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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과의 산책





모처럼 아침 햇빛이 좋았다. 사진을 찍으며 가볍게 아파트 안을 걸었다. 손이 시렸다. 겨울이 성큼 코앞까지 다가왔다. 집에 들어와서 8시 30분쯤에 아이들을 깨웠다. 아침은 어제 먹다 남은 김치볶음밥에 달걀프라이를 얹어서 먹었다. 1인 소파에서 단감으로 디저트를 먹고 차를 마시며 티타임을 가졌다. 불과 얼마 전에는 햇볕을 피해서 에어컨 있는 카페를 찾아다녔는데 이제는 베란다 유리창으로 들어오는 햇볕이 고맙다. 차를 마시고 시원이는 자기 방에서 영어를 공부했고, 시훈이는 설거지를 했다. 나는 르왁커피로 아메리카노를 뽑아 시훈이랑 마시며 MBC복면가왕에서 팝콘소녀가 부른 “비와 당신의 이야기”를 들었다. 눈물이 날정도로 노래가 가슴에 꽂혔다.

바다소를 간단히 다듬고 책을 읽다가 시원이가 점심으로 만드는 햄달걀볶음밥을 도와주었다. 햄을 많이 넣어서인지 굴소스를 들이부어서인지 조금 짰다. 나는 시원이에게 남은 밥이 없기 때문에 마지막 달걀 두 개를 넣어서 짠 맛을 줄이라고 조언해주었다. 아무튼 맛있게 점심을 먹고 시훈이는 친구랑 걸어서 도서관으로 갔고 나는 설거지를 했다. 어제 설거지 가위바위보에서는 내가 시훈이에게 졌고, 이번에는 내가 이겼지만 친구와의 약속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내가 대신하고 다음에 시훈이가 설거지를 하기로 했다.

원래는 시원이와 나도 도서관으로 갈까 했었는데 졸음이 몰려왔다. 그래도 햇볕이 환상적으로 좋은데 집에만 있기는 뭐해서 가볍게 동네산책을 하기로 했다. 아파트 단지에 심어진 나무를 배경으로 가을 단풍 사진을 몇 장 찍고, 슈퍼에서 저녁에 먹을 언양식불고기와 자몽을 샀다. 삼성페이로 결제를 하였는데 직관적이어서 편했다. 다시 아파트 단지로 들어와서 벤치 앞에서 스마트폰으로 함께 사진을 찍었다. 시원이가 SNOW 어플을 깔고 그것으로 재미있는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요즘 친구들끼리 그렇게 논다고 한다.

전기담요로 따뜻하게 덥혀놓은 안방 큰 침대에서 달콤한 낮잠을 잤다. 저녁 무렵에 아내가 대전에서 돌아왔고, 시훈이는 도서관에서 친구랑 걸어서 왔다. 나는 밥을 안치고 불고기로 떡갈비를 부쳐서 저녁을 준비했다. 오늘은 12년의 자취 경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하루였다. 텔레비전의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좌탁에서 저녁을 먹었다.

보통 일요일 저녁을 먹기 전에 인천에서 큰 형님과 살고 계신 어머니에게 전화를 한다. 팔순을 한참 넘긴 연세에 아직도 어시장에 나가신다. 무거운 생선궤짝을 들었다놓았다하며 장사를 하니 몸이 성할 리가 없다. 허리와 팔, 다리가 항상 아프신 상태다. 일찍 집에 들어가서 쉬는 게 좋겠다고 해도 일찍 들어가면 뭐하냐 하신다. 집에 혼자 계시는 것보다 시장에서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며 분주한 모습을 보시는 것이 마음이 더 편하실 것이다. 그렇게 거의 70년째 장사를 하면서 혼자서 4남매를 키우셨다.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서 깜깜할 때 집을 나서는 어머님이 보여주신 성실성과 신용에 대한 말씀은 내 롤모델이자 멘토다. 본인은 이제 그렇고 나라도 재밌게 살라고 말씀하신다. 비와 당신의 이야기는 어머님에 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텃밭과 정원을 가꾸며 어머님과 함께 사는 것이 꿈이다.

저녁을 먹고 모처럼 편안하게 책을 읽었다. 아내는 대전에서 올라오는데 원주에 들어와서 차가 많이 막혔다고 한다. 단풍을 구경하려는 사람들이 산과 도로에 북적였을 주말이었다. 세상에 하고 싶은 것을 다하며 사는 사람은 없다. 하고 싶은 것을 하지 않는 것이 자기와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더 나은 경우도 많다. 가까운 곳에서 작은 것에서 즐거움을 찾아야 한다.

산책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며 시원이가 물었다.

“아빠는 어느 계절이 가장 좋아? 나는 가을이 좋아!”

“나도 가을이 좋아. 그런데 너무 짧아.”

나는 봄도 좋고, 여름도 좋고, 가을도 좋고, 겨울도 좋다. 그 계절 나름대로 추억이 있고 정감이 간다. 이렇게 딸과 함께, 아들과 함께 걷을 수 있다면 어느 계절이라도 행복할 것이다.
박형종 2016-10-30 (일) 21:50 글 1202   답글 프린트 2 ▷1123 폴더 일상[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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