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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치커피

퇴근 때까지 푹푹 찌는 여름이다. 집에 오니 어제 주문한 예가체프 생두가 와있었다. 저녁 먹으면서 동시에 로스팅을 하고, 이와키 워터드립 장치로 더치커피를 만들었다. 카페에서 더치커피를 만드는 장치는 화학 기구처럼 요상한 모양이고 꽤 비싸지만 이와키는 저렴하게 더치커피를 흉내 낼 수 있게 해준다.

상온의 물을 깔때기에 넣으면 좁은 구멍으로 물이 한 방울씩 떨어져서 그 밑에 놓인 커피원두를 적시며 천천히 커피를 뽑는 방식이다. 저렴한 대신에 물방울이 떨어지는 속도를 조절하는 밸브가 없는데, 그래서 사람들이 속도를 조절하는 여러 가지 방법을 각자 고안해서 사용하고 있다. 나는 간단하게 젓가락으로 구멍을 적절하게 막아서 속도를 조절한다.

더치커피는 뜨거운 물과 높은 압력으로 순식간에 커피를 뽑는 에스프레소와는 달리 향이 좋다. 추출하고 나서 냉장고에 며칠 넣어놓고 숙성시키면 향과 맛이 더욱 진해진다. 여기에 얼음과 설탕시럽을 넣어 차갑고 달달하게 마시면 좋다. 나는 4년 전부터 여름에는 이와키를 이용해서 더치커피를 만들어 마셨다.

그런데 오늘은 잠자기 전에 한 잔 마실 생각으로 물방울 구멍을 막지 않았더니 2시간 만에 추출이 끝났고 약간 묽은 느낌이다. 거기다 시럽을 너무 많이 넣어서 설탕물이 되었다. 하지만 얼음을 잔뜩 부었더니 아무튼 더위가 확 날아가기는 한다. 커피를 마시기 전에 이번에는 물이 내려오는 구멍을 젓가락으로 막아서 천천히 내일 아침까지 추출되도록 해놓았다.

한 모금씩 더치아이스커피를 마시면서 글을 쓴다. 늦은 밤에 글을 쓰기 위해 커피를 마시는 것인지 또는 커피를 마시기 위해 글을 쓰고 있는 것인지 헷갈린다. 그 커피의 향이 내 머리를 통해 손끝으로 전달될 수 있다면 좋으련만. 나에게 그런 재주는 없는 것 같아 아쉽다.

오직 커피 향기를 머금은 밤공기가 감미롭게 내 주위를 맴돌 뿐이다.
박형종   2014-07-15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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