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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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가 주는 힐링

오늘은 불금(불타는 금요일)이다. 퇴근하는 길에 에스프레소가 마시고 싶어졌다. 진하게 볶은 커피콩을 그라인더로 곱게 갈아 커피머신을 써서 높은 압력으로 뽑으면 쓰디쓴 에스프레소가 된다. 프랑스 사람들처럼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방법은 각설탕 한 두 조각을 넣고 홀짝거리다가 살살 잔을 흔들어서 설탕이 녹으면서 더 달달해지는 커피를 음미하는 것이다. 마치 젊을 때 쓴 맛을 겪으며 고생하다가 달콤한 해피엔딩을 맞이하는 우리 삶과 비슷하다고 할까? 나는 한 입 거리도 안 되는 에스프레소를 마실 때마다 인생을 생각하게 된다.

커피콩은 지난 주 일요일에 볶았다. 전에는 전기로스터로 볶았었는데 일 년 전에 가스로 볶는 로스터를 샀다. 가스로 화력을 조절하는 게 재미있다. 콜롬비아 슈프리모 커피생두 200그램을 넣고 210도씨에서 10분 쯤 지나면 커피가 탁탁거리며 연기가 나는데 이 때 타는 소리를 들어보고 샘플링도 해봐서 알맞은 시간에 꺼내는 것이 중요하다. 몇 초 차이로 덜 볶인 커피가 되거나 숯 덩어리로 변할 수 있다. 커피를 볶을 때 연기가 많이 나기 때문에 환기를 잘 해야 한다. 잘 볶인 진갈색 커피콩을 보면서 냄새를 맡다보면 정신이 깊은 곳까지 힐링되는 느낌을 받는다.

갓 볶은 커피는 몇 시간 정도 지난 뒤에 마시는 것이 숙성되어 더 맛있다. 2주 정도가 지나면 신선도가 떨어진다. 특히 그라인더로 간 것은 급격하게 산화되므로 먹기 직전에 가는 것이 좋다. 그라인더 청소를 게을리 하면 그라인더 날에 붙어있었던 커피가루가 새로 가는 커피에 섞여서 나오게 되므로 잡스러운 맛이 된다. 따라서 적어도 이삼일에 한 번 정도는 그라인더를 구석구석 청소해주어야 한다. 귀찮기는 하지만 귀찮은 만큼 그라인더 청소는 확실하게 커피 맛을 끌어올려준다. 몇 백만 원짜리 고급 커피머신을 사는 것보다 그라인더 청소를 하는 것이 결정적이다. 일요일 아침 일찍 볶은 커피 덕분에 아침을 먹고 아내와 함께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텔레비전 음악 프로그램을 볼 수 있었다. 커피와 음악이 있는 아침은 확실히 감미롭다.

오늘 저녁을 먹고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밤 9시가 되었다. 동네 친구들과 치킨을 먹고 시훈이도 그 때쯤 집에 들어왔다. 셋이서 30분 정도 더 이야기를 나눴다. 시훈이는 미국에서 직구로 신발을 샀는데 동생에게 선물로 준 신발의 끈을 묶어주었다. 훈훈한 광경이다. 불금에 술을 마시기보다는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가족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은 것 같다. 에스프레소가 있는 저녁은 유쾌하고 부드럽다.

식물에서 받는 힐링 못지않게 커피가 주는 힐링 또한 강력하다. 식물은 주로 시각적인 즐거움을 주는데 반해 자기가 직접 볶아 마시는 커피는 눈과 코와 귀와 입을 즐겁게 한다. 그리고 커피는 즉각적인 활력을 불러일으킨다. 더욱 중요한 점은 커피는 대화를 매개하는 촉매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커피의 좋은 점에 대해 말했는데 반전일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나는 보통 하루에 커피 한 잔도 마시지 않는다. 일주일 동안에 토요일과 일요일 아침에 한 잔 정도 마시는 것이 전부다. 평일에 커피를 마시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금요일 저녁에 커피를 마셔본 적도 꽤 오랜만이다. 아마 일 년도 넘었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역류성 식도염 증세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무튼 힐링은 주말에 하는 것으로 충분한 것 같다. 그런 주말을 기대하는 것만으로도 주중에 더욱 힘을 낼 수 있을 것이다.

오늘 모처럼 금요일 저녁에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볼 수 있어서 좋았다.
박형종   2017-03-10 (금) 23:32  
금요일 저녁의 에스프레소

커피 볶기

진하게 볶은 커피콩

커피머신으로 에스프레소 추출하기

지난 일요일 아침의 아메리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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