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오늘 4국에서 이세돌이 인공지능 알파고를 이겼다. 3패 뒤의 1승이었다. 식당에서 점심을 먹을 때부터 스마트폰으로 중계를 보았고, 베이커리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서도 온통 시선이 바둑에 가 있었다. 초반에는 모양이 좋다고 생각했는데 중반 무렵 다시 형세가 불리한 것이 아닌가 싶어 불안해졌다. 그 때 기발한 수가 등장했고 결국 알파고가 패배를 선언하고 말았다. 인간의 대표로서 인공지능과 대결하는 중압감을 이겨낸 감동의 1승이다. 이세돌 9단이 인터뷰에서 이번 1승을 그 무엇과도 바꾸지 않겠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런 심정이었을 것이다. 마지막 5국에서는 승패를 떠나 더욱 편한 마음으로 둘 수 있을 것 같고 나도 더 편안한 기분으로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대에 살고 있다. 전통의 가치관과 도구들이 현대에서는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급격한 변화들은 우리 자신이 만든 것이다. 과연 인류는 어떻게 적응하고 진화할 것인가? 신의 한수를 찾기 위해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던 이세돌 9단과 같은 어려운 선택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어디에 착점할 것인가?
아침에 일어나서 원주천의 지류를 달렸다. 어제는 가볍게 걸었는데 오늘은 걷다가 짧게 뛰었다. 속도 면에서는 별 차이가 나지 않지만 뛰는 것은 걷는 것과 확연히 다르다. 뛸 때는 금세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호흡이 거칠어지고 콧구멍은 벌렁벌렁 대며 김을 내뿜는다. 발이 땅에서 튕겨 오를 때 묵직한 반작용이 무릎에 전해진다. 코에서 얼굴을 타고 귓가를 스치며 흐르는 바람 소리가 들린다. 몸에서 나는 열이 그 바람에 떨어져나가 뒤로 멀어진다. 상쾌하다. 이곳은 달리기에 좋다. 달리기를 잘했다.
패러다임은 항상 변하는 것이고 두려워 할 것 없다. 이세돌 9단이 말한 것처럼 3승하고 1패했다면 그 1패가 뼈저리게 아팠겠지만 3패하고 1승하면 그 1승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 된다. 3번 패하는 것이 싫어서 변화와 도전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그런 패배에 맞서서 배우고 다시 도전하는 사람에게만 가장 값어치 있는 1승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나는 아주 가끔 매우 조금 달린다. 대부분의 시간을 책상 앞에 앉아 있고, 그만큼의 시간을 침대에 드러누워 있다. 오늘도 100미터 정도 뛴 것에 불과했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달리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왜 달리는지 뛰면서 깨닫게 되었다. 앞으로는 의자에 앉아 있는 시간을 줄이고 더 자주 달릴 것이다. 그리고 내 몸과 내 생활에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배울 것이다. 패러다임의 변화는 내게도 일어나고 있다. 3패를 하든 1승을 하든 나는 그것을 즐길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