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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 세 번째 이야기-호모데우스


추석 차례를 지내기 위해 인천에 1박2일로 다녀왔다. 가는 길에 덕평휴게소에 들렀지만 간단히 옷구경만 했다. 형수님들이 부쳐놓은 오징어전과 명태전을 먹고 연안어시장으로 가서 누나 집에 들러 점심을 먹고 송도로 갔다. 최근 몇 년 동안 인천에 갈 때마다 송도에 들른다. 송도에는 허허벌판일 때부터 드라이브를 갔었는데 요즘에는 구경할 거리가 많아서 하루가 짧다. 현대시티아울렛에 주차하자마자 아내와 시원이는 옷을 사러 갔고 나와 시훈이는 교보문고에서 책을 살펴보았다. 별로 끌리는 책이 없어서 《호모데우스》를 들고 집에서 읽은 부분 이후를 읽었다. 그리고는 트리플스트리트로 가서 한샘을 둘러보고,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고, 가구들을 구경하고, 영풍문고에서 《호모데우스》를 계속 읽었다. 서점들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저녁으로 부대찌개를 먹고 디저트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짧은 송도 나들이를 마무리했다.

어제 10시쯤 잤더니 오늘은 5시에 일어났다. 어머님 방으로 가서 한참 이야기를 나눴다. 아직도 생선 장사를 하느라 다리를 딛기 힘들 정도로 허리가 아프다고 하신다. 나는 서울에 있는 유명 의사에게 진찰을 예약해보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아무리 명의를 만난다 해도 무거운 궤짝을 들었다놨다하는 생선 장사를 그만두지 않으면 허리가 나아질 것 같지는 않다. 오전에 집으로 오는 영동고속도로는 명절에 이동하는 많은 차들로 군데군데 막혔다. 고속도로 휴게소마다 들어가려는 차들이 길게 줄을 서서 느리게 움직였다.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대로 운전했지만 평소보다 두 배로 시간이 걸렸다. 오후 2시 반에 간단히 점심을 먹고 책을 읽다가 낮잠을 잤다.

낮잠에서 깨서 책을 읽다가 해가 어두워질 무렵 잠깐 동네 산책을 나갔다. 바로 집 앞에 생긴 양고기 음식점에 들어가 메뉴판을 확인해보았다. 750그램에 5만4천원이라고 하는데 한 번 먹어볼만 할 것 같다. 이 집과 이 동네로 온지도 곧 10년이 다 되어간다. 큰 동네는 아니지만 좁고 넓은 물이 세 개의 물길로 흐르고 있어 산책하기에 좋다. 어묵탕으로 저녁을 먹고는 서재 리클라이너에 앉아 계속 책을 읽었다. 그 덕분에 마침내 《호모데우스》를 다 읽었다. 책의 막바지를 읽을 무렵인 밤 9시에 거실에서 시훈이와 시원이가 티타임을 하러 나오라고 말했다.

정보와 로봇, 과학과 생명공학의 발전과 융합에 따른 4차 혁명,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불안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인기 있는 직업들 중에 많은 것이 인공지능과 로봇으로 대체되는 추세이고 그런 속도는 점점 빨라질 것이다. 《호모데우스》의 마지막 장은 데이터교라는 신흥 종교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인류가 인간보다는 데이터를 더 믿게 될 것이고 생명도 데이터 알고리즘으로 해석되고 모든 것이 데이터의 흐름에 연결되면서 사피엔스가 업그레이드 된 유기체로 대체되어 종말을 고하게 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책에 따르면 그 시작은 지능과 의식의 분리이다. 책에서 던진 화두가 너무 심오해서 앞으로 어떤 지침에 따라 계획하고 행동해야 할지 막막한데 시간을 갖고 천천히 생각해보아야겠다. 어쩌면 이런 걱정이 소행성의 충돌을 염려하는 것만큼이나 부질없는 것일 수도 있다. 어제 송도에서 먹을 것이나 옷과 꾸밀 것을 파는 곳에는 사람들로 바글거렸지만 《호모데우스》가 놓인 서점들은 한산해서 썰렁하기까지 했다.

사람들은 미래를, 그것이 비록 한 달이나 일 년 뒤라 할지라도, 생각할 겨를이 없거나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일 수 있다. 당장 오늘이나 내일, 이번 주에 있을 일을 해결하기에도 바쁘다. 그런데 정작 스마트폰을 수시로 만지면서 그 급한 일에 그렇게 집중하는 것 같지도 않다. 유발 하라리가 책에서도 말하고 있지만 문제는 데이터가 너무 많이 빠른 속도로 생성되고 유통되고 있다는 점이다. 데이터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어떤 데이터가 중요한지, 어떤 데이터에 신속하게 반응해야 할지 판단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친구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 시간을 내어 댓글을 달아야 할까? 유튜브에서 많은 사람들이 본 동영상이 중요한 것일까? 지금 고통스럽게 즐거움을 희생해가며 하는 공부가 정말 필요한가? 행복한 미래를 위해 지금 무엇을 하는 것이 좋을까?

나도 질문은 가까스로 몇 개 해보지만 마땅한 답을 생각해낼 재주가 없다. 내일 금산으로 내려가는 길에 더 생각해볼 것이다. 지금 언뜻 떠오르는 해답은 마음을 비우고 욕심을 버리는 것이다. 버리지 못하면 무한루프를 탈출할 수 없다. 유리병에 손을 넣어 사탕을 한가득 집으면 유리병에서 손을 꺼낼 수 없다. 손이 붙잡고 있는 사탕을 놓아야 한다. 인천에서 만난 어머님과 누님은 건강이 좋지 않고 힘든 일을 하고 계셨는데 자식에 대한 사랑과 걱정 때문에 루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나에게 무한루프는 무엇일까? 무엇을 비우고 무엇을 버려야 하는가? 우리는 항상 무언가를 얻고 지키기 위해 골몰하지만 답은 그 반대편에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박형종 10-04 (수) 23:53 글 1311   답글 프린트 ▷180 폴더 일상[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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