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
겨울을 맞이해서 내가 생각하는 거실을 완성했다. 어렸을 적에 겨울에는 아궁이에 장작을 지핀 따뜻한 아랫목에서 이불을 덮어쓰고 만화책을 보며 지냈던 추억이 있다. 장판이 새까맣게 그을릴 정도로 바닥은 뜨거웠지만 위풍이 세서 입에서는 입김이 났다. 요즘은 따뜻한 나라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로 공항이 미어터질 정도지만 그 때는 여행이 무엇인지도 모르던 시절이었다.
거실 업그레이드의 시작은 프로젝터였다. 여전히 만화책도 좋지만 지금은 영화나 방송에도 좋은 게 많다. 그래서 이동식으로 쓰던 SD급의 프로젝터가 있었지만 큰맘 먹고 FullHD급으로 바꾸었다. 그것을 천장에 다는 것도 처음에는 엄두가 나지 않았으나 4시간 동안 끈 하나 쓰지 않고 깔끔하게 설치하였다.
일주일 전에는 1인용 소파와 낮은 테이블을 들여 놓았다. 겨울이라 집에 있는 시간이 많고 햇볕이 부족하다. 우연히 낮에 베란다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을 보면서 지난 8년 동안 내가 그곳을 잘 쓰지도 않는 큰 책상과 운동기구 같은 것들로 내버려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바로 며칠 동안 수백 개의 의자를 검색하다가 딱 원하던 스타일을 반짝 세일하는 곳을 찾았다. 검정색 두 개, 진한 녹색 한 개, 갈색 한 개를 사서 달걀모양의 테이블과 함께 거실 베란다 쪽에 꾸며놓으니 카페가 되었다. 아침부터 해질 무렵까지 햇볕을 쬐면서 때로는 밤늦게까지 커피와 차를 마시고, 점심도 먹고, 음악을 듣고, 노트북도 하고,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가장 사랑스런 공간이 되었다.
마지막 남은 부분은 스피커였다. 스크린은 베란다 창에 있고, 스피커는 텔레비전 쪽 벽에 있다 보니 영화를 볼 때 소리가 옆에서 들리는 것이 거슬렸다. 이틀 동안 열심히 알아본 끝에 사운드링크미니2라는 보스 스피커를 샀다. 스크린 앞의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프로젝터와 블루투스로 연결하니 선이 없어서 깔끔하고 사운드도 만족스러웠다.
오늘 드디어 그것들을 모두 활용해서 영화를 보기로 했다. 11,000원이라는 가격이 비싸긴 했지만 평이 좋아서 인턴이란 영화를 택했다. 영화도 좋았고, 의자는 영화관처럼 편했으며, 프로젝터는 화질이 훌륭했고, 음향도 마음에 들었다. 덕분에 두 시간 동안 영화에 몰입했고 즐거웠다.
젊고 매력적인 사장 앤 해서웨이도 예뻤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70세의 인턴인 로버트 드 니로의 배려와 여유로움, 프로의식, 지혜가 부러웠다. 아마 누구라도 그런 인생을 살고 싶을 거란 생각이 든다. 찰리 채플린은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는 말을 했다. 현실이 힘들고 어렵더라도 가끔씩은 산책이라도 하거나 따뜻한 햇볕이 드는 거실에 앉아 멀리 생각하고 멀리서 바라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 좋겠다. 어떻든 누구나 다 자기 자신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를 찍고 있다. 멋진 시나리오를 쓰고, 좋은 몸을 만들고, 아름다운 생각을 하고, 올바른 행동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이 더없이 행복할 것이다. |
박시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