생각한다. 로컬이면서 글로벌하고, 실시간이거나 즉각적이고, 탄탄하면서도 유연하고, 조직적이면서도 자발적, 수평적, 개별적이며, 자기 계발과 사회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느슨하지만 강한 연대감을 느끼는 개인들의 연합체이자 네트워크다. 이런 연합체에 대한 완벽한 모델인지는 모르겠지만 인터넷 카페, 스터디 그룹, 동아리, 아이돌 팬클럽, 국제환경단체 등에서 일부 비슷한 점을 찾을 수 있다. 이런 연합체는 점점 더 많이 생겨나며 큰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다. 즉 내가 생각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은 이들 연합체의 등장과 발전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패러다임에 올라타야 하는가? 가장 좋은 것은 이런 연합체와 네트워크의 설계자이자 창립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려면 적절한 능력과 행운이 필요하겠지만, 끈기 있게 노력하고 준비한다면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이다. 세상은 이미 많은 도구를 마련해 놓고 있다. 가능성을 믿고 용기 있게 도전하자. 다행인 점은 이런 연합체와 네트워크의 특성상 설계자나 창립자가 아니더라도 거기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발전하고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나도 언젠가는 그런 연합체 중의 하나를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 설계도를 잘 그려야 하는데 이런저런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시간을 더욱 소중하게 써야겠다.
박형종   2024-01-25 (목)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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