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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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층에서 서울을 내려다보며

어머님 생신이어서 어제 인천에서 저녁을 먹었다. 65년 이상 무거운 생선궤짝을 들었다놓았다하면서 몸도 여기저기 성하지 않으신데 생일케이크의 촛불을 끄면서 행복하다고 하셨다. 어머님의 긍정에너지는 내가 흉내 내기 힘들 것이다.

인천으로 가는 차 안에서 가족들에게 내가 베룸디코 동아리 학생들과 인터뷰했던 녹음파일을 들려주었다. 시훈이는 곧 곯아떨어졌고, 시원이는 차멀미를 하며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옆자리에 있던 아내만 제대로 들었다. 약 40분 동안 인터뷰를 했었다. 처음에는 무엇을 물어볼지 몰라서 걱정도 했는데 다행히 잘 한 것 같다. 17년 동안 쌓은 내공이 빛을 발했다.

저녁을 먹고 8시 반쯤 인천을 떠나서 바로 원주로 돌아오지 않고 서울로 향했다. 어머님 생신에 인천을 갈 때는 낮에 인천을 구경하고 저녁 먹고 당일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곤 했는데 이번에는 학부모상담이 있어서 늦게 출발했다. 저녁시간에 딱 맞게 도착해서 구경할 시간이 없었다. 그냥 돌아오기는 아쉬워서 서울에 입원해 있는 처제도 병문안 할 겸 서울 구경도 할 겸 서울에서 하루 자기로 했다.

숙소로 택한 현대레지던스는 예상보다 허름했고 오래된 냄새가 났지만 4인 가족이 자기에는 충분히 넓었다. 가까운 거리에 있는 시장이나 동대문 현대시티아울렛까지 산책하려는 계획이었는데 시간도 늦고 해서 그냥 씻고 쉬기로 했다. 시훈이가 텔레비전을 틀었는데 마침 EBS에서 <글로벌 인재전쟁>이라는 다큐멘터리를 1,2부 연속으로 보여주었다. 학교에서 전자공학 동아리장을 맡은 시훈이와 평소 이런 주제에 관심이 많은 나는 침대에 누워 TV가 뚫어져라 봤다. 산책을 나가지 않았던 것이 좋은 프로그램을 볼 기회를 준 셈이다. 시원이는 우리가 TV를 보는 동안 스마트폰을 신나게 했다. 그리고 헨리가 피아노와 여러 악기를 사용하며 조용필의 노래를 멋지게 부르는 모습을 보여줬다. 재미있게 사는 사람이다.

프로그램은 미국의 실리콘밸리 창업 시스템을 집중적으로 소개하였다. 미국에서도 창업 성공률은 10%에 불과하지만 몇 번 실패해도 계속 도전하는 분위기와 그것을 격려하는 환경이 부러웠다. 젊은 나이에 수십조 원의 부를 이루는 것은 사람들의 도전정신과 그런 시스템 덕분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라고 못할 것은 없다. 누구 탓을 해봐야 소용없는 일이다. 조금 힘은 들겠지만 더 많은 아이디어를 내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도 있다.

원래 글을 쓰려던 것은 아니었다. 아침 7시에 깨어나서 커튼을 열고 10층에서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았다. 빌딩들 틈 사이로 마라톤을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집이 아파트 2층이어서 눈높이의 나무들만 보다가 멀리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니 몸이 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무엇을 할까 하다가 아무 글이나 쓰자고 해서 스마트폰으로 바다소에 로그인했다. 글을 쓰거나 메모를 하며 생각을 다듬는 것이 내가 어정쩡한 시간을 사용하는 방법이다. 빼곡한 빌딩들을 보며 흘러가는 대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9시쯤 가족 중에서 마지막으로 시훈이가 깰 무렵에는 끝 문장을 쓰고 있었다. “새 세상은 내가 서 있는 지점에서 시작한다.”

배경이 어떻든 간에 무대에 서 있는 사람은 나다. 실패를 통제하고 성공을 이루어야 할 사람도 나다.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도전에 대한 유전자는 몸속에 들어있다. 새 세상은 내가 서 있는 지점에서 시작한다.
박형종   2017-03-19 (일)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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