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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도메스티쿠스(Homo Domesticus), 집에서 사는 인간





일요일이고 날씨가 따뜻한 봄이라 산책하거나 자전거를 타고 또는 자동차로 드라이브를 하며 꽃구경을 나설까도 싶었으나 중국에서 엄청난 황사가 와서 외출하지 말라는 경보가 떴다. 미세먼지 아니면 황사로 봄다운 봄을 느껴볼 수가 없다. 답답한 점은 이런 시기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정부는 무슨 대책을 세우는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공기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마시는 물, 사는 땅도 오염되고 있다. 정부는 엉뚱한데 돈과 시간을 낭비할 것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미세먼지를 조사하고 해결하는데 돈과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이것은 지금 우리나라 사람에게 가장 급한 절대적인 문제이다.

나는 자구책으로 이미 15개월 전부터 집에 공기청정기 5대를 들여놓고 사용 중이다. 방금 전에 책상 위에서 미세먼지 농도를 측정해보니 2가 나왔다. 매우 양호하다. 나는 오피스에도 2대의 공기청정기를 가동하고 있고, 본가와 처가댁, 누나에게 공기청정기를 선물했다. 주변 여러 사람들에게도 공기청정기의 필요성에 대해 지속적으로 강조해왔는데 처음에는 무슨 외판원 취급하던 사람들도 하나둘 씩 날로 심해지는 미세먼지를 견디다 못해 공기청정기를 들여놓고 있다. 지난겨울에는 내게 전화를 하여 미세먼지 측정기와 공기청정기 구입에 대해 물어보신 분도 있었고, 며칠 전에는 내 덕분에 공기청정기를 샀다며 감사하다는 말을 해준 분도 있었다.

호모 도메스티쿠스(Homo Domesticus). “집에서 사는 인간”이란 뜻으로 내가 지어보았는데 이미 있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아마 비슷한 말이 있기는 할 것이다. 가뜩이나 사람들이 외출을 잘 하지 않고 쇼핑도 온라인으로 하는 것이 대세가 된 세상이다. 전자제품, 옷, 신발, 과일, 과자, 책, 조명기구 등 일주일에 몇 개씩 택배가 집으로 온다. 영화도 텔레비전이나 프로젝터, 노트북, 스마트폰으로 보고, 외식보다는 배달 음식을 즐긴다. 오늘 우리 가족은 네 명 모두 집 밖을 나가지 않았다. 점심 때 외식을 하려다 그만두었고, 집에서 점심을 먹은 후에 나와 아내는 카페 나들이를 하려다 미세먼지 때문에 포기했다. 시훈이는 저녁 먹고 독서실에 가려다 그냥 집에서 공부하기로 했다. 하루 종일 네 명 모두 집에서 지냈지만 답답한 느낌은 없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호모 도메스티쿠스가 현명하게 사는 방법은 무엇일까?

첫째, 집이 넓어야 한다. 집이 좁으면 아무래도 갑갑하다. 넓다고 꼭 비싼 것은 아니다. 서울의 작은 집이 지방의 넓은 집보다 열 배 이상 비싼 경우도 흔하다. 가능하다면 호모 도메스티쿠스는 넓은 집에 살아야 한다. 그래야 집에서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고, 단조롭지 않은 생활이 가능하고, 외출의 유혹을 이겨낼 수 있다.

둘째, 공기를 쾌적하게 해야 한다. 가스레인지 대신에 전기레인지를 사용하고, 공기청정기를 여러 대 놓아야 한다. 거실에 한 개, 부엌에 한 개, 각 침실에 한 개씩 놓는 것을 추천한다. 공기청정기는 필터를 교체하는 방식을 권한다. 집안에 화분을 놓는 것도 좋은 것 같다. 우리 집에는 자잘한 화분은 여럿 있지만 큰 나무는 없는데 큰 고무나무나 테이블야자를 들여놓고 싶다. 창문을 닫고 있는 시간이 늘어나므로 집에 공기를 순환시키고 인공 바람을 만들기 위해 서큘레이터도 가동한다.

셋째, 파벽돌을 시공하자. 나는 지난 10년 동안 4차례에 걸쳐 대략 3천개 정도의 파벽돌을 아내와 함께 직접 붙였다. 전에 살던 아파트에서 베란다 결로와 곰팡이 때문에 고생한 경험이 있어 파벽돌에 매달리게 되었다. 베란다, 현관, 거실, 부엌, 서재, 시원이 방에 파벽돌을 붙였는데 파벽돌이 벽지에 비해 인테리어적인 느낌도 좋고 습기를 조절하는 효과도 있어 훨씬 쾌적하다.

넷째, 즐길 거리가 많아야 한다. 현재 텔레비전 3대, 프로젝터 2대와 홈시어터 스피커, 스마트폰 4개, 태블릿 2개, 노트북 5대와 일체형 pc 1대, 여러 종류의 운동 기구, 에스프레소 커피머신과 로스팅 기계, 4인용 소파, 1인 소파 4개, 리클라이너 소파, 14개의 테이블 등 여럿이서 또는 혼자서 즐길 게 마련되어 있다. 사람들마다 자기 취향에 따라 그때그때 구비해놓으면 된다.

다섯째, 가족이 서로 최소한으로 간섭해야 한다. 집에서 자주 부딪히다보면 잔소리를 하거나 사소한 것 때문에 다툼이 생기기도 하는데, 그런 일은 되도록 피해야 한다. 알아서 각자 자기가 할 것을 하고, 쉬거나 놀 때도 스스로 하도록 내버려 두어야 한다. 텔레비전을 보든, 낮잠을 자든, 스마트폰을 하든, 운동을 하든, 공부를 하든, 밤에 늦게 자고 아침에 늦게 일어나든, 자기가 스스로 컨트롤 하는 것이다. 다만, 점심과 저녁 식사 후에 기회가 되면 서로 모여서 30분에서 한 시간 정도 티타임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권장한다.

여섯째, 우선적으로 집을 개선하는데 돈을 쓴다. 비싼 돈을 들여 여행을 가거나 새 자동차를 사는데 큰돈을 쓰는 것은 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돈으로 소파를 사거나, 침대를 바꾸거나, 침대쿠션을 사거나, 프로젝터를 설치하거나, 부엌 식탁과 의자를 새로 장만한다. 여행은 일회성으로 지출이 의외로 많이 생기며, 자동차는 집에 있을 때는 필요 없다. 집을 개선하는 우선순위는 LED등처럼 전기를 아끼는 것, 운동기구나 간접조명처럼 건강을 위한 것, 1인 소파나 프로젝터처럼 가족이 함께 이야기 하고 힐링 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다.

호모 도메스티쿠스에게 적합한 취미는 집에서 하기에 알맞은 것이다. 요리하고, 책을 읽고, 텔레비전 보고, 인터넷을 하고, 글을 쓰는 것은 어울리지만, 등산, 낚시, 여행, 달리기, 축구나 야구 등은 맞지 않다. 수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가 가축을 키우고 농경 기술을 발전시키며 정착 생활을 한 이후로 라이프 스타일에 큰 변화가 오고 있는 것 같다. 집이 진정으로 생활의 중심이 되는 것이다.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것뿐만이 아니라 여가 활동의 대부분을 집에서 하는 생활이다. 경제와 상업적인 활동, 정치와 교육도 많이 달라질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미세먼지 때문에 그런 생활에 빠르게 접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먹을 것을 사냥하며 황야를 달리던 우리의 야생성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그것을 어떻게 달래고, 타협하고, 해소하고, 발전시킬 것인가? 호모 도메스티쿠스의 미래는 무엇인가?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실제를 허상으로부터 구별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직접 경험하는 것은 줄어들고 방송이나 인터넷을 통해 접하는 간접 경험은 늘어나며, 사람들은 인터넷 상의 평판에 점점 더 의존할 것이다.

아마 더욱 중요한 문제는 에너지와 자원의 고갈에 대한 것인데, 인류의 공업적 생산은 향후 몇 십 년 안에 최대치를 찍고 서서히 내리막을 걸을 것 같다. 그런 상황에서 인류는 또 어떤 해답을 찾게 될지. 어떤 집에서 어떻게 살게 될 것인지. 다행스러운 부분은 이런 변화는 서서히 진행될 것이라는 점이다. 방향만 잘 잡는다면 기회는 충분히 있다. 과거에 집착하지 않는 게 좋다. 역사는 되풀이 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윤리성을 해치지 않는 한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기회는 지나온 길에서 발견되지 않고 나아가는 길에 묻혀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호모 도메스티쿠스는 집을 포기하지 못할 것이다. 그 대신 많은 기회를 집에서 발견하게 될 것이다. 여러분에게 그 기회는 무엇인가?
박형종 2018-04-15 (일) 23:24 글 1346   답글 프린트   ▷1603 폴더 생각[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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