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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의 산책


오늘 산책을 세 번 했다. 무엇보다 산책을 하기에 날씨가 좋았다. 아침 8시에는 원주천 상류 쪽으로, 오후 4시에는 아내와 함께 원주천 옆 지류 쪽으로, 밤 9시 반에는 하류 쪽으로 걸었다. 일교차 때문인지 어제는 하루 종일 재채기를 하며 감기 기운 같은 것이 있었는데, 다행히 오늘 오후부터는 괜찮아졌다.

바다소의 ims 기능을 좀 더 보강하는 작업을 했다. ims는 로그인을 하지 않고 바다소의 자기 계정에 메모를 할 수 있는 간단한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은 간단했는데 폼을 다듬느라고 하루 종일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몇 년 전에 보안 문제로 로그인 처리를 쿠키에서 세션으로 바꾸고 나서 쿠키를 활용하는 가능성에 대해 궁금해 했었는데 이번에 그것을 적용해본 것도 작은 진전이었다.

나는 대략 하루에 열 개 정도의 메모를 하는데 전에는 종이 쪼가리에 하거나 스마트폰에 하다가 이제는 전적으로 바다소에 한다. 그런데 노트북으로 서버에 접속해서 쓰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걸어 다니면서 갑자기 생각나는 것을 쓰기에는 불편했었다. 그래서 노트북은 물론 스마트폰에서도 편리하고 신속하게 쓸 수 있도록 다듬었다. 덕분에 아내와 산책할 때 다섯 개나 메모할 수 있었다.

점심으로 아내는 비빔국수를 만들었다. 그것을 먹고 베란다에서 책을 보다가 캠핑의자에서 깜빡 잠이 들었다. 몸이 따뜻한 햇볕을 느꼈다. 그렇게 30분 정도 자고 일어나니 재채기와 감기 기운이 사라졌다. 아내가 뽑은 에스프레소에 설탕을 한 덩어리 넣어서 마셨다.

시원이게도 산책을 가자고 했으나 곧 자기가 좋아하는 텔레비전 할 시간이라고 싫다고 했고, 시훈이는 친구들이 놀자고 한다고 먼저 나갔다. 그래서 아내와 단 둘이 산책을 하러 가는데 시훈이가 친구 두 명과 뭉쳐 다니고 있었다. 산책을 하다가 돌아오는 길에 동네 마트에서 청포도를 샀다. 그것으로 아내가 얼음을 넣은 청포도 주스를 만들어주었는데 어느 과일주스보다 달콤하고 시원했다. 진작 여름 동안에 청포도 주스를 실컷 만들어 마실 걸 그랬다.

시훈이는 우리가 산책을 나간 사이에 친구 두 명과 집으로 와서 요즘 유행하는 아이스 버킷 챌린지를 흉내 냈다. 정수기에서 얼음을 잔뜩 뽑아내서는 아이스박스에 넣고 친구들이 화장실에서 부은 모양이다. 물론 기부금을 낸다든가 하는 원래의 아름다운 취지와는 상관없이 그냥 중학생들 사이에 이렇게 장난치며 노는 것이 퍼진 모양이다. 얼음 양동이를 뒤집어 쓴 한 명이 다음에 뒤집어 쓸 세 명을 지목하는 것인데, 이것은 핵분열이 연쇄반응을 일으키는 것과 비슷한 비율이다. 밤에는 시훈이 방에서 뭔가 뚝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번 여름 제주도 면세점에서 산 시계의 줄이 많이 헐렁거렸는데 그것을 레고 블록 위에 올려놓고 핀을 망치로 두드리고 스패너로 잡아당겨서 한 칸 빼고 있었다. 순간 '또 엉뚱한 짓이군.. 비싼 시계 망가뜨리는 거 아냐..'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면서 '그래 백만 원짜리 노트북도 몇 년 지나면 고물이 되는데 그것보다는 싸잖아.' 하며 가슴을 진정시켰다. 나는 한마디만 했다. "한 개 마저 빼야지". 한 칸 줄어든 시계는 시훈이 손목에 잘 맞았다. 다락방에서 뚝딱거리는 것을 좋아했던 내 중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저녁을 먹고는 지난 한달 동안 찍은 사진을 대충 정리하고 백업을 하였다. 백업을 하는 동안 산책을 나갔다. 포차 집에서 들떠 있는 사람들의 모습과 카페 브레노에서 차분하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대비되었다. 술과 커피의 차이랄까?

산책을 하면서 저녁 먹은 것이 소화되고 속이 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건강을 위해 걷는 것만큼 좋은 것이 없는 것 같다. 몸의 건강뿐만이 아니라 정신의 건강을 위해서도 많이 걸어야 한다. 이것은 다 아는 말이지만 대부분이 잘 하지 못한다.

주머니에 스마트폰 하나만 넣고 마음의 문을 열고 걸어보자. 다리는 땅에 닿아 있고, 머리는 까마득하게 펼쳐진 우주에 닿아 있다. 걷는 길에 보이는 것 중에 경이롭지 않은 것이 없다. 걷다가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재빨리 스마트폰으로 메모하는 것이다. 그것은 감성으로 충만한 당신에게 지구가 주는 선물이거나 우주에서 오는 메시지임에 틀림없다.

귀뚜라미 소리가 성큼 가까이 들리는 밤이다.
박형종 2014-08-31 23:58 글 902   답글 프린트 1   ▷7779 폴더 일상[1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