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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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그 이후


오늘 19기 학생들의 졸업식이 있었다. 내가 이들의 3학년 담임이었다. 어제 학생들이 졸업식을 앞두고 교실에 인사차 왔을 때 겨울방학 때 무엇을 하고 지냈는지 물어보며 반갑게 대화를 나눴다. 고3의 찌든 생활을 끝내고 실컷 놀아서 그런지 다들 얼굴이 좋아졌고 예뻐졌다. 한편으로는 벌써부터 대학 생활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도 있는 것 같았다. 어젯밤에 어떤 학생은 “이제 대학가서 뭐하면 되요?”하고 묻기도 했다. 대학에서 무엇을 할지 대학을 졸업하면 또 무엇을 해야 할지 많은 것들이 불분명하다. 대학교 오리엔테이션에서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답답한 것이 풀릴 리는 없다. 그들도 답을 알지 못한다. 아예 대학을 가지 않고 바로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뉴스가 되고 있다. 막연하고, 그래서 불안하다. 그런데 그것이 당연하다. 세상이 그렇게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태풍의 한 가운데 있는 사람은 그것이 태풍인지 모른다. 조금 벗어나서 볼 때 비로소 태풍인지 알 수 있다. 인공지능이나 사물인터넷, 휴먼로봇, 무인자동차, 무인점포 등등 세상의 변화는 급격하고 거대하다. 한 때 촉망받던 일자리가 없어지고, 경쟁은 격화된다. 과거의 패러다임에 따라 공부하고, 열심히 노력한다하더라도 보상은 예전만큼 크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세상의 첫 번째 칸에 탑승할 수 있는 자격은 까다로울 것이고, 대부분은 영문도 모른 채 꼬리 칸에 떠밀릴지도 모른다.

그래서 다시 묻게 된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하나?” 역사나 고전으로 회귀하거나 인문학적 소양을 갖추는 것이 도움이 될까? 나는 그것에 대해 회의적이다. 이것은 마치 정답을 미리 정해놓고 그에 맞는 질문을 찾아 나서는 것과 같다. 그렇게 찾은 질문이 좋은 질문이 아니더라도 그것의 답은 미리 정해 놓은 것에 다다르도록 되어 있다. 이런 함정에 빠져서는 안 된다. 철학책이 아니라 철학이 필요하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선생님으로 17년째 일하고 있지만 몇 년 전부터는 우리의 미래에 대해 더욱 골똘하게 되었다. 진학실장을 하고, 교무부장을 하고, 고3 담임을 오래해서 생긴 직업정신일지도 모른다. 비관주의는 도움이 안 된다. 근거 없는 낙관주의는 위험하다. 언제까지고 제자리에 서서 고민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어떻든 움직여야 한다. 그렇지만 또 막연하고 불안하다. 어디로 갈 것인가? 나는 10년 년째 답을 찾지 못했다. 답답했지만 움직이면서 또 동시에 치열하게 생각하는 것 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드디어 오늘 답을 찾은 것 같다. 유레카! 하면서 한바탕 떠들썩하게 난리를 칠 법도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답은 그냥 한 겨울밤의 흰 눈처럼 차분히 다가왔다. 졸업식이 끝나고 집에서 점심 먹고 안방 세면실에서 양치질을 하며 세차하러 셀프세차장에 갈 준비를 할 때였다. 물총으로 이를 청소해주는 워터픽이라는 제품에 대한 글을 언젠가는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일단 오늘은 차랑용 가습기에 대해서 글을 쓰기로 했다. 그리고 서재로 와서 졸업생이 남긴 문자메시지를 봤다. 졸업식에 대한 글을 쓸까말까 생각 중이었는데 그 문자메시지 덕분인지 차량용 가습기에 대한 글을 쓰고 나서 졸업에 대한 글도 쓰기로 했다. 이 글이 바로 그 글이다. 이런 와중에 답이 슬며시 떠올랐다.

내가 찾은 답은 이렇다. 역시 “이제 무엇을 해야 하나?”는 좋은 질문이 아니었다. 잘못된 질문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답이 없는 미로를 헤매는 것이다. 영어를 잘 해야 한다, 수학실력이 좋아야 한다, 높은 성적을 받아야 한다. 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역사를 알아야 한다, 인문학을 공부해야 한다, 컴퓨터프로그램을 배워야 한다, 부동산이나 주식으로 돈을 벌어야 한다, 의사나 변호사 같은 전문직이 최고다, 명문 대학에 다녀야 한다, 소셜네트워크로 인맥을 쌓아야 한다, 등등. 이것은 마치 모래와 시멘트가 건축의 재료인 것은 맞지만 모래와 시멘트를 쌓아놓기만 하면 빌딩이 저절로 만들어진다고 믿는 것과 같다. 지금 무엇을 하든 그것이 미래에 어떻게 작용할지 확신할 수 없다. 지금 준비하는 것, 지금 맺은 관계가 결정적인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시간낭비에 불과할 수도 있다. 핵심적으로 중요한 것은 그 시점에서 공기 중에 떠도는 어떤 것에서 기회를 발견하는 감각이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렇고, 앞으로도 기회는 있다. 칼을 갈 듯이 기회를 발견하는 감각을 예리하게 다듬어야 한다. 좋은 질문은 다음과 같다. “나는 지금 어떤 도구를 사용하고 있는가?” 남들은 성능 좋은 스마트폰을 쓰는데, 공부한다고 데이터도 안 되는 구형의 휴대폰을 쓰거나 아예 휴대폰이 없는 학생들이 있다. 게임을 지나치게 하거나 해서 부모님에게 스마트폰을 뺏기는 경우도 있는데 그렇게 되지 않도록 도구를 유용하게 잘 써야 한다. 나는 스마트폰으로 데이터를 기록하고, 수업도 책이 아니라 스마트폰에 내가 만들어 놓은 데이터를 보면서 한다. 기회는 대부분 훌륭한 도구를 잘 다루는 데에서 온다. 열심히 노력하고 남는 시간은 세상에 어떤 도구들이 발명되고, 사용법은 어떻게 되는지 배우는데 쓰도록 하라.

또 다른 좋은 질문은 다음이다. “나는 지금 무엇을 기록하는가?” 기록은 일기처럼 하루의 감상일 수도 있고, 메모처럼 기억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일 수도 있으며, 데이터처럼 편집되거나 재사용되는 것일 수도 있다. 보통 초등학교 때 일기를 쓰고, 중학교와 고등학교 때 메모를 한다. 문제는 흔히 메모에서 끝난다는 점이다. 고등학교 이후에는 데이터가 되는 기록을 해야 한다. 그런데 데이터가 되는 기록을 하는 방법을 제대로 배울 곳이 없는 형편이다. 나는 바다소를 사용하여 데이터를 축적하는 방법에 대한 매뉴얼을 쓸 생각인데, 언제쯤 햇빛을 볼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데이터를 관리해주는 여러 프로그램들이 시중에 나와 있으므로 체계적으로 사용하면 된다. 기록은 자기의 생각을 옮겨 놓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공기 중에 떠도는 아이디어들이 구체화된다. 축적된 데이터 그 자체가 경쟁력이 되고, 미래를 준비하며 감각을 키우는 훈련도 될 것이다.

이제 좋은 질문을 발견하는 방향을 알았을 것이다. 나도 글을 쓰고 나면 몇 가지를 더 생각해볼 작정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할 필요 없다. 무엇이나 해도 된다. 즐겁고 재미있고 자기계발과 사회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라도 훌륭하다. 좋은 질문은 “무엇을 해야 하나?”가 아니라 “무엇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이다. 이 질문을 염두에 두고 열심히 감각을 다듬다보면 그 때가 왔을 때, 즉 공기의 출렁거림을 느낄 때,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고, 움직일 때와 멈출 때를 올바로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세차를 하러 집을 나서기 전에 내가 보았던 오늘 졸업한 학생의 문자는 다음이었다.

“ … 그동안 선생님께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습니다. 은혜 잊지 않고 나중에 또 찾아뵐게요. 감사했습니다!!”

감동이다! 이 맛에 선생을 한다^^ 나는 이 학생이 정말 다시 나를 찾아오기를 바란다. 아마도 그 때 나는 세상의 흐름에 대해 더욱 업그레이드된 감각을 갖고 있을 것이다. 변변치 않은 글이지만 이 글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모든 학생들에게 바친다.
박형종 2017-02-18 (토) 22:59 글 1241   답글 프린트 3   ▷2904 폴더 생각[70]
양혜원   ㅎㅎ오 쌤 졸업하고 나서도 전 역시나! 쌤의 바다소를 다시 찾아왔어요ㅋㅋ이렇게나 좋은 글이 있다니...쌤 필력 엄청 대단하신거 같아요ㅎㅎ졸업 하고 나니깐 홀가분하긴 한데 선생님이 쓰신대로 되게 걱정되는거같아요...민사고에서 충분히 자립심과 홀로서는법을 배웠다고 생각했는데 완전히 배우지는 못했나봐요ㅠㅠ그래도 이런 시행착오(?)를 통해서 더 성장하는 거겠죠..?쌤 말씀대로 뭘 해야 하나만을 생각하는게 아니라 지금 무엇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를 항상 고민하면서 살도록 노력할게요ㅜㅜ물론 쉽지는 않겠지만요!!ㅋㅋ그리고 저는 쌤께 위의 문자를 보낸 학생은 아니지만ㅎㅎ그래도! 더 멋진 모습으로 곧 찾아뵐게요ㅎㅎ3년간 감사했습니다!! 2017-02-19 20:25  답글 1
박형종   ㅎㅎ 졸업식 전날 했던 말과 다르네. 이제 바다소에 얼씬도 하지 않겠다고 했잖아! 물론 그래봤자 자기 손해지만ㅋㅋ 오늘 낮에 내 아들 시훈이도 이 글을 보고 신문사 주필이 쓴 글 같다고 감탄했었어^^ 아무튼 판단은 자기 몫이고, 내 생각이 그렇다는 것뿐이니까. 혜원이의 웃는 얼굴이 많이 그리울 거야. 대학에서 해야 할 것이 많겠지만 일단은 많이 놀고, 사는 재미를 한껏 즐겨보는 것이 좋겠어. 한편으로는 자기의 꿈을 위해 차근차근 노력하고.. 2017-02-19 21:37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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